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성스런 팔정도 - 소바나 쩨따시까의 역할
원문: Living Dhamma 섹션의 ‘Noble Eightfold Path – Role of Sobhana Cetasika’ 포스트
- 2016년 9월 30일; 2017년 12월 5일 개정; 2021년 7월 11일 개정; 2022년 8월 26일 개정
1. 이 섹션의 이전 글에서,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 마음의 평화)가 어떻게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 아름답지 않은 정신 요소) 또는 낄레사(kilesa, 오염물)를 제거하고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 아름다운 정신 요소)를 육성함에 따라 일어나는지를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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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에서 필자는 성스런 팔정도의 8요소 중 7가지가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의 세트에 있음을 짚어 보겠습니다.
2. 여기까지 이 시리즈의 포스트에서 이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 마음은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 즉 낄레사(kilesa, 오염물)가 나타나면 열오름/동요(흥분, 불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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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우리 마음에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가 나타나면 진정되고 편안하게 되며 만족감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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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이 사실을 이해하고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를 억제/제거하면서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를 기르는 실천을 할 때까지 이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3. 이 사이트의 다른 곳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찟따(citta)와 쩨따시까(cetasika)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아비담마(Abhidhamma)는 붓다께서 빠리닙바-나(Parinibbāna, 반열반)에 드신 후 3차 상가-야나-(Sangāyanā, 결집 모임)까지 몇 백년 동안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3차 결집에서 완성된 아비담마를 포함한 삼장은 기원전 1세기(기원전 29년)에 스리랑카에서 필사된 것을 남기는 것으로 알루위하라 사원에서 개최된 4차 결집시에 결정(약속)되었습니다. 이 4차 결집은 아라한들이 참석한 마지막 상가-야나-(Sangāyan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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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에 곧 마하-야-나(Mahāyāna, 대승)가 동시적으로 일어남과 함께 순수한 붓다 담마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적 배경’ 섹션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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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이 띠삐따까(Tipitaka, 삼장)를 요약한 것으로 추정된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을 저술하자, 테라와다불자들도 편의상 삼장을 보지(참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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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아무도 쩨따시까(cetasika)의 가능한 중요한 사용법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첫째, 낄레사(kilesa, 오염물)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 아름답지 않은 정신 요소)와 같습니다. 둘째, 성스런 팔정도의 요소는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의 세트에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체계적으로 길(팔정도)을 따라갈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이 포스트의 초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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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있을 데사나(desana, 음성 법문)에서 논의하겠지만, 그 논의에 사용될 수 있는 요약을 여기서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들 데사나에서 사용될 또다른 그런 요약 포스트는 이전 포스트 중의 하나인 “ '낄레사(정신적 오염물)'란 무엇인가? - 쩨따시까에 연결” 에 제시된 요약입니다.
4. 지난 데사나(desana)부터 계속하여 시작하겠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감각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첫 생각이 어떻게 의식조차 하지 않고 일어나는지를 논의했습니다. 이러한 첫 생각은 우리의 가띠(gati) 또는 소바나(sobhana)/아소바나(asobhana) 쩨따시까(cetasika) 또는 가띠(gati)의 세트 때문에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모든 아꾸살라(akusala) 생각은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와 같은 낄레사(kilesa) 때문에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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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말과 신체 행동은 그 첫 생각이 올라오는 것보다 훨씬 느리기 때문에, 우리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반응적인 아꾸살라(akusala) 생각을 계속 경계하여 반응을 역으로 뒤집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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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사띠빳타-나(Satipattāna)’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의 기초입니다. ‘가티와 낄레사가 어떻게 생각에 포함되는가?’ 포스트에 있는 이전 데사나(법문 - 두 개로 나누어져 있음)를 듣고 이 중요한 개념을 완전히 이해해 보세요. 여기, 데사나(법문) 두 개를 링크합니다(오른쪽에 음량 조절부가 있는데, 둘째 법문에서는 음량을 높일 필요가 있을 것 같음).
법문 첫째 부분:
https://drive.google.com/file/d/0B8ZQck7L0xjdaGFsQzc4Rk5JZjQ/view
법문 둘째 부분
https://drive.google.com/file/d/0B8ZQck7L0xjdcUk0bVFnb3JIREk/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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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또한 그러한 가띠(gati)가 어떤 주어진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논의했고, 그것들이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5. 우리는 또한 위 데사나(법문)에서, 감각 사건에 반응하여 일어나는 그 첫 생각을 마노 상카-라(mano sankhāra)라고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마노 상카-라(mano sankhāra)를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우리의 가띠(gati)(소바나/아소바나 쩨따시까의 세트)로 인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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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2월 5일: 그런 마노 상카-라(mano sankhāra)는 그 다음,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머릿속의 침묵의 말과 밖으로 하는 말)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신체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은 위 데사나(법문)에 있는 것과는 다르며, 이 개정된 부분의 이유는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에서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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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가 사띠(sati, 마음챙김)를 유지하면, 그런 ‘아꾸살라 마노 상카-라(akusala mano sankhāra)’를 포착하여 그것이 ‘아꾸살라 와찌 및 까-야 상카-라’로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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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정도에서, 그런 의도적으로 생성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를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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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는 삼마- 사띠(sammā sati)로 행했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6. 위의 데사나(desana)에서 분실된 반지를 본 사람 X의 예를 논의했습니다. X가 강한 탐욕스러운 가띠(gati, 성향, 습관)를 가졌다면, 첫 생각(mano saṅkhāra, 마노- 상카-라)은 그 반지를 자신 소유로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X가 마음챙김(sati, 사띠)하는 것에 대해 안다면, 머리에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로 상황을 평가하고 반지를 자신 소유로 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결론을 내릴 시간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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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가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후에도 물건을 훔치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X는 그 반지를 정당한 소유주에게 돌려 주는 것을 확실히 함으로써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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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이제 우리는 삼마- 사띠(sammā sati)와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의 중요한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과는 달리) 초기의 반응적 결정에 대해 합리적(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부도덕하다면 그 결정을 역으로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집니다.
7. X가 삼마- 사띠(sammā sati)로 행하고 첫 반응의 문제를 깨닫고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로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면, 그는 그 결정을 구현하기 위해 삼마- 와-짜-(sammā vācā, 바른 말)와 삼마- 까망따(sammā kammaṃta, 바른 행위)로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습니다. 그는 카운터(계산대)로 가서, 반지를 넘겨주고, 사무실 직원에게 반지를 주인에게 돌려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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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가능한 한 가지 예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그러한 많은 경우를 접하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누군가 실수로 발을 밟은 것에 언짢아질 수도 있고, 그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소리 지르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그 경우는 거의 낯선 사람일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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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빨리 멈추고 그 사람에게 미소 지으며 큰 문제가 아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안심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아마 그 사람은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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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간단한 친절 행위는 서로를 차분하게 할 것입니다. 상대방은 안도감을 느끼고 친절에 감사할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아귀다툼으로 확대될 수 있었고 서로에게 ‘열나는(화나는) 마음’을 불러 올 수도 있었습니다.
8. 그런 마음챙김 행위의 이득을 알 때, 그런 행을 더 많이 하기 시작할 것이며, 도덕적 삶을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삼마- 아-지와(sammā ājiva) (도덕적인 생계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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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뿐만 아니라, 사람은 마음챙기는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그런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로 이끌 수 있는 어떤 반응적인 생각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삼마- 와-야-마(sammā vāyāma) (도덕적인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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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 또는 몇 달이 지나면, 이것은 깊이 밴 ‘가띠(gati)’를 바꾸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를 사용하는 것을 멈추면, 그것들의 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ā), 즉 삼마- 사띠(sammā sati),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 삼마- 와-짜-(sammā vācā), 삼마- 까망따(sammā kammaṃta), 삼마- 아-지와(sammā ājiva), 삼마- 와-야-마(sammā vāyāma)를 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쁜 가띠(gati)는 줄어들고 좋은 가띠(gati)는 자랄 것입니다.
9. 자, X는 반지를 자신 소유로 하기로 한 그 첫 결정(마노 상카-라, mano sankhāra)의 나쁜 결과에 대해 이성적(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정도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도덕적 견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 깊이, 그는 그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행위(도둑질 행위)’가 부도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반지를 취하는 경향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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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는 대략 ‘지혜’로 번역되는 빤냐(panna)라는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지혜’는 책을 읽는 것으로 길러질 수 없으며, 단지 담마 관련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길러질 수 없습니다. 빤냐- 쩨따시까(paññā cetasika)는 담마(Dhamma)를 배우고 그것에 따라 살아감에 의해(즉, 팔정도를 따라 실천함에 의해) 길러지고, 그 결과로 모하(moha)를 제거합니다.
10. 이제, 팔정도(여기에서는 세간 버전)에 있는 다른 요소와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의 일부 사이의 관련성을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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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팔정도에 있는 3개의 요소인 삼마- 와-짜-(sammā vācā), 삼마- 까망따(sammā kammaṃta), 삼마- 아-지와(sammā ājiva)는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의 목록에 있는 것과 똑같은 이름을 갖습니다. ‘쩨따시까(정신 요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1. 삼마- 상깝빠(Samma- sankappa)는 감각 입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아꾸살라 마노 상카-라(akusala mano sankhāra)가 있더라도 우리가 의도적으로 생성하는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입니다.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는 숫따(sutta)에서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ara)로 묘사됩니다. 위딱까(vitakka)는 생각 대상 쪽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위짜라(vicara)는 그 생각 대상 주위에 마음을 유지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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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나(jhāna, 선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ara)가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에서 두 가지 자-나(jhāna) 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첫 번째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에서는, 예를 들어 마음을 까시나 대상(kasina object)으로 향하게 하여(vitakka, 위딱까), 거기에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vicara, 위짜라).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서는 닙바-나(Nibbāna)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위딱까(savitakka) 및 사위짜라(savicara)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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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삼마- 상깝빠(Samma- sankappa)를 유지하는 것은 ‘도덕적인’ 위딱까(vitakka) 및 위짜라(vicara) 또는 꾸살라 와찌 상카-라(kusala vaci sankhāra)를 생성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말로 밖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생성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것들은 싱할라어에서 ‘상깔빠나(sankalpana)’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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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ara)도 부도덕한 길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강도질를 계획하는 도둑 두목은 그 일에 집중하고 계획을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 쩨따시까(cetasika)는 빠낀나까(pakinnaka)라는 범주에 속합니다. 그것들은 필요에 따라 꾸살라(kusala) 또는 아꾸살라(akusala) 생각(마음)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12. 자, 삼마- 와-야-마(sammā vāyāma)는 이러한 빠낀나까(parkinnaka) 중 다른 하나인 위리야 쩨따시까(viriya cetasika)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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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도덕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삼마- 와-야-마(sammā vāyāma)를 만들고 있고, 그 도둑 두목처럼 부도덕한 삶을 향하여 노력한다면 그는 밋차- 와-야-마(micchā vāyāma)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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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인 사띠 쩨따시까(sati cetasika)는 삼마- 사띠(sammā sati)입니다.
13. 이제,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쩨따시까(cetasika)와 직접 관련이 없는 유일한 요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마-디(samādhi)가 자-나(jhāna) 혹은 적어도 정식 명상에서만 달성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디는 훨씬 더 깊습니다. 다음 데나사(desana)에서 사마-디(samādhi)와 이 포스트에서 요약된 것의 함축을 논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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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토대를 이해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소바나 쩨따시까(kilesa, 낄레사)를 없앰에 의해 마음에서 타-빠(thaapa, 열기)를 제거하고, 이와 동시에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를 육성함에 의해 마음을 식혀서 기쁨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통한 노력입니다.
이것은 이 시리즈의 다음 첫 데사나(desana)에서 언급되었습니다.
법문 :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숨겨진 고통
https://drive.google.com/open?id=0B8ZQck7L0xjdbjdWVV8tbjQ0U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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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두 개의 데사나(desana, 법문)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법문: 이 삶의 괴로움 - 정신적 오염물의 역할
https://drive.google.com/file/d/0B8ZQck7L0xjdODF6a1RQZUJpa1k/view
법문: 사띠빳타-나 숫따 - 이 삶의 괴로움과의 연관성
https://drive.google.com/file/d/0B8ZQck7L0xjdVzhBSllLMXZTZ0E/view
14. 위 데사나(desana)에서 논의된 것처럼,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와 함께 일어나는 아꾸살라(akusala) 생각은 우리 마음을 흐리게 만들고 어둠속에 있게 합니다. 모하(moha)는 어둠입니다. 그것은 로바(lobha)와 도사(dosa)로 이어집니다. 그 어둠은 담마(Dhamma)를 듣거나 읽는 동안 일시적으로 걷힐 수 있습니다(tandanga pahāna, 따당가 빠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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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단계는 마음챙김을 통해 며칠 몇주 동안 빛(지혜)를 유지하고, 오랜 시간 동안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로 이끄는 아꾸살라(akusala) 생각을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윅캄바나 빠하-나(vikkhambana pahāna)이며, 우리가 지금 달성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챙김(sati), 즉 삼마- 사띠(sammā sati)와 함께 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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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극적인 목표는 그런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를 영구적으로 제거하여, 미래의 삶에서도 그 쿨링 다운(cooling down)이 영구적이게(우쩨다 빠하-나, ucceda pahāna)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추후 포스트들에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한 토대를 확립하고, 먼저 장기간 동안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실제로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윅캄바나 빠하-나(vikkhambana pahāna)).
15. 어둠을 없애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합니다. 빛은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인 빤냐-(paññā, 지혜)입니다. 성스런 팔정도는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를 통해 빤냐-(paññā) 쩨따시까(cetasika)를 최적화하고 모하 쩨따시까(moha cetasika)를 없애도록 고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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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루나(karuna)와 무디따/무두따(mudita/muduta)와 같은 다른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도 이 과정을 도와 줍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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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극적으로 퍼즐의 다른 조각(빠띳짜 사뭅빠-다, paticca samuppāda 포함)이 어떻게 모두 함께 어우려져 전체 과정을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으로 만드는지를 알 것입니다. 그것은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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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들은 실라(sila), 사마-디(samādhi), 빤냐-(paññā)의 체계와 일치함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쩨따나 까라니야 숫따(Cetana Karaneeya Sutta)에서 붓다께서는 실라(sila, 도덕적 행위)가 어떻게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로 이어지고,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는 사마-디(samādhi)로 이어지며, 사마-디(samādhi)는 빤냐-(paññā)로 이어지는 지를 상세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앞으로의 데사나(desana)에서 논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