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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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Is It Necessary for a Buddhist to Eliminate Sensual Desires?’ 포스트

2018년 9월 28일


1. 필자는 최근에 (다른 제목으로) 토론 포럼에서 제기된 위의 질문을 보았습니다. 질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재가 불자로서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불합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애) 관계에 있거나 일(직장)에서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을 계획한다면 특히 그렇습니다. . "


  • *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붓다의 성스런 길을 순차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 감각적 욕망(섹스, 음식에 대한 갈망 등을 포함)을 없애는 것은 처음에는 필요하지 않으며 소-따빤나(수다원) 단계까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 닙바-나(Nibbāna)(Arahanthood, 아라한과)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단계적 과정입니다.


2. 필요한 초기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1)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세간적 오계(살생, 도둑질, 잘못된 성관계, 노골적인 거짓말, 술/마약에 취함을 삼가함)를 지키고, 쓸데없는 말, 중상 모략하는 말, 거친 말을 피하는 것입니다. ‘2. The Basics in Meditation’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2) 붓다께서 가르치신 올바른 ‘광대 세계관(31존재계)’를 이해하고, 10가지 유형의 밋짜-딧티(miccāditthi, 사견)을 없애는 것입니다. ‘Mahā Cattārisaka Sutta (Discourse on the Great Forty)’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3. 3) 붓다께서 띨락카나(Tilakkhana, 삼특성) (아닛짜, 둑카, 아낫따 특성)로 말씀하신 ‘심오한 세계관’에 대해 배우는 것입니다. ‘Anicca, Dukkha, Anatta’ 서브섹션의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3.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단순히 ‘무상impermanence’ 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짐)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 수다원도) 성자가 됩니다. ‘31영역의 이 광대 세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 마음에 영구히 자리잡으면,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성자가 됩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는 섹스나 어떤 다른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을 제거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핵심 요점(키 포인트)입니다.


4.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먼저 감각적 욕망을 억압하려는 노력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나’ 또는 ‘자기’라는 타고난(선천적) 감각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 * 그러나, 덧셈 뺄셈을 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대수학이나 고급 미적분학을 배울 수 없는 것처럼, 그 사람들은 이렇다 할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 더구나, 호흡 명상과 같은 것을 함으로써 ‘일상 활동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경감할 수는 있지만, 붓다께서 설명하셨던 괴로움(고통)으로부터 장기적 해방(벗어남)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 * 띨락카나(Tilakkhana, 세가지 특성)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기 전에는 결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5. 붓다 시대에도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른 재가 불자가 많이 있었으며,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행도 계속하였습니다. 그들은 결혼했고 정규 직업을 가졌습니다. 섹스를 포함한 감각적 즐거움을 피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 * 예를 들어, 당시 선도적인 여성 재가 불자였던 위사-까-(Visākā)는 7살에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했고, 그 후 결혼하여 20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고 그런 식으로 계속 살았던 ‘가정을 가진 정규 재가 불자들’이 그 외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 * 물론, 닙바-나(Nibbāna)의 더 높은 단계를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빅쿠(bhikkhu, 출가 불자)가 되었습니다. 빅쿠(bhikkhu)들은 섹스와 기타 감각적 즐거움을 절제하기 위한 계율을 지키도록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6. 오직 아나-가-미(Anāgāmi, 아나함) 성자가 되기 위해서만 감각적 즐거움을 완전히 삼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는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없기는 하지만,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도 아직 감각적 즐거움을 즐깁니다.


  • * 즉,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는 어떤 감각적 욕망을 아직 즐기지만, 집, 자동차 등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소유하려는 갈망은 없습니다.  


7. 더구나, 순전히 의지력으로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고 아나-가-미(Anāgāmi, 아나함) 성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보다 높은 수준에서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욕망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 *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사라지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한 번에 한 단계씩 순차적으로 길을 따라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 * 그런데, ‘나’ 또는 ‘자기’라는 감각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사라질 것입니다!


8. 그러나, 감각적 즐거움을 만끽함, 즉 ‘플레이 보이 유형’의 생활 방식을 유지해서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 *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의 삶은 단순해질 것입니다.

  •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도, 이 단순한 삶의 스타일로 인해 마음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를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9. 물론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함으로써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로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이 길을 택하는 사람들은 빅쿠(bhikkhu)가 됩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섹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합니다.


  • * 사실, 자-나(jhāna, 선정)을 얻으려면, 모든 감각적 욕망을 적어도 억눌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따뿟사 숫따(Tapussa Sutta, AN 9.41)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습니다. “.. 소 코 아항, 아-난다, 위윗쩨와 까-메히 위윗짜 아꾸살레히 담메히 사위딱깡 사위짜랑 위웨까장 삐-띠수캉 빠타망 자-낭 우빠삼빳자 위하라-미(..So kho ahaṃ, ānanda,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 * 이것은 자-나(jhāna, 선정)에 도달할 때는 ‘감각적 즐거움과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에 대한 모든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 * 이 구절은 자-나(jhāna, 선정)를 묘사하는 모든 경(sutta)에 나타납니다.


10. 붓다께서 말씀하신 ‘광대한 세계관’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31개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 영역에서 괴로움(고통)이 가장 심한 곳인 ‘가장 낮은 4개의 영역 (아빠-야, apāya)’에서 인간 영역(고통과 행복이 모두 있는 곳)으로, 그리고 6개의 데와(deva, 천신) 영역과 20개의 브라흐마(brahama, 범천) 영역(행복이 더욱 더 증가하는 곳)으로 갈수록 괴로움(고통)이 줄어들게 됩니다.


  • * 자-나(jhāna, 선정)에서 경험하는 평화로운 느낌은 해당 영역의 브라흐마(brahma, 범천)가 경험하는 감각 경험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자-나(jhāna, 선정)에 도달하는 것이 통찰 명상을 하는 더 나은 심적 경향(마음가짐)을 줄 수는 있지만,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에 도달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 어떤 영역에서도 수명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 어느 영역도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브라흐마(범천) 영역은 수명이 매우 길지만 결국에는 죽을 것이며, 그 다음에 31개 영역의 어느 곳이든 태어날 수 있습니다.

  • * 목표가 영구적인 행복이라면, 결국은 닙바-나(Nibbāna)의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 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몇 안되는 재탄생 후에 아라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11. 이것이 붓다 담마와 다른 종교의 가르침 사이의 주요 차이점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데와(deva, 천신) 영역에서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고, 힌두교는 브라흐마( brahma, 범천) 영역에서 영원한 행복을 약속합니다.


  • * 그러나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전 우주에 있는 유정체와 무정체 모두에 대한 것입니다.

  • * 비록 과학자들(아인쉬타인을 포함하여)은 100년 전에만 해도 우주가 ‘안정 상태’에 있다고 믿었지만, 최근에 그것이 잘못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 그러므로 어떤 영역에 태어난 사람은 거기에서 죽을 것이고 다른 영역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12. 이것이 불자의 최우선 목표가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는 이유입니다.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처음 깨달을 때,  가장 낮은 4개 영역 (apāya, 아빠-야, 악처)에 태어나게 하는 ‘가장 강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행하는 것의 위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 * 그 이해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의 마음에 영구히 등록되며 깨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유혹을 받더라도 결코 그런(악처에 태어나게 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 * 그때에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깨지지 않는(확고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담마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그때에 압니다. 물론 담마(Dhamma)는 붓다에 의해 발견되었고, 상가에 속한 성자에 의해 전승되었습니다.

  • * 그것이 붓다(Buddha), 담마(Dhamma), 상가(Sangha)에 대한 아웻짭빠사-다(aveccappasāda, avecca pasāda, 깨질수 없는 믿음)의 이유입니다. ‘Sotapatti Anga – The Four Qualities of a Sotapanna’ 포스트의 # 4를 참조하세요.

  • * 또한,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는 ‘아리야까-안따 실라(Ariyakānta sila), 즉 ‘깨질 수 없는 지계’를 지닌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의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빠-야(apāya, 악처)에 재탄생되게 하는 정도로 ‘강한 깜마 위빠까를 야기하는 다사 아꾸살라’를 다시는 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행을 하는 심적 경향은 영구적으로 제거되었습니다.


13.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는 그 다음에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을 두 단계로 제거하면서,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와 아나-가-미(Anāgāmi, 아나함) 단계에 도달합니다.


  • * 아윗자-(Avijjā, 사성제에 대해 미혹함)는 아라한 단계에서만 완전히 제거됩니다. 그때가 ‘나’라는 감각 또는 ‘자기’라는 감각이 제거될 때입니다.

  • * 그것은 긴 과정이며 체계적으로 따라야 하는 과정입니다.

  • * 필자가 첫 부분에서 말했듯이, 먼저 덧셈/뺄셈하는 법을 알고, 그리고 대수학을 하는 법 등을 알지 못하면, 고급 수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 * 따라서, 도덕적 행위와, 10가지 유형의 밋짜 딧티(miccā ditthi) 제거는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의 모든 단계에 대한 요구 사항입니다.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갈망)의 제거는 그 다음입니다.


14.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해야할 것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이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사람은 아빠-야(apāya)에 태어나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면, 그 사람은 데와(deva, 천신) 영역을 포함하여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있는 괴로움(고통)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래 ‘담미까 숫따(Dhammika sutta (Snp 2.14))’에 기술된 바와 같습니다.


아브라흐마짜리양 빠리왓자예이야,

앙가-라까-숭 자릿땀와 윈뉴-;

아삼부난또 빠나 브라흐마짜리양,

빠랏사 다-랑 나 아띡까메이야.

  • Abrahmacariyaṃ parivajjayeyya,
    Aṅgārakāsuṃ jalitaṃva viññū;
    Asambhuṇanto pana brahmacariyaṃ,
    Parassa dāraṃ na atikkameyya.


번역:

  • * 현명한 사람은, 불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으므로 (섹스를 피하는) 독신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독신 생활)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남의 배우자와 성관계’ 등 부적절한 성관계를 갖지 않아야 합니다.


  • * 그러나, 그것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이를 때까지 숙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자 주 : Lal 님의 이 말씀의 진의는 수다원에 이르지 못했으면, 부적절한 성관계를 해도 좋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 시기의 차이가 있겠지만, 범부 중생은 어차피 사악처에 떨어져,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할 운명에 있기 때문에 길게 봐서 별 차이가 없다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Lal님의 표현하지 않은 의도도 그렇겠지만, 부적절한 성관계는 수다원에 이를 가능성도 더욱 희박하게 된다는 점에서, 숙고(깊이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려(보통으로 생각)하여 상식적인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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