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주요 경 몇 개에 따라본 아닛짜와 둑카와 아낫따
원문: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Anicca, Dukkha, Anatta – According to Some Key Suttas’ 포스트
- 2016년 1월 20일 개정; 2017년 12월 3일 개정; 2018년 1월 26일 개정; 2020년 7월 2일 개정
첫 번째 성스런 진리 (dukkhā sacca, 둑카- 삿짜)를 이해하는 열쇠는 ‘이 광대(더 넓은) 31영역 세상’의 세 가지 특성(띨락카나),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몇 개의 주요 숫따(sutta)를 검토해 봅시다.
담마 짝까 빠왓따나 숫따 (SN 56.11)
1. 아닛짜(Anicca)로부터 어떻게 고통이 일어나는가는 바로 첫 번째 경전인 ‘담마 짝까 빠왓따나 숫따(Dhamma Cakka Pavattāna Sutta, SN 56.11)’에 명시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숫따(sutta)의 본문 일부입니다.
“Idam kho pana, bhikkhave, dukkham ariyasaccam: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ā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āṃ—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2. 빅쿠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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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띠삐 둑카-(jātipi dukkhā)’는 ‘태어남은 괴로움을 야기한다’(모든 태어남은 고통/괴로움과 죽음으로 끝난다)를 의미합니다. ‘자라- 삐 둑카-(jarā pi dukkhā)’는 ‘좋아하는 것의 쇠퇴는 괴로움을 야기한다’를 의미하고, ‘마라난 삐 둑카-(maranan pi dukkhā)’는 ‘좋아하는 것의 죽음은 괴로움을 야기한다’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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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더하여, ‘사랑스러운 사람이 떠나야 할 때 슬픔을 일으키고, 증오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비탄을 일으키게 된다‘는 의미인, “..압삐예히 삼빠요고 둑코, 삐예히 윕빠요고 둑코(..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가 이어집니다.
3.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요약하여, “얌삣창(얌 삐 잇창) 나 라바띠 땀삐 둑카-앙(yamp’iccham (yam pi iccham) na labhati tam’pi dukkhām)”라고 합니다. 여기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ada, ‘pati + ichcha’와 ‘sama + uppada’)에서 접한 ‘잇차(ichcha)’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라바띠(labhati)’는 ‘얻다(get)’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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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고통(괴로움)에 이르게 한다.’는 이 구절에는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아닛짜(anicca)입니다. ‘무상(impermanence)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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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것은 ‘첫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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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잇짜(icca)와 잇차(iccha) (싱할라어로 ඉච්ච와 ඉච්ඡ)는 띠삐따까(Tipitaka, 삼장)의 서로 다른 경(sutta)에서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마지막 음절에 강세(악센트)를 둔 ‘잇차(iccha)’라는 낱말은 ‘강한 잇짜(icca), 즉 ’강한 들러붙음‘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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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바른 발음에 대해서는, ‘초기 유럽 학자들이 채택한 '띠삐따까 영어' 규약 ㅡ 제1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낫따 락카나 숫따
4. 붓다께서는 첫 번째 숫따가 가르쳐진 뒤 2주 내에 5명의 빅쿠들에게 ‘아낫따- 락카나 숫따(Anattā Lakkhana Sutta, SN 22.59)’를 가르치셨습니다. 다음은 붓다께서 빅쿠들에게 물으신 질문들입니다.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Anicc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Dukkhaṃ, bhante”.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No hetaṃ, bhante”.
5. 첫 번째 질문은 "빅쿠들이여, 모든 루-빠(rūpa)는 닛짜(nicca)인가, 아닛짜(anicca)인가?", 즉, "빅쿠들이여, 모든 루-빠(물질 존재)는 계속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있는가, 계속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없는가?”입니다.
그리고, 빅쿠들의 대답은 “계속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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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루-빠(rūpa, 물질)는 ‘내부 물질’일 수도 있고 ‘외부 물질’일 수도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수명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영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 또는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물품은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을 때 그 물품을 포기해야 하므로, 그 어떤 물품도 우리를 만족스럽게 할 수 없습니다.
6. 두 번째 질문은 "계속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없는 그런 실체가 고통(괴로움)으로 이끌 것인가, 행복으로 이끌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빅쿠들의 대답은 “고통으로 이끌 것입니다. 부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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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실체가 영구적이지 않다면, 그것이 고통(괴로움)으로 이끌 것인지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빈 라덴이 살해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괴로움)을 받았을까요? 단지 그가 살아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고통(괴로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기뻐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첫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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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질문은 "계속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없고 고통(괴로움)에 이르게 하고 위빠리나-마 담마(viparināma dhamma, 예기치 않게 변화하는 담마)인 그런 실체를 ‘나 자신’이나 ‘나의 것’이나 어떤 실질(실속)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빅쿠들의 대답은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처님.”입니다.
그 다음 붓다께서는 그 아닛짜, 둑카, 아낫따 특성은 또한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는 관련되어 있고 보편적이다
7. 여기서 세 가지 질문의 순서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루-빠(rūpa)가 계속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가리켜 보이셨습니다. 그러한 루-빠(rūpa)에 집착하는 것은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그런 루-빠들을 실질(실속)이 있는 것으로 간주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아닛짜 특성의) 루-빠에 대해 닛짜 산냐-(nicca saññā)를 지니고 있으므로 아닛짜(anicca)는 둑카-(dukkhā)와 아낫따-(anattā)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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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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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사이의 관계는 쌍윳따 니까-야(Samyutta Nikāya)의 아짯따-닛짜 숫따( Ajjhattānicca Sutta )에서, “Yad aniccaṃ taṃ dukkhaṃ, yaṃ dukkhaṃ tad anattā”로 가리켜 보였습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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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아닛짜, 둑카, 아낫따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특성입니다.
무상(impermanence)은 항상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8. 붓다께서는 단지 각자(유정체)의 몸만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아닛짜(anicca)는 모든 상카-라(sankhāra)와 상까따(sankata)에 적용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계속 만족스럽게 유지될 수 없습니다. 즉, “삽베- 상카-라 아닛짜-(Sabbē sankhāra aniccā)”입니다. 그런데,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무상하다(영원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불필요합니다. 물론 모든 상카-라는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어쨌든 상카-라가 어떻게 영구적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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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무상은 항상 고통/괴로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죽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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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빈 라덴의 죽음은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괴로움을 야기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에, “어떤 것이 자신이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다면, 그것은 괴로움을 야기한다”는 진술은 타당합니다. 빈 라덴의 죽음은 그의 추종자들에게만 괴로움을 야기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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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우리에게 두통/부상/질병이 있고 그것이 영구적이라면, 고통받지 않을 까요? 그 조건들이 무상하기에 치료를 통해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9. 우리는 "좋은 물건"을 축적하려고 노력하지만, 죽을 때 그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가야 합니다. 재탄생 과정을 되풀이할 때, 우리는 단지 각 생에서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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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회 중의 대부분 생에서 고통(괴로움)이 훨씬 크고 많습니다. 인간과 천신과 범천의 영역에서 행복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좋은 생’은 매우 드물게 만납니다. 붓다께서는 유정체의 본거지는 사악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정체는 가끔 다른 영역에 태어날 때도 있지만, 항상 본거지(사악처)로 돌아와서 집(본거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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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바로 붓다께서 ‘중생들이 너무나 많은 고난을 겪고 있는 이 끝없는 재탄생(윤회) 과정이 결실(실속)없고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아낫따-(anatt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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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닛짜(anicca)와 둑카-(dukkhā) 때문에 무아(no-self) 또는 무혼(no-soul)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닛짜(anicca)일 뿐이라는 것, 즉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잘못된 시각(닛짜 산냐)를 갖고 있는 한, 우리는 고통(괴로움)을 당할 수 밖에 없으므로 참으로 어찌할 수 없이 난감합니다. 즉, 아낫따(anattā)입니다.
기리마난다 숫따
10. 기리마난다 숫다( Girimananda Sutta (AN 10.60) )는 띠삐따까(Tipitaka) 중의 또 하나의 결정적 숫따(sutta)이며,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아닛짜(anicca)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이 숫따(sutta)를 아난다 존자에게 설하셨으며,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기리마난다 존자를 위해 암송하도록 하셨습니다. 다음은 숫따(sutta)의 중간 부분에 있는 핵심 구절입니다.
“까따마- 짜-난다(짜 아난다), 삽바상카-레수 아닛차 산냐-?
이다-난다(이다 아난다) 빅쿠 삽바상카-레수 앗띠-야띠 하라-야띠 지굿차띠.
아양 브웃짜따-난다(브웃짜띠 아난다), 삽바상카-레수 아닛차 산냐-.”
(“Katamā cānanda (ca Ananda), sabbasaṅkhāresu aniccha saññā?
Idhānanda (Idha Ananda) bhikkhu sabbasaṅkhāresu aṭṭīyati harāyati jigucchati.
Ayaṃ vuccatānanda (vuccati Ananda), sabbasaṅkhāresu aniccha saññā.”)
번역:
"아난다여, 모든 상카-라(sankhāra)에 대한 (올바른) 지각은 무엇인가?
여기 아난다 빅쿠에서,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고기없는 뼈와 같고, 실속이 없고, 소변과 대변처럼 버려지는 것이다.
그것을 아난다라고 부른다. 그것이 모든 상카-라(sankhāra)를 지각해야 하는 방법이다.”
11. 여기서, 붓다께서는 모든 상카-라(sankhāra)의 특성을 설명하십니다. (삽바(sabba)는 ‘모든’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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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띠(atti)는 ‘뼈’를 뜻합니다. 개는 정말로 뼈를 씹는 것을 즐깁니다. 그러나 뼈를 씹을 때 거기에는 영양분이나 맛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개의 잇몸 출혈이 시작되고, 그것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뼈를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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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라(hara)’는 ‘실속, 실질’을 뜻하고, ‘하라-얏띠(harāyati)’는 실속(실질)이 없음‘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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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지(ji)와 구(gu)(‘jee’와 ‘goo’로 발음)는 ‘소변’과 ‘대변’을 뜻하는 빠알리어 및 싱할라어의 낱말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잇짜(icca)(‘ichcha’로 발음)는 ‘좋아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굿짜띠(jiguccati)는 (싫어해야 하는) 소변과 대변을 좋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굿짜띠(jiguccati)는 ‘지(ji)’ + ‘구(gu)’ + ‘잇짜띠(iccati)’로 합성되어 ‘소변과 대변을 좋아함’을 의미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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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아비)상카-라는 피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이것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들어맞습니다.) [역자주: 뿐냐비 상카라는 개발해야 할 것임]
12. 여기 또 다른 결정적인 점은 붓다께서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인데, 산냐-(saññā, 지각)는 주 정신요소(cētasika, 쩨-따시까) 중의 하나입니다. 아닛짜(anicca)는 앞에서 아낫따- 락카나 숫따(Anattā Lakkhana Sutta)를 검토할 때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마음 속의 지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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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impermanence)은 우주에 있는 것의 물리적 본질입니다. 과학자들은 우주에 있는 어떤 것도 영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아닛짜(anicca)의 지각(인식)을 주지는 않습니다. 무상(impermanence)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 닙바-나(Nibbāna)를 성취할 수 있는 과학자는 없습니다.
아닛짜는 무상(impermanence)을 뜻하지 않는다
13. 따라서 아닛짜(anicca)는 무상(impermanence)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무상(impermanence)에 대한 빠알리 낱말은 아니야따(aniyata)와 아뚜와(addhuva)입니다. 세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면, 어떤 상카-라(sankhāra)도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상카-라(sankhāra)는 즐길 것을 얻는데 몰두하는 생각과 말과 행위입니다. 어떤 것도 자신을 계속 만족스럽게 할 수 없고 결국 고통(괴로움)으로만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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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실속(결실)없다’는 것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인식(지각)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직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아라한들에게는 (‘까-야 상카-라’인) 숨쉬는 것조차도 관련된 짐(부담)으로 본다고 말해지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은 상카-라(sankhār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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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부도덕한 행위과 관련된 ‘아뿐나-비 아비상카-라(apunnābhi abhisankhāra)’의 부적합함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벌받을 만한 행위의 결과를 파악할 수 있을 때, 마음은 그러한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수다원 단계에 이르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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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하게 될 때, 깨끗해진 마음은 (도덕적인 행위와 관련된) ‘뿐나-비 아비상카-라(punnābhi abhisankhāra)’도, 그리고, 무색계 선정 상태의 즐거움(아넨자비 아비상카-라, anenjhabhi abhisankhāra) 조차도 실속(결실)없다는 것을 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잇짜 숫따 (쌍윳따 니까-야)
14. 잇차 숫따( Iccha Sutta (SN 1.69) )는 잇짜(icca)가 무엇인지(그래서 아닛짜(anicca)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께낫수 밧자띠- 로꼬, 낏사 위나야-야 뭇짜띠;
낏삿수 윕빠하-네나, 삽방 친다띠 반다난”띠
“잇차-야 밧자띠- 로꼬, 잇차- 위나야-야 뭇짜띠;
잇차-야 윕빠하-네나, 삽방 친다띠 반다난”띠
(“Kenassu bajjhatī loko, kissa vinayāya muccati;
Kissassu vippahānena, sabbaṃ chindati bandhanan”ti.
“Icchāya bajjhatī loko, icchā vinayāya muccati;
Icchāya vippahānena, sabbaṃ chindati bandhanan”ti.)
번역:
“세상을 함께 묶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풀려나는가?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가?”
"세상은 잇차(iccha, 좋아함)에 의해 묶여있다. 잇차(iccha, 좋아함)를 잃어 자유로워지고,
잇차(iccha, 좋아함)를 잃음으로써 모든 속박이 없어지게 된다"
잇짜(icca)라는 낱말은 ‘좋아함’을 의미하며, 닛짜(nicca)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닛짜(nicca)’는 어떤 것들을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지각을 의미합니다(그리고 아닛짜는 그 반대를 의미: ‘na + icca’). 닛짜(nicca)의 지각은 잇짜(icca)로 이어집니다. 즉, 사람은 세상 것들이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믿고, 그것들을 붙잡기를 좋아합니다. 문어(낙지)가 8개 다리 모두로 어떤 것을 잡고 놓지 않는 것처럼, 사람 및 다른 유정체들도 세상 것들을 즐기기를 바라면서 그것들을 붙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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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숫따(sutta)에서 잇차(iccha)라는 낱말은 앞에서 언급된 ‘담마 짝까 빠왓따나 숫따(Dhamma Cakka Pavattāna Sutta)와 같이 ‘강한 들러붙음’을 강조하기 위해 잇짜(icca) 대신에 사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숫따 해석의 핵심 문제
15.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를 설명하는 수많은 숫따(sutta)가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해석으로 시작한다면, 그 숫따(sutta) 중 일부는 잘못된 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많은 숫따들은 관련 개념들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숫따(sutta)에서는 닛데-사(niddēsa) 버전으로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주석서(싱할라 앗타까타, Sinhala atthakatha)에서 상세하게 설명(patiniddēsa, 빠띠닛데-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숫따 해석 - 웃데-사, 닛데-사, 빠띠닛데-사’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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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을 야기한 근본 원인은 붓다고사 스님에 의해 저술된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가 테라와다(Theravada) 전통에 의한 핵심 주석서로 받아들여져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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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부분의 빅쿠들은 띠삐따까(Tipitaka, 삼장) 또는 띠삐따까에 남아 있는 세 개의 원본 주석서를 읽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에 있는 것을 따르기만 합니다. 그것은 과거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닙바-나(Nibbāna, 열반)을 얻는 것에 하나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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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띠삐따까(Tipitaka) 안에 보존된 원본 주석서(‘싱할라 앗타까타, Sinhala atthakatha’ 보다 훨씬 더 이전 것) 3개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붓다 담마에 대한 잘못된 해석’ 포스트와 ‘붓다 담마의 보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리고, 전통적인 번역에 따르더라도, 붓다께서 ‘자아(self)’와 ‘무아(no-self)’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아래 숫따(sutta, 경)가 있습니다.
찬나 숫따 ㅡ 아낫따(Anatta)는 무아(No-Self)를 의미하지 않는다
16. 찬나 숫따(‘Channa Sutta (SN 22.90)’)는 전통적인 영어 번역문에서도 아낫따(anatta)가 무아(no-self)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다음은 ‘Channa Sutta: To Channa (SN 22.90)’에 있는 번역문입니다.
『‘모든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첫 번째 극단이다.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번째 극단이다. 이 두 가지 극단을 피하면서, 따타가따(Tathagata)는 중간을 통해 담마를 가르친다:
무지를 필수조건으로 하여 형성이 일어난다. 형성을 필수조건으로 하여 의식이 일어난다. 유사하게, 정신-물질, 6가지 감각기능, 접촉, 느낌, 갈애, 집착/유지, 되어짐(바와), 태어남(탄생)이 일어난다. 태어남(탄생)을 필수조건으로 하여 늙음과 죽음, 근심,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 등이 작용하게 된다. 이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의 기원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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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가 ‘유정체(살아있는 존재)’에 적용될 때 ‘무아(no-self)'로 번역됩니다. ‘사람’에 관하여서는, 자아(self)는 하나의 극단이고, 무아(no-self)는 다른 극단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존재한다’거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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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위의 사이트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테라와다(Theravada) 웹사이트와 문헌에서는 ‘아낫따(anatta)’를 ‘무아(no-self)’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 이 ‘무아(no-self)’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 자신의 번역(특히, 찬나 숫따)으로부터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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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유정체이든 전체 세상이든, 그(것)들이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빠띳짜 사뭅빠-다에 따라) 적절한 조건과 원인이 있을 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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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앗따 ㅡ 두 가지 매우 다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