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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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냐-나(오염된 의식)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Viññāna (Defiled Consciousness)’ 포스트

- 2014년 최초 작성, 2018년 9월 8일 재작성, 2018년 12월 25일 개정


윈냐-나(viññāna)는 보통 의식이나 앎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훨씬 더 심오하며 다양한 유형이 될 수 있습니다. 개괄적 설명은 아래와 같으며, 웹사이트의 다른 섹션에서 윈냐-나의 여러 다양한 유형에 대한 몇몇 포스트가 있습니다.


* 윈냐-나(viññāna)는 매우 복잡하며 (이에 대한 이해는) 닙바-나에 이르는 열쇠입니다. 윈냐-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분은 아래에 언급된 포스트를 읽어 보아야 합니다. 오른쪽 상단의 '검색 창'을 사용하여 더 많은 포스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 먼저, 찟따(citta), 윈냐-나(viññāna) 및 나-마 곳따(nāma gotta)와 같은 빠알리(Pāli) 용어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Amazingly Fast Time Evolution of a Thought (Citta)’ 포스트와, ‘The Amazing Mind – Critical Role of Nāmagotta (Memories)’ 포스트를 보세요.


[윈냐-나의 6가지 유형]


1. 6가지 감각 입력(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 맛, 감촉, 마음)에 상응하는 6가지 유형의 윈냐-나(viññāna)가 있습니다.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 안식), 소-따 윈냐-나(sōta viññāna, 이식), 가-나 윈냐-나(ghāna viññāna, 비식), 지브와 윈냐-나(jivha viññāna, 설식), 까-야 윈냐-나(kāya viññāna, 신식), 및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 의식)가 그것입니다.


* 우리가 감각 입력을 경험할 때(예를 들어, 물체를 보게 될 때), 행복, 불행, 또는 중립적인 느낌(웨-다나-, vēdanā)을 느끼고, 지각하고(산냐-, saññā), 자동으로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를 생성합니다.

* 윈냐-나(viññāna)는 웨-다나-(vēdanā), 산냐-(saññā) 및 상카-라(sankhāra)를 포함하는 전체적 감각 경험을 제공합니다. 후자의 3 가지(웨-다-나-, 산냐-, 상카-라)를 합쳐서 나-마(nāma)라고 부릅니다.

* 그러나, ‘감각 경험(모두 ’나-마’임)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윈냐-나(viññāna)는 나-마(nāma)와 루-빠(rūpa) 사이에서 ’나-마루-빠(nāmarūpa)’로 가교(다리) 역할을 또한 할 수 있습니다. 이 ‘나-마루-빠(nāmarūpa)’는 물질(rūpa, 루-빠)이 생성되기 위한 씨앗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으로,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라고 부르는, 윈냐-나(viññāna)의 분리된(별도) 유형입니다.


[윈냐-나의 2가지 유형 – ‘위빠-까 윈냐-나’와 ‘깜마 윈냐-나’]


2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는 앎입니다.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은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 무언가를 냄새 맡을 때 그것은 가-나 윈냐-나(ghāna viññāna) 등으로, 감각 입력이 6개의 감각 문(눈, 귀, 코, 혀, 접촉 및 마음)을 통해 올 때 일어나는 6가지 유형의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가 있습니다. 이들은 위 1번에서 열거된 6가지 유형입니다.


* 두 번째 주요 유형은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 또는 오염된 윈냐-나(defiled viññāna)이며, 이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기본적으로 깜마 삐자(kamma beeja, 업 씨앗)로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통해 미래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의 원인이 되고 미래 재탄생도 그 원인이 됩니다.

*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즉,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5개의 육체적 감각 문을 거치지 않고 마음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 또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가 될 수 있습니다.


3.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및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라는 3가지 유형의 오염된 생각(상카-라, sankhāra)를 통해 생성됩니다.


* 감각 입력으로 인해 자동으로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은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입니다. 그 후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큰소리로 말할 수도 있고(와찌 상카-라), 우리가 정말로 끌려 사로잡히면 육체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까야 상카-라). ‘Sankhāra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입 밖으로 말하지 않고 소리 없이 자기 자신에게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도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에 포함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Correct Meaning of Vacī Sankhār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4. 우리는 ‘앎’ 또는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 순간에 각자의 경험입니다.


* 반면에,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잠재 의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숨겨져 있다가 때때로 표면으로 올라오는 희망 또는 바람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차를 사려고한다면, 그 생각(희망/바람)은 잠재 의식 속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사고 싶은 것과 같은 자동차를 보게 될 때, 그 윈냐-나(viññāna)가 각성되어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일단 자동차를 사고 나면, 그 윈냐-나(viññāna)는 사라질 것입니다. 즉, 더 이상 그것(차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는 살고 삶을 즐기려는 바람을 가지기 때문에 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가 바라는 바로 그것을 얻지 못합니다. 이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열 가지 불선행)를 행한다면, 원하는 것에 상관없이 아빠야(apaya, 악처, 사악처)에 태어날 것입니다.


[‘위빠-까 윈냐-나’와 ‘깜마 윈냐-나’가 생기는 메카니즘]


5.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 사이클에서 생성됩니다.Paticca Samuppada’ 섹션을 참조하세요. 위에서 보았듯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상카-라(sankhāra)로 인해 일어납니다. 즉,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a paccayā sankhāra, 아윗자에서 상카-라가 연기)’와,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nkhāra paccayā viññāna, 상카라에서 윈냐-나가 연기)’의 연기 단계로 일어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무지(감각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 오래 지속되는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아는 것)로 인해 아비 상카-라((abhi)sankhāra)를 행함으로써 그러한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를 축적합니다. 즉, 우리는 아닛짜(anicca) 본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6.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는 6가지 감각 기관을 통한 감각 입력으로 인해 여섯 가지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즉, ‘짝꾼짜 빠띳짜 루뻬짜 웁빳다띠 짝꾸 윈냐-낭(cakkunca paticca rupeca uppaddati cakkhu viññānam), 소딴짜 빠띳짜 삿데짜 웁빳다띠 소-따 윈냐-낭(sotanca paticca saddeca uppaddati sōta viññānam),… 마난짜 빠띳짜 담메짜 웁빳다띠 마노- 윈냐-낭(mananca paticca dhammeca uppaddati manō viññānam)’입니다.


* 위 구절은 ‘우리는 눈이 물체에서 오는 빛을 포착할 때 물체를 보고, 귀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 마노- 윈냐-나(manō viññāna)의 경우는 예를 들면 전날에 일어난 것이 마음에 불쑥 들어온 것입니다.

* 6가지 유형의 윈냐-나(viññāna)가 일어나는 과정은 ‘Do I Have “A Mind” That Is Fixed and “Mine”?’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위빠-까 윈냐-나’를 바탕으로, ‘깜마 윈냐-나’를 시작함]


7. 우리가 처음에 경험하는 모든 것은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 때문입니다. 즉,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로 우리에게 옵니다. ‘위빠-까 윈냐-나’가 보게 하고, 듣게 하고, 냄새 맡게 하고, 맛보게 하고, 육체적 감촉을 느끼게 하고, 마음에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게 합니다.


* 이러한 감각입력을 바탕을 하여, 우리는 그 감각 입력이 좋거나(탐함으로 이어짐) 싫으면(성냄으로 이어짐), 새로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nkhāra paccayā viññāna, 상카라에서 윈냐-나가 연기)’를 통해 일어납니다.


8. 우리가 의식적으로 상카-라(sankhāra)를 행하기 시작하면,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nkhāra paccayā viññāna)’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깜마(kamma, 업)를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아비상카-라(abhisankhāra)가 충분히 강하다면, 그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재탄생의 원인이 되는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라고 불리는 특별한 유형의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새로운 바와(bhava, 존재)를 붙잡는 순간에 그 마음의 상태인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는 그 깜마(kamma)를 행할 때에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로 행한 과거 깜마(kamma)의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로 사람을 죽이면, 깜마 삐자(kamma beeja, 업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 ‘깜마 삐자’는 미래에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의 형태로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9. 더 많은 위빠-까(vipāka, 과보)로 이끄는 깜마-(kammā, 업)로 이어지는 위빠-까(vipāka)의 악순환은 우리를 (대부분) 괴로움과 함께 끝없는 재탄생의 산사라(sansara, 윤회)에 묶는 과정입니다.


* 붓다께서는 이것을 “깜마- 위빠-까- 왓단띠, 위빠-꼬- 깜마 삼바오-, 따스마- 뿐납바오- 호-띠, 에완 로꼬- 빠왓따띠(kammā vipākā vaddanti, vipākō kamma sambhavō, tasmā punabbhavō hōti, evan lokō pavattati)”라고 설명합니다.

* 그 의미는 “깜마-(kammā)는 위빠-까(vipākā)로 이어지고, ‘위빠-까’는 곧이어 ‘깜마-’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재탄생(punabbhavō)으로 이어지며, 그것이 세상(존재)이 유지되는 방식이다”입니다.

* 위 구절에서, ‘삼바와(sambhava)’는 ‘산(san)+바와(bhava)’, 즉 ‘더 많은 존재(바와)가 더해짐’을 뜻합니다. 또한, ‘로-까(lōka)’는 ‘세계’를 뜻하고, ‘빠왓따(pavatta)’는 ‘유지함’을 뜻합니다.


10. 다음에 가리키는 것과 같이, 이 악순환을 끊는 것이 닙바나에 이르는 열쇠입니다.


“양 낀찌 둑캉 삼보띠, 삽방 윈냐-나빳짜야-(Yam kiñci dukkham sambhoti, Sabbam viññānapaccayā)”

이 구절은 ‘무슨 괴로움이 일어나든지, 그것은 윈냐-나(viññāna) 때문에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11. 닙바-나(Nibbāna)는 윈냐-나(viññāna, 오염된 의식)가 일어나지 않는 것, 즉 ‘윈냐-나 니로-다(viññāna nirōdha)’를 통해 달성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숫따-(suttā)가 많이 있습니다. 명확한 말씀은 ‘Dvaya­tānu­passa­nā­sutta (Sutta Nipata 3.12)’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양 낀찌 둑캉 삼보띠, 삽방 윈냐-나빳짜야-;

윈냐-낫사 니로데나, 낫티 둑캇사 삼바오.

(Yaṃ kiñci dukkhaṃ sambhoti, Sabbaṃ viññāṇapaccayā;

Viññāṇassa nirodhena, Natthi dukkhassa sambhavo)”.


번역:

무슨 괴로움이 일어나든지, 모든 것은 윈냐-나(viññāna) 때문에 일어난다.

윈냐-나(viññāna)가 일어나지 않으면, 존재는 괴로움이 없다.


여기서 언급하는 윈냐-나(viññāna)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Viññāna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를 보세요.


12. 물론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상카-라 빳자야- 윈냐-나(sankhāra paccayā viññāna)‘ 단계에서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 단계를 필요로 합니다.


* 첫째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a paccayā sankhāra)’ 단계를 피하도록 빤냐(panna)를 계발하여 아윗자(avijja)를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아수바(asubha)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둘째로, 또한, (삶 중의) 재탄생 과정을 멈추거나 미래에 나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기까지 하도록, 사띠(mindful)를 유지하고 아비상카-라(abhisankhāra)가 일어나지 않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두 단계는 모두 필수적이며, 서로 도웁니다. 아닛짜(anicca) 특성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를 멈추기가 더 쉬우며,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를 더 많이 멈출수록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하기가 쉬워집니다.


[명심해야 할 요점]


13.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는 우리 자신이 만드는 상까따(sankata)이며, 또한 깜마 삐자(kamma beeja)라고도 불립니다. 우리는 미혹함 때문에 마노-(manō), 와찌(vaci), 및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를 행하여 그것들을 만듭니다. 그 과정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로 설명됩니다.


* 우리는 사띠(mindful, 주의 깊음)를 유지하고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특히 ‘아뿐나 아비상카라(apunna abhisankhāra, 비도덕적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na)가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14.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때문에 일어나는 재탄생(또는 다른 깜마 위빠-까_kamma vipāka)의 유형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로 설명됩니다. 그 유형은 행해진 아비상카-라(abhisankhāra)의 유형에 따릅니다. ‘빠띠 잇짜(pati icca)’는 ‘사마 웁빠-다(sama uppāda)’로 이어집니다. 이에 대해서는 ‘Paticca Samuppāda – “Pati+ichcha”+”Sama+uppād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그래서 그것들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를 통해 미래에 과보(결과)를 가져옵니다. 살아 있는 한, 아라한(Arahant)일지라도 그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na)를 경험하게 됩니다.

* 그러나 아라한은 죽음의 순간(쭈띠-빠띠산디_cuit-patisandhi 순간)에 새로운 바와(bhava)를 붙잡지 않습니다. 연기에서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 단계가 아라한에게는 작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라한 성자는 어떤 바와(bhava)도 붙잡지 않습니다. 즉 우빠-다-나(upādāna, 밀접하게 끌어당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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