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닙바나는 존재하지만, 이 세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Nibbāna “Exists”, but Not in This World’ 포스트
- 2016년 9월 2일 작성; 2020년 3월 22일 재작성; 2022년 8월 10일 개정; 2024년 5월 23일 개정
소개
1. 닙바-나(Nibbāna, 열반)에 대한 오해는 닙바-나의 참된 의미가 수백 년 동안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시리즈(열반 시리즈)의 이전 포스트에서는 닙바-나(Nibbāna)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 섹션의 ‘닙바-나(Nibbāna)’ 서브 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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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아라한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아라한은 이 31영역 세상의 어디에도 재탄생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빠리닙바-나(Parinibbāna, ‘Pari + Nibbāna’, 반열반, 완전한 열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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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리닙바-나(PariNibbāna)에 들 때까지, 아라한은 보통 사람처럼 살며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 과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아라한에게는 ‘탐함과 성냄과 무지로 인해 일어나는 스트레스많은 생각이 생기지 않습니다. 물질적 몸(육체)이 죽을 때까지 아라한은 사우빠디세-사 닙바-나(saupadisēsa Nibbāna, 유여열반), 즉 완전하지(완결되지) 않은 닙바-나(Nibbāna) 상태에 있습니다.
2. ‘이 세상’에 뿌리를 둔 용어 측면에서는 닙바-나(Nibbāna, 열반)를 묘사하는 것(더 정확하게 말하면, 빠리닙바-나 후에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어떤 말도 닙바-나(Nibbāna)가 무엇과 같은 지를 설명하는 데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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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닙바-나(Nibbāna)에 관련된 어떤 데이터(정보)나 개념이나 용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열반은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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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투박한 비유는 물고기에게 물 밖의 삶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일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 대신에 공기로 호흡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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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비유는 수천년 전에서 현재로 시간여행을 한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라디오나 TV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라디오나 TV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정보)를 갖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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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닙바-나 수카’는 느낌이 아닙니다. 그것은 괴로움이 없는 것입니다. 가장 근접한 비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누군가 태어날 때부터 만성 두통을 가졌다고 가정해 보세요. 어느날, 그것이 치료되고 큰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 해방감은 새로운 느낌이 아니라 ‘둑카 웨다나-’가 없는 것입니다.
닙바-나에 대한 숫따
3. 하지만, 닙바-나(Nibbāna)는 그것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31영역 세상으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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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āya)의 우다-나(Udāna) 섹션에는 닙바-나(Nibbāna)를 설명하는 4개의 숫따(sutta, 경)가 있습니다(Udāna 8.1에서 8.4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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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 센트럴 웹사이트(Sutta Central website)에서 숫따(sutta, 경)를 열고, 가장 왼쪽의 드롭 다운을 클릭하여 여러 언어 중에서 선택하여 보세요. 그 웹사이트에서는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유용하다고 생각하면 기부를 고려해 보세요. 참고로 필자는 숫따 센트럴의 운영 또는 운영자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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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웹사이트도] 많은 웹사이트들/책들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빠알리(Pāli) 용어에 대해 그 번역이 빈번히 부정확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정확한 빠알리(Pāli)판은 볼 수 있습니다.
빠타마 닙바-나 빠띠상윳따 숫따 ㅡ 닙바-나는 존재한다
4. 첫 번째 경인 ‘빠타마 닙바-나 빠띠상윳따 숫따(Paṭhama Nibbāna Paṭisaṃyutta Sutta, Ud 8.1)’를 보겠습니다. 빨리(pali)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앗티, 빅카웨, 따다-야따낭, 얏타 네와 빠타위-, 나 아-뽀, 나 떼-조, 나 와-요, 나 아-까-사-난짜-야따낭, 나 윈냐-난짜-야따낭, 나 아-낀짠냐-야따낭, 나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낭, 나-양 로꼬, 나 빠라로꼬, 나 우보 짠디마수-리야-. 따뜨라-빠-항, 빅카웨, 네와 아-가띵 와다-미, 나 가띵, 나 티띵, 나 쭈띵, 나 우빠빳띵; 압빠띳탕, 압빠왓땅, 아나-람마나메웨땅. 에세완또 둑캇사-”띠.”
(“Atthi, bhikkhave, tadāyatanaṃ, yattha neva pathavī, na āpo, na tējo, na vāyo, na ākāsānañcāyatanaṃ, na viññāṇañcāyatanaṃ, na ākiñcaññāyatanaṃ, n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nāyaṃ loko, na paraloko, na ubho candimasūriyā. Tatrāpāhaṃ, bhikkhave, neva āgatiṃ vadāmi, na gatiṃ, na ṭhitiṃ, na cutiṃ, na upapattiṃ; appatiṭṭhaṃ, appavattaṃ, anārammaṇamevetaṃ. Esevanto dukkhass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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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부분은 ‘앗티, 빅카웨, 따다-야따낭(atthi, bhikkhave, tadāyatanaṃ)’입니다. 여기서, ‘앗티(atthi)’는 ‘존재하다’를 의미하고, ‘따다-야따나(tadāyatana)’는 닙바-나(Nibbāna, 열반)의 또 다른 말입니다. ‘따다-야따나(tadāyatana)’는 ‘tath’와 ‘āyatana’를 합성해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서 ‘따스(tath)’(‘thath’로 발음)는 ‘결점없이 완전한’을 의미합니다. 닙바-나(Nibbāna)는 우리가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므로, ‘아-야따나(āyatana)에 가장 가까운 영어 단어는 dimension(차원) 또는 sphere(구)와 같은 것입니다. 이 아-야따나(āyatana)는 ‘나-마루-빠 빳짜야- 살라-야따나’ 포스트에 있는 6가지 감각 기능을 나타내는 6가지 아-야따나와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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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학적으로 결합된 말이 ‘따다-야따나(tadāyatana)’(‘thadāyathana’로 발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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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삐따가(Tipiṭaka) 영어’ 규약(표기법)으로 빠알리(Pāli) 낱말의 철자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띠삐따가(Tipiṭaka) 영어’는 ‘표준 영어(Standard English)’와는 다릅니다.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1부’와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2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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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앗티, 빅카웨, 따다-야따낭(atthi, bhikkhave, tadāyatanaṃ)’의 번역은 ‘빅쿠들이여, 닙바나(열반)는 (모든 것이 결점없이 완전한 곳으로) 존재한다.’입니다.
5. 푸른색 글씨의 두 번째 부분은 닙바-나(Nibbāna)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 부분인 ‘압빠띳탕, 압빠왓땅, 아나-람마나메웨땅(appatiṭṭhaṃ, appavattaṃ, anārammaṇamevetaṃ)’은 ‘뒷받침되지 않고(원인이 없고), 움직이지 않고, 어떤 아-람마나(ārammaṇa, 생각 대상)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뒷 부분인 ‘에세완또 둑캇사-(esevanto dukkhassā)’는 ‘고통(괴로움)의 끝이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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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푸른색 글씨의 두 번째 부분은 우리가 닙바-나(Nibbāna)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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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구절의 나머지(자주색 글씨)는 닙바-나(Nibbāna)에 없는 것을 말합니다.
빠타마 닙바-나 빠띠상윳따 숫따 ㅡ 닙바-나에 없는 것
6. 자주색 굵은 글씨로 표시된 첫 부분은 “거기에는 빠따위-(pathavī, 지대), 아-뽀(āpo, 수대), 떼-조(tējo, 화대), 와-요(vāyo, 풍대) (이 4개를 마하- 부-따, mahābhūta 라고 함)가 없다. 거기에는 아-까-사-난짜-야따나(ākāsānañcāyatana, 공무변처), 윈냐-난짜-야따나viññāṇañcāyatana, 식무변처), 아-낀짠냐-야따나(ākiñcaññāyatana, 무소유처), 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비상비비상처)가 없다. 또한, 거기에는 이 세상(우리가 경험하는 세상)도 없고, 빠라 로까(para loka)(‘간답바_gandhabba’가 사는 곳, ‘간답바가 사는 보이지 않는 세계: 하계(빠라로-까)’ 포스트 참조)가 없다. 그리고 달이나 태양은 거기에 일어나지 않는다.”입니다(‘짠디마수-리야-_candimasuriya’는 ‘달과 태양’을 의미함).
자주색 글씨로 표시된 두 번째 부분은 “빅쿠들이여, 아양 로꼬(ayam loko, 이 세상)와 빠라 로꼬(para loko, 간답바가 사는 세상) 사이를 오고 감이 없고, 그 둘 중의 어느 곳에 살지도 않고, 죽지도(쭈띠, cuti) 않고, 태어나지도 않는 곳이 확실히 있다고 나는 말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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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빠위-(patavī), 아-뽀(āpo), 떼-조(tējo), 와-요(vāyo)가 없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보는 물질로 만들어진 것(사람, 동물, 나무, 다른 행성 또는 별)들이 닙바-나(Nibbāna)에는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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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위 #2에서 논의된 것처럼,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자-나_jhāna’ 포함)이 빠리닙바-나(Parinibbāna) 이후에는 거기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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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물론 ‘아양 로꼬(ayam loko)’와 ‘빠라 로꼬(para loko)’ 사이를 오가는 간답바(gandhabba)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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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어떤 것에 관한 우리의 용어는 거기(닙바-나)에 전혀 적용되지 않습니다.
닙바-나가 없다면 고통(괴로움)은 끝날 수 없다
7. 따띠야 닙바-나 빠띠상윳따 숫따(Tatiya Nibbāna Paṭisaṃyutta Sutta, Udāna 8.3)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 구절이 있습니다.
“앗티, 빅카웨, 아-자땅 아부-땅 아까땅 아상카땅. 노 쩨 땅, 빅카웨, 아바윗사 아자-땅 아부-땅 아까땅 아상카땅, 나 이이다 자-땃사 부-땃사 까땃사 상카땃사 닛사라낭 빤냐-예타. 야스마- 짜 꼬, 빅카웨, 앗티 아자-땅 아부-땅 아까땅 아상카땅, 따스마- 자-땃사 부-땃사 까땃사 상카땃사 닛사라낭 빤냐-야띠-”띠
(“Atthi, bhikkhave, ajātaṃ abhūtaṃ akataṃ asaṅkhataṃ. No ce taṃ, bhikkhave, abhavissa ajātaṃ abhūtaṃ akataṃ asaṅkhataṃ, na yidha jātassa bhūtassa katassa saṅkhatassa nissaraṇaṃ paññāyetha. Yasmā ca kho, bhikkhave, atthi ajātaṃ abhūtaṃ akataṃ asaṅkhataṃ, tasmā jātassa bhūtassa katassa saṅkhatassa nissaraṇaṃ paññāyatī”ti)
번역: “빅쿠들이여, ‘태어나지 않음’, ‘형성되지 않음’, ‘만들어지지 않음’, ‘조건화되지 않음’이 존재한다. 빅쿠들에게 있어서, ‘태어나지 않고’, ‘형성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조건화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면, 여기, 태어나고, 형성되고, 만들어지고, 조건화된 것으로부터 벗어남은 파악(인식)될 수 없다. 그러나 비구들은 ‘태어나지 않음’, ‘형성되지 않음’, ‘만들어지지 않음’, ‘조건화되지 않음’이 있기 때문에, 태어남, 형성됨, 만들어짐, 조건화됨으로부터 벗어남(벗어날 수 있음)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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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지 않음’, ‘형성되지 않음’, ‘만들어지지 않음’, ‘조건화되지 않음’은 닙바-나(Nibbāna, 열반)입니다. 그것은 형성되고, 만들어지고, 조건화된 모든 것을 제거함으로써 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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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이 세상’은 (‘빠띳짜 사뭅빠-다_Paṭicca Samuppāda’ 과정의) 아윗자-(avijjā)로 인해 생성된 오염된 생각(상카-라)를 통해 구축된 바와(bhava)와 자-띠(jāti) 때문에 (주어진 특정 사람에게) 존재하게 됩니다. 아윗자-(avijjā)가 그치면, 그 메카니즘(과정)이 멈추고 더 이상 재탄생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닙바-나(Nibbāna)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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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닙바-나(Nibbāna)를 묘사하는 동류의 숫따(sutta) 두 개, 두띠야닙바-나빠띠상윳따 숫따(Dutiyanibbānapaṭisaṃyutta Sutta, Ud 8.2)와 짯뚯타닙바-나빠띠상윳따 숫따(Catutthanibbānapaṭisaṃyutta Sutta, Ud 8.4)가 더 있습니다. 거기(숫따 센트럴)에서 이용할 수 있는 번역판으로 더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의 비유
8. 한 때, 이교도인 왓짜곳따(Vaccagotta)가 ‘아라한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으로, “아라한은 어디로 갑니까?”라고 붓다께 물었습니다. 상윳따 니까야(Samyutta Nikāya)의 왓짜곳따왁가(Vaccagottavagga)에 있는 일련의 숫따(sutta, 경)에서 문답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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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불꽃이 일어나는 불을 왓짜곳따에게 보여주면서, “이 불이 꺼지면, 이 불이 어디로 간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왓짜곳따는 이 물음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불이 꺼지면 단지 그 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바로 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불의 비유와 같이, 아라한이 죽으면, 아라한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므로 31영역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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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쭈뚜-빠빠-다 냐-나(cutūpapāda ñāna)로 신통력을 가진 자는 보통 사람이 죽은 후에 재탄생하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삶의 흐름은 31영역 중에서 어떤 한 곳에 계속됩니다.
라-각카요 도삭카요 모학카요 ㅡ 이당 윳짜띠 닙바-난
9. 붓다께서는 이 세상의 불만족한 특성(아닛짜_anicca 특성)을 기반으로 세상 것에 대한 갈망을 포기함으로써 닙바-나(Nibbāna)를 얻는 방법만 단지 설명할 수 있으셨습니다.[열반을 얻거나 얻지 않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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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라-각카요 도삭카요 모학카요 ㅡ 이당 윳짜띠 닙바-난”띠(“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ㅡ idaṃ vuccati nibbānan” ti)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 마음속의 라-가(rāga, 탐함), 도-사(dōsa, 성냄), 모-하(mōha, 무지)를 제거하여 닙바-나(Nibbāna)를 얻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닙바나(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를 들어, 닙바-나빤하 숫따(Nibbānapañhā Sutta, SN 38.1)와 사-만다까 숫따(Sāmaṇḍaka Sutta, SN 39.1)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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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를 때까지는 라-각카야(rāgakkhaya, 탐함 제거)‘를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라-각카야(rāgakkhaya)는 까-마 라-가(kāma rāga, 감각적 욕망)의 제거를 통해 아나-가미(Anāgami, 아나함, 불환자) 단계에서 부분적으로 달성되며, 루-빠 라-가(rūpa rāga, 색계에 대한 갈망)와 아루-빠 라-가(arūpa rāga, 무색계에 대한 갈망)의 제거를 통해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 완전히 달성됩니다.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는 도-사(dōsa)를 빠띠가(patigha) 수준으로, 모-하(mōha)를 아윗자-(avijjā)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빠띠가(patigha)는 아나-가미(Anāgāmi) 단계에서 제거되고, 아윗자-(avijjā)는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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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섹션인 ‘리빙 담마’에서, 이러한 점에 대해 언급하며, 재탄생과 같은 더 심오한 레벨의 개념을 언급하지 않고 기초 수준에서 시작합니다.
닙바-나에는 단계적으로 도달됨
10. 요점은 닙바-나(Nibbāna, 열반)가 단계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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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닙바-나(Nibbāna)의 첫 단계, 즉 니웨-마(Niveema) 또는 ‘불이 사그라드는 것(cooling down)’은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기 전에도 먼저 경험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단계를 건너뛰고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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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성을 어느 정도로 이해해야 합니다. 마음이 그 개념을 파악할 수 있도록 다섯가지 장애(빤짜 니와-라나, panca nivārana), 즉 자신의 마음을 덮고 있는 다섯가지 요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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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위해,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붓다 담마를 숙고하기 시작해야 하며, 그 결과로 일어나는 ‘쿨링 다운(불이 사그라드는 것)’를 경험해야 합니다.
11. 많은 사람들이 닙바-나(Nibbāna, 열반)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개념을 읽음으로써 닙바-나(열반)를 얻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닙바-나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그렇게 많은 책들은 기본적인 쿨링 다운(cooling down, 불이 사그라드는 것), 즉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를 경험하지 못했을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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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순야따(sunyata, 공)와 보디찟따(bodhicitta, 보리심)와 같은 개념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순야-따(또는 순냐-따)(텅빔/공)는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것은 완전히 시간낭비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낱말로 닙바-나(Nibbāna, 열반)를 기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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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에, 사람은 닙바-나(Nibbāna)를 단계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도덕적 삶을 시작하고 단계적으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를 버릴 때 경감 또는 쿨링 다운(불이 사그라듬)을 경험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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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군다나, 아닛짜(anicca) 특성을 처음으로 이해하기까지는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감에 따라) 아닛짜(anicca) 특성은 점차적으로 분명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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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는 ‘마하 찻따리사까 숫따( ‘마하- 짯따-리-사까 숫따(대 40가지에 대한 법문)’ 참조)’에서 점진적인 길을 따르는 것의 중요성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붓다 담마에서 독특한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도 또한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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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탄생을 믿지 않는 사람도 이 레벨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리빙 담마’ 섹션의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닙바-나는 담마-가 아니라, 빠라맛타 담마-다
12. ‘대통합 이론인 담마 - 소개’ 포스트에서,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4 가지의 궁극적인 요소(paramatta dhammā, 빠라맛따 담마-)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4 가지의 궁극적인 요소(paramatta dhammā, 빠라맛따 담마-)는,
(i) 생각(찟따, citta)
(ii) 생각의 질 또는 정신 요소(쩨-따시까, cētasika)
(iii) 물질(루-빠, rūpa)
(iv) 열반(닙-바나, Nibbān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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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담마-(dhammā)는 일반적으로 처음 세 개의 빠라맛따 담마-(paramatta dhammā) 세 가지 모두의 조합입니다. 담마-(Dhammā)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품고(지니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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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목록에 있는 네 번째 빠라맛따 담마-(paramatta dhammā)인 닙바-나(Nibbāna)는 31영역 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닙바-나(Nibbāna)는 존재하며, 유정체는 닙바-나(Nibbāna)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는 물질적 몸(육체)이 죽을 때 닙바-나(Nibbāna)와 합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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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닙바-나는 이 세상에 있는 담마-(dhammā)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품고(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 ‘bhava udda dhamm’)는 “바와(bhava)가 일어나는 것을 멈추는 방법을 설명하는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담마(Dhamma)’(대문자 D와 단음 a가 있음)는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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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마-(dhammā)’(장음 a가 있음)는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의 ‘깜마와 빠띳짜 사뭅빠-다(Kamma and Paṭicca Samuppāda)’ 서브섹션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닙바-나는 니로-다 사마-빳띠로 경험될 수 있다
13.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성자, 즉 닙바-나(Nibbāna, 열반)를 달성한 사람의 관련 특성에 대해 언급해 봅시다.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에 들지 않는 한, 아라한 성자는 열반의 행복(완전한 열반을 경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아라한 성자는 최대 7일 동안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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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성자가 니로-다 사마-빳띠(Nirōdha Samāpatti)에 들어 있을 때, 그 성자의 마음을 통해 흐르는 찟따(citta, 생각)는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호흡이 없으며, 아라한의 몸이 보통 체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사체(시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점은 아라한뜨(Arahant) 성자가 우리에게 ‘닙바-나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그 성자는 어떠한 ‘세상 생각들’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만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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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때에, 아라한뜨(Arahant) 성자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경험할 것이며, 그 성자는 사람/사물, 소리, 냄새 등을 인식할 것입니다. 유일한 예외는 라-가(rāga, 탐함), 도-사(dōsa, 성냄), 모-하(mōha, 무지)로 짐 지어진 생각들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 아름답지 않은 정신요소)는 그 생각(찟따)들에 없습니다. ‘낄레사란 무엇인가? - 쩨따시까와 관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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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라한 성자는 부처님의 행과 마찬가지로 뿐냐 끼리야(puñña kriya, 법을 설하는 것과 같이 중생에게 도움되는 행)로 활동합니다. 이 활동은 단지 ‘행위’일 뿐이며,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공덕행) 또는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는 아닙니다.
닙바-나와 빠리닙바-나
14. 여기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어떤 아라한들은 육체가 죽을 때, ‘인간 바와(human bhava)의 업력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보세요. 그러나 그럼에도, 모든 아라한은 이 31영역 세상에 또 다른 재탄생을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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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유는 ‘아라한과(Arahanthood)의 간답바 상태’는 그 (현생의) 조밀한 인간 몸 외에 다른 ‘미세한 몸’을 지니거나 다른 몸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라한의 육체가 죽을 시에, 그 사체에서 나오는 간답바는 사라집니다. 아라한의 마음은 31영역 내의 존재를 붙잡지 않으므로, 재탄생 과정은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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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의 간답바 까-야(gandhabba kāya)에 일어나는 것은 히터 코일을 수조에서 꺼내면 타버리는 것과 유사합니다. 가열된 코일은 물에 잠겨 있는 한,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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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육체에서 나온] 간답바의 미세한 몸(trija kaya = kammaja kaya + cittaja kaya + utuja kaya)은 아라한과 관련된 에너지를 품을 수 없습니다. ‘아비담마’ 섹션의 ‘간답바(마노마야 까야)( gandhabba (Manomaya Kaya) )’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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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식으로, 데와(Deva, 천신)나 브라흐마(Brahma, 범천)의 미세한 몸도 아라한의 마음을 유지할(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데와(Deva)나 브라흐마(Brahma)가 아라한과(Arahanthood)에 도달하면 즉시 빠리닙바-나(Parinibbāna)에 이릅니다. 즉, 데와(Deva) 또는 브라흐마(Brahma) 영역에는 살아있는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가 없습니다.
15. 우리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생각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물에 잠겨 있는 히터 코일은 끓는 물에 잠겨 있는 동안에는 통과하는 전류를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에서 코일을 꺼내면 타버립니다. 히터 코일이 물 속에 잠겨 있지 않으면, 그것은 통과하는 전류에 견딜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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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식으로, ‘아라한 성품(Arahanthood, 아라한과)의 간답바 상태’는 그 생의 ‘사람 몸’ 내에서만 지속(유지)될 수 있습니다. 일단, 아라한과에 도달한 간답바(gandhabba)가 그 ‘사람 몸’에서 나온다면(육체가 죽으면), 아라한 성품(Arahanthood)은 그 간답바 몸(아라한 성품의 간답바)으로는 별도로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아라한과(Arahanthood)의 성자가 되면 재가자로도 7일 이상은 더 살 수 없습니다. 일단 아라한과(Arahanthood)에 이르면 그 성자는 7일 내에 빅쿠(Bhikkhu, 출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며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재가자의 그 재가생활은 아라한과의 성자에는 맞지 않아 재가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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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리닙바-나(Parinibbāna)(아라한의 육체적 죽음)로 닙바-나(Nibbāna)가 완결(완성)됩니다. 싱할라(Sinhala)어로는 삐리니와나(pirinivana)라고 합니다. 니와나(nivana)는 닙바-나(Nibbāna)를 의미하고, 삐리(piri)는 ‘완전한’ 또는 ‘완결(완성)된’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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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닙바-나(Nibbāna)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닙바-나(Nibbāna), 즉 빠리닙바-나(Parinibbāna)에 이른 자는 더 이상 31영역 이 세상 안에 없습니다. [빠리닙바-나(Parinibbāna)에 이르면] 아빠-야-(apāyā)의 가혹한 고통을 포함하여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