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산냐-와 그 진정한 의미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Sanna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

- 2017년 12월 31일; 2019년 8월 22일 개정; 2021년 11월 1일 개정

 

1. 산냐-(Saññā)는 보통 영어로 ‘perception(지각)’으로 번역되고 때로는 ‘recognition(인식)’으로 번역됩니다. 그것은 이 둘과 그 이상입니다. 산냐-(Saññā)는 훨씬 더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동시에 더 간단히 정의됩니다.

 

  • * 산냐-(Saññā)는 ‘sangnā’로 발음되며, 그  발음으로 빠알리(Pali)어와 싱할라(Sinhala)어에서 인코딩된 의미를 부여합니다(오디오를 재생하려면 다음 주소를 클릭하세요).

  • https://puredhamma.net/wp-content/uploads/sanna.mp3

  • * 산냐-(Saññā)는 ‘기호’ 또는 훨씬 더 가까운 ‘내재된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후자가 그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외부 신호가 의미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얻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2. 산냐-(Saññā)의 의미를 이해할 때, 산냐-(Saññā)을 통해 인간이 다른 영역의 존재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를 포함하여 많은 것을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 * 산냐-(Saññā)는 보편적 언어(범용어)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winding road ahead(앞은 구불구불한 도로)’라고 쓰여진 표지가 있다면, 영어를 아는 사람들만 그 표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구불구불한 도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보편적 표지(아래 전자)는 [누구에게나] 앞길이 구부려져 있다는 산냐-(Saññā)를 제공합니다.

  • * 두 번째 예(위 후자)는 손으로 된 표지입니다. 그것은 멈추도록 하는 산냐-(Saññā)를 전합니다.

 

3. 근본적인 레벨에서, 산냐-(Saññā)는 대상, 사람, 또는 개념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냐-(Saññā)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 영어로 ‘fire’라고 말하든, 싱할라어로 ‘ginna’라고 말하든, 프랑스어로 ‘fue’라고 말하든, 그것은 동일한 개념을 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낱말들 중의 어떤 것을 불과 연관지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fire’, ‘ginna’, 또는 ‘fue’라는 낱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는 산냐-(Saññā)입니다.

  • * 어떤 사람이 그 3가지 언어(말)을 모른다면, 그 낱말은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그림을 본다면, 누구나 그것이 불 또는 불꽃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산냐-(Saññā)는 ‘즉각적으로 마음에 떠오르는 완전한 그림’입니다.

 

  • 우리가 불에 대해 생각할 때, ‘불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은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 마음은 불을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말하는 언어와 상관없이, 불을 본 모든 사람은 마음 속에 불에 대해 동일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숙고해야 할 결정적인 점이며,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5. 우리의 정신적 몸(gandhabba)은 순수한 산냐-(saññā)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두 간답바(gandhabba)가 의사 소통을 할 때, 그들은 낱말(언어) 또는 그림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통 과정은 훨씬 더 간단합니다. 간답바 X가 간답바 Y에게 말할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간답바 Y가 간답바 X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메시지 또는 산냐-(Sañña)가 자동으로 간답바 Y에게 전달됩니다.

 

  • * 간답바 X가 특정한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싶을 때, 단지 그 방향으로 주의를 기울여 가리키기만(집중하기만) 하면 그 곳을 봅니다. 여기서 자세한 것은 논의하지 않겠지만, 간답바는 우리가 보는 것처럼 빛을 사용하여 사물을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 * 같은 식으로, 간답바는 귀를 사용하여 소리를 듣지는 않습니다.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음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 * 이것은 이전 포스트인 ‘우리의 정신적 몸 - 간답바’에서 간단히 강조한 바와 같이, 우리와 같은 육체가 없는 대부분의 존재가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상호 작용하는 방식입니다.

  • * 누군가 제4자-나(제4선정)에 이르러 아빈냐-(abhiññā, 신통)력을 얻게 되면, 그들은 [육체적] 눈과 귀가 없이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은 딥바 짝쿠(dibba cakkhu, 신성한 눈)와 딥바 소따(dibba sota, 신성한 귀)입니다. 그들은 [이것에] 자신의 정신적 몸(간답바)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보고 듣는 것은 단거리(근거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6. 그러나, 간답바(gandhabba)가 (일반인처럼) 육체 내부에 갇혀 있을 때는 그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제] 육체에 있는 감각 기관(눈, 귀 등)에 의존해야만 정보(신호)를 포착합니다. 뇌는 그 신호를 산냐-(saññā)로 바꾸어 육체 안에 있는 간답바(gandhabba)에 전달합니다.

 

  • * 그 포스트에서, 육체에 갇힌 간답바를 군용 탱크 안에 들어가 있는 운전원에 비교하였습니다. 그것은 좋은 비유입니다.

 

7. 수태(임신)시에, 간답바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접에 의해 형성된 접합자(zygote, 수정란)이라 불리는 단일 세포를 붙잡습니다. 그 단일 세포는 자궁 안에서 아기로 자라고, 태어나서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임신, 낙태, 및 피임에 대한 불교의 설명’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보통 인간에서, 육체는 간답바(gandhabba)를 차폐합니다. 그래서, 간답바는 직접적인 산냐-(Saññā)를 받을 수 없습니다. 시각 대상(광경)과 소리는 ‘산냐-’로서가 아니라 비디오와 오디오 신호로서 눈과 귀를 통해 들어 옵니다. 그 신호들은 간답바(gandhabba)가 파악할 수 있는 산냐-(Saññā)로 변환될 필요가 있습니다.

  • * 아기가 자랄 때, (코, 혀, 몸 뿐만 아니라) 눈과 귀가 그 감각 입력 신호를 포착(캡쳐)하기 위해 발달(개발)되어야 합니다. 뇌에는 또한 그 정보를 산냐-(Saññā)로 변환하여 간답바(gandhabba)로 전송하고 그것이 어떤 물체인지, 사람인지, 또는 개념인지 파악하는 회로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 * 그 능력들이 개발되면, 뇌에서 심장 가까이에 위치한 하다야 와뚜(hadaya vatthu)로 신호 전송이 이루어지는데, 그 신호 전송은 끼라나(kirana), 즉 현대 과학 용어로 ‘전자기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간답바(마노마야 까-야) ㅡ 소개’ 포스트에 간단히 논의되어 있습니다. 

 

8. 아기는 자랄 때, 낱말(용어)와 그림(시각 대상)을 자신이 경험하는 각 대상, 사람, 개념과 연관시키는 것을 배웁니다. 그것은 뇌의 많은 부분을 필요로 합니다. 그 때문에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에서 완전한 기능을 발휘하려면 몇 년이 걸립니다.

 

  • * 그래서, 사람이 누군가 ‘불(fire)’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뇌는 그 소리를 ‘화재 광경(모습)’과 매칭시키고 불(화재)의 정확한 ‘산냐-(Sañña)’로 변환한 다음, 그 변환된 신호를  간답바에 전송합니다.

  • * 낱말(용어)을 그 의미로 연관시키는 것은 뇌(컴퓨터처럼 작용함)에서 일어납니다. 그 다음 그 의미만이 ‘사고(생각)가 생성되는’ 간답바에 전달됩니다.

  • * 필자가 간답바(gandhabba)에 관한 포스트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인간 간답바(human gandhabba)는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태어납니다. 그것은 수 천년의 수명을 가질 수 있으며, 인간 육체로 여러 번 태어날 수 있습니다.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9. 사람의 한 생[여러 번 중의 한 생]에서 뇌의 관련 부분이 나중에 손상되면, 주변 환경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알츠하이머(alzheimer, 치매)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 * 사람이 늙으면, 뇌가 쇠약해지기 시작하고 그러면 다시[즉, 갓 태어났을 때와 마찬 가지로], 외부 세계와 상호 작용하는 능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 그 [육체를 가진] 사람이 죽을 때, 인간 바와의 업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간답바가 죽은 몸에서 나옵니다. 적합한 자궁이 가능할 때, 또 다른 인간 몸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어진 인간 바와 중에 여러 번 태어나는 방식입니다.

 

10. 이제 단순한 인식 이상의 그 다음 레벨의 산냐-(Saññā)로 넘어 가겠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X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자동으로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X의 모습(산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X와의 교류를 통해 그 사람에게 들러붙어 있던 몇 가지 특징을 인식하고 표명할 것입니다. 한 사람은 “아빠다. 나는 아빠를 너무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아, 그는 사기꾼이다”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 * 그 다음 그 산냐-(Saññā)를 기반으로, 각자는 X에 대해 다른 느낌(웨다나, vedana)을 생성할 것입니다. 그것은 좋거나 나쁜 생각(마노 상카라, mano sankhara)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습니다. X에 대해 좀 더 생각을 계속하면, 의식적으로 생각을 더 생성하고 밖으로 소리내어 말할 수도 있습니다(와찌 상카-라, vaci sankhāra). 느낌(감정)이 강해지면, 까야 상카-라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육체 행동으로 이끔).

  • * 그래서, 동일한 생각 대상을 기반으로, 각자는 서로 다른 산냐-(Sañña)를 얻을 수 있으므로 다르게 반응(또는 대응)할 수 있습니다. 

 

11. 일반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교류)하는 것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외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우리의 ‘세계관’에 달려 있습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는 이것을 딧티(ditthi)라고 합니다.

 

  • * 잘못된(그릇된) 세계관(딧티, ditthi)을 가질 때, ‘왜곡된 산냐-(distorted Saññā)’에 근거하여 나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 * 마음이 탐욕, 증오, 무지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견해(밋차- 딧티)를 가려내기가 쉽습니다. 탐욕과 증오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여기서 무지는 부처님의 메시지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 메시지는 물론 단계적으로만 파악될 수 있습니다.

  • * 우선, 도덕적인 삶을 살고, 가능한 한 많이 다사 아꾸살라를 삼가하여 세간적(평범한) 팔정도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 그러면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a)’를 기르기가 쉬워지고, 틸락카나(Tilakkhana)를 파악하기 시작하여,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가 될 것입니다. 곧 있을 포스트에서는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PT Sans"],"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