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6가지 근본원인 - 로까 사무다야(괴로움의 발생)와 로까 니로다야(열반)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Six Root Causes – Loka Samudaya (Arising of Suffering) and Loka Nirodhaya (Nibbāna)’ 포스트
- 2018년 6월 19일; 2022년 8월 21일 재작성; 2023년 12월 10일 개정
로-까 사무다야(Lōka Samudaya)는 ‘전체 새로운 세계의 생성’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죽고 다시 태어날 때, 그것은 ‘그 사람이 새로운 세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재탄생 과정의 멈춤은 로-까 니로-다야(lōka nirōdhaya)이며, 그것은 닙바-나(Nibbāna)와 동일합니다.
‘사무다야’와 ‘니로-다야’의 의미
1. 로-까 사무다야(Lōka Samudaya, Samudaya = san + udaya)는 ‘괴로움이 가득한 이 세상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을 뜻하고, 로-까 니로다야(Lōka nirōdhaya, nirōdhaya = nir + udaya)는 ‘영구적으로 재탄생 과정이 멈추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그 생명흐름에 대해 존재하는 것이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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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빠알리어든 어떤 언어든) 낱말의 의미는 문맥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로-까 사무다야(lōka Samudaya)는 ‘전체 새로운 세계/우주의 생성’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음이 다가와 재탄생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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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좋지 않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의 재탄생이 고통으로 가득한 영역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할 때 이해가 될 것입니다.
31영역의 삶은 6가지 근본 원인으로 인해 일어난다
2. 세상을 일어나게 하는 근본원인(물-리까 헤-뚜, mūlika hētu)은 6가지가 있으며, 로-바(lōbha, 탐함), 도-사(dōsa, 미워함/성냄) 및 모-하(mōha, 10가지 유형의 잘못된 견해를 가짐)와,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 아도-사(adōsa, 미워함/성냄 없음), 및 아모-하(amōha, 모-하가 없음)가 그것입니다. 후자 3가지는 단지 표면적으로 그런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의 평범한(세간)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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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바나 도-사나 모-하 중의 하나 이상이 작용할 때, 네 가지 악처, 즉 아빠-야-로 재탄생되게 하는 깜마 씨앗(깜마 삐-자, kamma beeja)이 생성됩니다. 달리 말하면, 나쁜 강성상카-라(아뿐냐 아비상카-라, apunna abhisankhāra)가 생기고, 그래서 나쁜 윈냐-나(viññāna) 등이 생겨서, 나쁜 바와(bhava)와 나쁜 태어남(자-띠, jāti)으로 이어지게 됩니다(‘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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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식으로, 평범한(세간) 아로-바나 아도-사나 아모-하 중의 하나 이상이 인간계 이상의 선처로 재탄생되게 하는 깜마 씨앗(깜마 삐-자, kamma beeja)을 생성합니다. 거기서는, ‘좋은 윈냐-나(viññāna)’ 등으로 좋은 강성상카-라(뿐냐 아비상카-라, punna abhisankhāra)가 생기고, 그것은 좋은 바와(bhava)와 좋은 태어남(자-띠, jāti)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궁극적 실체에서 ‘좋은 영역’은 없다
3. 그러나, 인간 영역 이상의 그 좋은 영역도 고통/괴로움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나이들고 죽는 것은 모든 영역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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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른 관점에서 보면, 근본원인 두 세트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동전의 한 면만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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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 말하면, 좋은 재탄생을 하는 것이 나중에 나쁜 재탄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나쁜 영역에 재탄생이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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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가-미/아라한 단계에 더 가까워져) 사성제를 이해할 때에만 ‘이 세상’의 어떤 영역에 재탄생하는 것의 헛됨과 위험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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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에 길을 순차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로-바, 도-사, 모-하는 아빠-야(악처)에 태어나게 한다 ㅡ 평범한(세간) 아로-바, 아도-사, 아모-하는 좋은 영역(선처)에 태어나게 한다
4. 로-바(lōbha, 탐함), 도-사(dōsa, 성냄), 및 모-하(mōha, 미혹함)는 아빠-야-(apāyā, 악처/사악처)로 가게 하는 음식(아-하-라, āhāra)입니다. 그것들은 상카-라의 더 나쁜 형태, 즉 아뿐냐 아비상카-라(apunna abhisankhāra, apuññābhisaṅkhāra)를 일으킵니다. 사람은 로-바, 도-사, 및 모-하로 빠-빠 깜마-(pāpa kammā)(부도덕한 행)을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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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 아도-사(adōsa, 성냄 없음), 및 아모-하(amōha, 미혹함 없음)의 평범한(세간) 버전, 즉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로 뿐냐 깜마-(puñña kammā)(도덕적인 행)을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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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빠-빠 깜마-(pāpa kammā)뿐만 아니라 뿐냐 깜마-(puñña kammā)도 아윗자-(avijjā, 무지)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지는 사성제(31영역의 어떤 곳에 태어나는 것은 미래 괴로움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는 것)를 모르는 것입니다.
모하와 평범한(세간) 아모하는 모든 보통 인간(뿌툿자노)에게 일어날 수 있다
5. 보통 사람에게, 생각은 (평범한/세간 아모하에 기반한) 도덕적 뿌리나 (모하에 기반한) 부도덕한 뿌리와 함께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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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 행위(뿐냐 깜마, puñña kamma)는 평범한(세간) 아모하(amoha)로 행해지고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 puññābhisaṅkhara)를 수반합니다. 부도덕한 행위(빠-빠 깜마, pāpa kamma)는 모하(moha)로 행해지고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 apuññābhisaṅkhara)를 수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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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냐 깜마-(puñña kammā)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위빠-까(vipāka)를 가져옵니다. 빠-빠 깜마-(Pāpa kammā)는 스트레스가 쌓인 마음으로 이어지고 나쁜 위빠-까(vipāka)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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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람에게 아윗자-(avijjā)는 평범한(세간) 아모하(amoha)와 함께 하더라도 아누사야(anusaya)로 (숨겨져)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행한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아꾸살라ㅡ물-라 우빠빳띠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로 일어나는 뿐냐-비상카라 (puññābhisaṅkhara)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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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만이 닙바-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뿐냐 깜마-(puñña kammā)는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틸락카나를 이해함과 함께 자동적으로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가 됩니다.
모든 6가지 근본 원인은 재탄생 과정(윤회)이 계속되게 한다
6. 그러므로, 모든 6가지 근본원인은 재탄생 과정을 계속되게 합니다. 그러나 재탄생 과정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나쁜 근본원인 3가지(로-바, 도-사, 모-하)만 없애면 됩니다(그리고, ‘빤냐-_paññā’를 기르면 됩니다). 즉, “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idaṁ vuccati nibbānan’ti”입니다. ‘Sāmaṇḍaka Sutta – SN 39.1’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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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반(닙바-나)에 이르는 길은 먼저 3가지 부도덕한 근본원인(뿌리)을 줄이고 3가지의 평범한(세간) 도덕적 근본원인(뿌리)을 기르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 다음, 사성제를 이해하고 빤냐-(paññā, 지혜)를 길러야 합니다. 그 때에 뿐냐 깜마-(puñña kammā)를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로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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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반을 얻기 위해서는 선처에 있어야 하므로, 우선 악처에 태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쁜 근본원인 3가지(로-바, 도-사, 모-하)는 악처에 태어날 수 있게 하므로, 또한 낄레사(kilēsa, 오염원)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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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처(특히, 인간계)에 일단 태어나면, 성자(아리야)로부터 성스런 진리들을 배울 수 있고, 충분히 공부/수행하여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점진적으로 평범한(세간) 아모하(amoha)에서 빤냐-(paññā)로 상승시킵니다.
빤냐-는 평범한 아모하가 아니다 ㅡ 그것은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7. 평범한(세간) 아모하(amoha)는 로바(탐욕, lobha)와 도사(증오/분노, dosa)가 없는 것뿐입니다. 더 깊은 (로꼿따라/출세간, lokottara) 아모하(amoha)는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 또는 틸락카나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를 이해하는 빤냐-(paññā, 지혜)입니다. 그 세 가지(사성제/연기/삼특상) 중 하나를 이해하면 세 가지 모두를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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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를 이해할 때, ‘좋은 영역’에 태어나려는 갈망도 잃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또한 (‘아윗자-_avijjā’가 있는) 다양한 유형의 상카-라(saṅkhāra)를 육성하는 것이 어떻게 31영역 중의 하나에 태어남으로 이어지는지를 진짜로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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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 단계에서 빤냐-(paññā, 지혜)가 최적화될 때, 그 마음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에서 어떤 재탄생으로 이끄는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 단계를 거치지 않습니다. ‘우빠-다-나와 우빠-다-낙칸다의 개념’( ‘Concepts of Upādāna and Upādānakkhandha’ ) 서브섹션의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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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팔정도의 마지막 8번째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 정정)를 완성하면 (‘빤냐-_paññā’가 최적화될 때) 삼마- 냐-나(Sammā Ñāna, 바른 앎) 단계에 이르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삼마- 위뭇띠(Sammā Vimutti, 바른 해탈)를 얻습니다. 즉, “dasa angehi samannāgatō Arahant”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에 있는 ‘꾸살라-물라 빳짜야- 상카-라’
8. 누군가 성스런 진리를 따르기 시작할 때, 그 아윗자- 아누사야(avijjā anusaya)는 단계적으로 제거됩니다. 그래서, 적어도 어떤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실제로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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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의 상카-라(saṅkhāra) 유형이 ‘꾸살라-물라 빳짜야- 상카-라(kusala-mula paccayā saṅkhāra)’인 이유입니다. 따라서 그런 상카-라(saṅkhāra)는 ‘꾸살라 상카-라(kusala saṅkhāra)’라고 말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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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살라(kusala)는 ku(꾸)와 sala(살라)의 합성어이며, 부도덕함(ku)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모든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는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 아도-사(adōsa, 성냄 없음), 및 아모-하(amōha, 미혹함 없음)라는 3가지 좋은 근본원인을 수반하며, 성스런 진리를 이해함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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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다시피,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ara)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의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하에서 나옵니다.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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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서는 모든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뿐냐 끼리야-(puñña kriyā)가 됩니다. 아라한(Arahant)은 오염원/번뇌가 없으므로, 다루어지는(작용하는) 아꾸살라(akusala)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라한이 행하는 모든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업력이 없는 좋은/선한 행위일 뿐인) 뿐냐 끼리야-(puñña kriyā)가 됩니다.
뿐냐 깜마-와 꾸살라 깜마 사이의 차이
9. 그러므로, 아윗자-(avijjā)를 제거하지 않더라도, 즉, 빤냐-(paññā, 지혜)를 계발하지 않고도 뿐냐 깜마(puñña kamma)를 행할 수 있습니다.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은 보시하고 다른 이들을 연민하는 등의 행위를 합니다. 불교도(특히, 성자)가 된다는 것은 그 이상입니다. 그것이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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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따빤나 아누가-미 단계 이상의) 성자들만 꾸살라 깜마를 행할 수 있습니다. 꾸살라 깜마를 행하는 것은 사성제 / 빠띳짜 사뭅빠-다 / 띨락카나를 이해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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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아라한 단계에 이를 때까지) 성자들에게 뿐냐 깜마-(puñña kammā)는 효과적으로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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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은 더 이상 제거할 아꾸살라(akusala)가 없습니다. 따라서, #8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라한의 모든 뿐냐 깜마-(puñña kammā)는 (업력이 없는 좋은/선한 행위일 뿐인) 뿐냐 끼리야-(puñña kriyā)가 됩니다.
두 가지 팔정도
10. 성스런(출세간) 팔정도에 이르기 전에 사람들은 평범한(세간) 팔정도를 따라야 합니다. ‘마하- 짯따-리-사까 숫따(대 40가지에 대한 법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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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선행은 두 레벨로 행해집니다. 평범한(세간) 팔정도에서는 뿐냐 깜마(puñña kamma)를 행할 수 있습니다. 성스러운 진리를 이해하기 시작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동일한 행위가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됩니다. ‘뿐냐 깜마 – 다나, 실라, 바와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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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서, 뿐냐 깜마(puñña kamma)는 어느 정도까지 오염되어 있으며, 틸락카나(Tilakkhana)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성스런 길(팔정도)에서 더 강력한 꾸살라 깜마(kusala kamma)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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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평범한(세간) 아-로바(mundane alōbha)’에서,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을 잃고 다른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출세간 아-로바(lōkōttara alōbha)’에서는 이 세상 것들의 무가치함을 앎으로써, 갈망을 잃습니다.
성스런 진리를 이해할 때까지, 모든 깜마는 재탄생 과정을 존속시킨다
11. 가장 도덕적인 보통 사람(뿌툿자노, puthujjano)이라고 해도, 세상의 3가지 특성(틸라카나, Tilakkhana)을 이해함에 따라 3가지 나쁜 근본원인이 마음에서 제거될 때까지 현생이나 내생에서 나쁜 강성상카-라(abhisankhāra)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3가지 나쁜 근본원인은 아누사야(anusaya, 잠재성향)로 감춰져 있다가 적당한 조건하에서 표면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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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면, X가 유혹 대상을 접하면, 로-바(lōbha, 탐함)가 함께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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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다른 때에 X가 굶주린 사람을 보면, 아로-바(alōbha, 탐함 없음), 아도-사(adōsa, 성냄 없음), 및 아모-하(amōha, 미혹함 없음)가 함께하는 마음이 일어나, 그 사람을 돕는 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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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 성자는 6가지 근본원인을 모두 제거한 자입니다. 그러나, 굶주린 사람을 보면 빤냐-(paññā, 지혜)에서 나오는 적절한 행을 합니다. 그것은 또한 ‘끼리야(kriya)’라고 하며, 업적 결과가 없는 단지 행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