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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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되고 내 것인 마음이 있는가?


원문: Living Dhamma 섹션의 ‘Do I Have “A Mind” That Is Fixed and “Mine”?’ 포스트

2018년 8월 30일


먼저 적절한 배경(지식)을 갖기 위해 ‘Amazingly Fast Time Evolution of a Thought (Citta)’ 포스트를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1. 예를 들어 나무를 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체계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그냥 읽지 말고, 멈추어 각 요점을 생각해 보세요. 이 포스트에는 응집된(요약된)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이 사이트의 대부분의 포스트가 그렇지만, 이 포스트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 * 나무에서 반사된 빛이 눈에 들어오고 나무의 이미지가 눈 뒤에 형성됩니다. 그것은 망막에 맺히는 매우 작은 이미지지만, 우리는 수많은 잎, 개별 꽃, 과일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 * 어쨌든, 그 이미지는 화학적 신호로 뇌에 전달됩니다. 뇌는 어떻게 나무를 볼까요?

  • *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한 사람은 인공 지능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제프 호킨스(Jeff Hawkins)입니다. ‘On Intelligence’ 라는 책에서 그는 시각(vision)과 다른 감각 입력에 관한 현재의 과학 지식에 대해 논의합니다.


2. 호킨스(Hawkins)는 그 책 p55에서 시작하여, 눈 뒤(망막)에 형성되는 이미지가 어떻게 뇌로 전달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합니다. “외부 세계의 시각 정보는 시신경의 수많은 섬유를 통해 뇌에 보내집니다..”


  • * “이러한 입력은 ‘전선 다발(묶음)’ 또는 ‘광섬유 다발(묶음)’으로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뇌에 대한 입력은 이러한 섬유와 비슷하지만 그것은 축색 돌기(axon)라고 하며, 축색 돌기는 일부는 화학적이고 일부는 전기적인 ‘활동 전위(action potential)’, 즉 ‘스파이크(spike)’라고 하는 신경 신호를 전달합니다."

  • * 거기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시각 신호뿐만 아니라 뇌에 대한 모든 감각 입력 (소리, 맛, 냄새, 및 신체 접촉)은 동일한 유형입니다. 소리를 듣고, 빛을 보고, 압박감을 느끼지만, 뇌 내부에서 이러한 다른 유형의 신경 신호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활동 전위는 활동 전위입니다.

  • * 과학자들은 뇌가 어떻게 다른 유형의 신호를 구별하는지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마음이 어떻게 빛을 보거나 그 나무의 이미지를 보는지 모릅니다.


3. 그 책에서 더 인용하면, “.. 머리 속에는 빛이 없습니다. 거기는 어둡습니다. 뇌에 들어가는 소리도 없습니다. 그 내부는 조용합니다. 실제로, 뇌는 그 자체에서 감각이 없는 유일한 몸 부분입니다. 외과 의사가 손가락을 뇌에 찔러 넣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축색 돌기(axon)의 공간적 및 시간적 패턴으로 들어옵니다.” 


  • * 따라서, 뇌로 들어오는 화학적 및 전기적 신호를 마음이 어떻게 시각 대상, 소리, 맛, 냄새, 및 신체 접촉으로 감지하는지는 수수께끼입니다.

  • * 과학자들은 뇌에서 답을 찾음으로써 이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뇌에서 답을 찾으려는] 이 라인에서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 * 이제 붓다께서 이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셨는지 보겠습니다.


4. 실제 ‘봄’(그리고 ‘들음’, ‘냄새 맡기’ 등)은 간답바-(gandhabbā, 정신적 몸)에 있는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에서 진행됩니다. 간답바-(gandhabbā)는 육체와 겹치는 매우 미세한 메쉬(mesh, 망사)와 같으며,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육체의 심장 근처에 있습니다. 그 ‘간답바-’가 육체(물리적 몸)에 생명을 줍니다.


  • * 육체가 죽을 때 그 미세한 간답바-(gandhabbā)는 유령처럼 육체에서 빠져 나옵니다. 그것은 너무 미세해서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몸이 1초(전) 살아 있다가 죽을 때 나무 조각처럼 완전히 비활성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 물론, 아스트랄 여행(astral travel)을 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나 유체이탈 경험(out-of-body experience)의 경우와 같이, 간답바-(gandhabbā)가 일시적으로 나올 때, 그것(간답바-)은 여전히 육체에 들러붙어 육체를 살아 있게 합니다. 아스트랄 여행(astral travel) 용어에서, 정신적 몸은 보이지 않는 ‘실버 코드(silver cord)’로 물질적 몸(육체)에 부착되어 있다고 합니다.

  • * 그런 경우는 ‘Manomaya Kaya and Out-of-Body Experience (OBE)’ 포스트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5. 또 다른 ‘키 포인트(요점)’는 ‘간답바-’의 미세한 몸에는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 주위에 위치하는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가 있다는 것입니다. 5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는 봄, 들음, 냄새맡음, 맛봄, 및 신체 감촉에 대응하는 짝쿠(cakkhu), 소-따(sōta), 가-나(ghāna), 지와-(jivhā), 및 까-야(kāya)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입니다. 과학자들이 뇌를 다루는 것만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퍼즐(수수께끼)의 ‘누락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 뇌는 위 2번과 3번에서 논의한 그 화학적 및 전기적 신호를 분석하는 매우 정교한 컴퓨터와 같습니다.

  • * 그 화학적 및 전기적 신호(과학자들에 따르면, 약 10밀리 초 시간의 패킷으로 나옴)는 전자기(EM)파로 변환되어 공간을 통해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 주변에 있는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로 전송됩니다.

  • * 이것이 붓다께서 2000여년 전에 가르치신 내용이며, 과학자들이 이 연결을 만들기 전에는 그들은 현재 위치에서 현저한 진보를 이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6. 물론, 붓다께서는 전자기(EM)파로 설명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이 파는 빠알리어 또는 싱할라어에서 끼라나(kirana)라고 합니다.


  • * 세부 사항을 이해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비담바(Abhidhamma)를 배우는 데 진지한 분들에게는 그 노력이 보람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단지 기본 개념을 얻도록 노력하기만 하세요.


7. 예로서, 나무를 보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눈으로부터 뇌로 오는 연속적인 ‘데이터 패킷(data packet)’(위의 3번, 4번에 따른 화학적 및 전기적 신호)은 뇌에 의해 처리되어 전자기파(EM파, kirana)로 변환됩니다.


  • * 그 다음, 그 EM파(끼라나)는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 근처에 있는 짝쿠 빠사-다(cakkhu pasāda)로 이동합니다. 뇌에서 심장까지 이동하는 이러한 EM파는 눈에서 축색 돌기(axon)를 통해 뇌로 이동하는 그 화학적/전기적 신호보다 훨씬 빠르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8. 그러한 EM파(끼라나, kirana) 패킷이 짝쿠 빠사-다(cakkhu pasāda)에 이르면, 하다야 와투(hadaya vatthu)를 치고, 그 나무에 대한 시각적 정보를 마음에 전달합니다. 마음은 실제로 이 신호가 지속되어 전환하는 동안 순간적으로 생깁니다.


  • * 이것은 "짝쿤짜 빠띳짜 루뻬짜 웁빳자띠 짝쿠 윈냐-낭(cakkhunca paticca rupeca uppajjati cakkhu viññānam)"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짝쿠(cakkhu)’는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a)(물리적 눈이 아님)이고,  ‘루뻬짜(rupeca)’에서 루-빠(rūpa)는 나무(실제 나무가 아님!)에 대한 시각적 신호를 전달하는 뇌의 신호입니다.


9. 이것은 깨닫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루-빠(rūpa)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시각적 대상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남자, 여자 또는 나무를 보지 않습니다. 마음에 오는 것은 뇌에서 생성되는 ‘루-빠(rūpa) 신호’입니다. 이 신호에는 해당 시각 대상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습니다.


  • * 짝쿠 빠사-다(cakkhu pasāda)(cakkhu)에 의한 시각적 신호(rūpa)의 수신은 짝쿠 빠사-다(cakkhu pasāda)가 그에 부딪치는 그 [루-빠] 신호를 하다야 와투(hadaya vatthu)로 전송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가 발생합니다. 즉, "짝쿤짜 빠띳짜 루-뻬- 짜 웁빳자띠 짝쿠윈냐-낭(cakkhuñca paṭicca rūpē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ṃ)"입니다.


10. 현대 과학이 모든 세부 사항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것들은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입니다. 시각 의식은 시각 대상에 대한 정보가 마음에 전달될 때 잠깐 동안 일어납니다.


  • * 그러나, 아주 짧은 순간 내에 대상(이 경우에는 나무)이 인지될 뿐만 아니라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인식) 및 다른 정신 요소도 생깁니다.

  • * 예를 들어, 과거에 그 나무를 본 적이 있다면, 마나시까-라 쩨따시까(mansikāra cetasika)가 그 정보도 줄 수 있으므로, 나무의 이름을 즉시 알 것입니다. ‘Amazingly Fast Time Evolution of a Thought (Citt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1. 다른 예에서, 숟가락으로 유리 컵을 두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드리면] 물론,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 * 자, 그 소리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 소리가 유리에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 소리가 숟가락에 있었을까요? [둘 다] 아니지요.

  • * 숟가락이 유리 컵에 부딪힌 결과로 소리가 났습니다. 숟가락이 유리 컵에 닿지 않으면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 * 같은 식으로, 루-빠(rūpa) 또는 눈으로 받아들인 이미지가 짝쿠 빠사-다(cakkhu pasāda)에 와서 하다야 와투(hadaya vatthu)에 부딪치지 않으면, ‘보는 일’, 즉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na)가 없을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마음이라고 하는 ‘실체(entity)’는 없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5가지 물리적(육체적) 감각을 통해 감각 입력을 받을 때 마음이 일어납니다.


  • * 우리가 대개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찟따(citta), 마노-(manō), 마-나산(mānasan), ….’의 빠른 과정을 거친 후 극히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윈냐-낙칸다(viññānakkhandha)입니다. ‘Amazingly Fast Time Evolution of a Thought (Citta)’ 포스트를 보세요.

  • * 우리는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리 컵과 숟가락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실제로 ‘정확히 동시에’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 * 마음에 일어나는 것은 5가지 모든 육체적 감각을 통해 연속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지는 일련의 감각 입력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인식할 뿐입니다.


13.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는  ‘Citta and Cetasika’ 서브 섹션의 ‘Citta and Cetasika – How Vinnana (Consciousness) Arises’ 포스트와 다른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 * 거기에 설명된 바와 같이, 그 과정은 동영상이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영화를 만들 때 실제로 행해지는 작업은 많은 정적 사진을 촬영한 다음,  그것을 충분히 빠른 속도로 재생하는 것입니다. 재생 속도가 너무 느리면 개별 사진을 볼 수 있지만, 특정 ‘영사율(projection rate)’을 초과하면 실제 움직임처럼 보입니다. 다음은 이를 잘 보여주는 비디오입니다.

  • * 동영상 주소: https://youtu.be/V8A4qudmsX0


14. 외부 세계를 볼 때 일어나는 일은 위와 매우 유사합니다. 비디오의 끝에서 우리가 보는 ‘영화’는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붓다께서 설명하셨듯이 그것은 또한 실제 삶에 대해서도 똑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오는 것을 볼 때, 실제로 보는 것은 일련의 ‘정적 그림’입니다. 즉, 찟따(citta)가 마음 속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투사되어, ‘영화와 같은 경험’의 환상을 주는 것입니다.


  • * 마음은 매우 빠릅니다.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 마음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유형의 감각 입력이 동시에 ‘각자의 마음’에 온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영화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분리된 스냅 샷입니다!

  • * 그러나 연속적인 영화(실제로는 많은 개별적 사진 프레임)를 보는 것처럼 연속적인 마음이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15. 이제 마음에 관한 두 번째 문제입니다. 왜 각자가 외부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경험하고, 주어진 감각 입력에 대해  자신의 느낌과 인식(예를 들어 같은 사람을 볼 때 사랑이나 분노)을 가질까요? 그것이 우리가 ‘내 자신의 마음이 있다’는 것과 같이 느끼는 이유입니다.


  • * 핵심은 외부 감각 입력에 대한 우리 반응이 고유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티(성향)의 세트를 기초로 그러한 감각 입력을 인지하고 평가하는 자신의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6. 이전 포스트인 ‘Amazingly Fast Time Evolution of a Thought (Citta)’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느낌과 초기 반응은 우리의 성격이나 가티(gati, 성품)를 반영합니다.


  • * 거기서 감각 입력의 유형이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따라서 외부 감각 입력에 대한 초기 반응은 각자의 가티(gati, 성향)과 감각 입력의 유형에 따라 다릅니다.

  • * 그것은 중요한 포스트이므로 다시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일련의 포스트에서, 필자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없애는 데 진정으로 도움이 될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몇 가지 주요 특징들’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이르는 열쇠(핵심)입니다.


17.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 상태’는 각자의 가티(gati, 성향)와 각자가 받는 감각 입력에 달려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고정된 마음’이 없습니다. 마음은 매우 빠르게 변할 수 있습니다.


  • *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신의 마음이 탐욕으로, 어떤 때는 사랑으로, 하지만 또 다른 어떤 때는 분노로, …가득찬 느낌이 들었던 때를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길(팔정도)을 따라 진전함에 따라, 이러한 마음의 극심한 요동은 줄어들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닙바-나(Nibbāna)로 이끄는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에 이르는 열쇠입니다.

  • * 우리 각자에게는 고정된 마음이 없습니다. 즉, 우리는 자신의 산냐-(saññā), 웨다나-(vedanā), 상카-라(sankhāra), 윈냐-나(viññāna)를 생성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신의 산냐-악칸다(saññākkhandha), 웨다나-악칸다(vedanākkhandha), 상카-락칸다(sankhārakkhandha), 및 윈냐-낙칸다(viññānakkhandha)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 * 더욱이 그것들 중 어떤 것도 ‘내 것’으로 삼는 것은 유익하지 않습니다. 그 인식(‘내 것’이라는 인식)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의 일부입니다.


18.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는 ‘나는 내 몸(body)이다’, ‘나는 내 웨다나-(vedanā, 느낌)다’, ‘나는 내 산냐-(saññā)다’, ‘나는 내 상카-라(sankhāra)다’, 그리고 ‘나는 내 윈냐-나(viññāna)다’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4가지는 ‘나는 내 마음(mind)이다’라고 함께 모아 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제거하는 더 좋은 방법은 “그 모든 실체들은 내 것으로 삼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 * 우리는 ‘나는 나 자신의 몸을 지니고 있다’와 ‘나는 나 자신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와, 그리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삼는 것은 유익하다’고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 먼저 마음을 분석하고 그 진술이 진실인지 살펴 봅시다. ‘나는 나 자신의 몸을 지니고 있다’와 ‘그것을 내 것으로 삼는 것은 유익하다’는 진술은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 *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붓다께서는 그 과정을 분해하여 마음이 어떻게 순차적으로 일어나는지 분석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께서는 자신을 ‘위밧자와-디(Vibhajjavādi)라고 칭하셨습니다. 수바 숫따( Subha Sutta, MN 99 )’를 보세요. 그 숫따에서, “위밧자와-도 코 아하멧타, 마-나와; 나-하멧타 에깡사와-도..(Vibhajjavādo kho ahamettha, māṇava; nāhamettha ekaṃsavād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젊은이여, 나는 위밧자와-디(주어진 과정을 부분으로 분해하여 여러가지 측면에서 분석하는 사람)이다. 나는 한 측면에만 기초한 고정된 견해를 잡지 않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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