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Sankhāra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
2017년 2월 25일; 2018년 1월 3일 개정, 2019년 7월 25일 개정; 2020년 5월 17일 개정; 2021년 1월 23일 재작성; 2022년 12월 23일 개정[영문법 및 경미한 사항 개정임]
2021년 7월 7일 개정 [서문 추가 개정임]: 상카-라(sankhār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필자는 사성제와 띨락카나(Tilakkhana) 및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의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주요 담마 개념’ 섹션에 ‘붓다 담마의 기본 틀(Basic Framework of Buddha Dhamma)’이라는 새로운 서브섹션을 시작했습니다. 그 서브섹션에 이 포스트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정신적 형성’? ㅡ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정신적 형성(mental formations)’과 ‘형성(formations)’은 상카-라(sankhāra)에 대한 일반적인 번역입니다. 실로, 전자가 더 나은 번역입니다. 하지만 상카-라(sankhāra)의 개념을 파악하고 그 [빠알리]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필자는 산냐-(saññā)와 윈냐-나(viññāna)와 같은 대부분의 결정적 빠알리 용어에 대해서도 그와 같이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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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카-라(sankhāra)는 ‘산(san)’ + ‘카-라(khāra)’의 합성어로서, 산(san)을 수반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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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마음에 일어납니다. 그것들이 의식적인 생각이나 말로 이어질 때,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라고 합니다. 신체(육체) 행동으로 이어지는 그 의식적인 생각들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입니다. 그 반면에,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마음에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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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산(san)’은 자신이 하는 것을 생각하는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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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카-라(sankhāra)는 현재의 삶(일상 생활)을 살기 위해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의 원인이 됩니다. 상카-라(sankhāra)는 또한 미래의 삶에 과보를 가져올 수 있는 도덕적 /비도덕적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상카-라의 분류
2. 첫 번째 분류: 상카-라(Saṅkhāra)는 마노(mano), 와찌(vaci), 및 까-야(kāya)라는 세 가지 유형일 수 있습니다.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ā)는 각자의 가띠(gati)로 인해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유형의 음악을 들을 때 ‘좋아하는 생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각자의 가띠(gati)에 달려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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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ā)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그것들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기(자기 자신에게 말하기) 시작할 수도 있고 위 예의 그 음악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 둘 모두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입니다.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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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는 우리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의식적인 생각’입니다.
업적으로 중립 여부
3. 두 번째 분류: 어떤 상카-라(saṅkhāra)는 업적으로 중립입니다. 다른 것들은 업적 결과를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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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사기 위해 가게에 가려고 생각하는 것은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입니다. 그 사람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사용하여 가게로 걸어갑니다. 둘 다 업적으로 중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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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함, 성냄, 무지를 수반하는 생각은 업적 결과를 가집니다. 그것들은 미래에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강한 상카-라(saṅkhāra)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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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에 대해 성내는 생각을 하는 것은 업적 결과를 가지는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입니다. 그 다음 그 사람을 때리면, 그것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로 행해집니다. 둘 다 업적 결과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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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적 결과가 있는 상카-라(saṅkhāra)는 업(깜마)의 유형에 따라 분류될 수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논의하겠습니다.
업적 결과를 가지는 상카-라
4. 세 번째 분류: 업적 결과를 가지는 것들은 세 가지 범주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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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뿐냐 상카-라(apuña saṅkhāra)는 (탐욕, 증오, 무지가 있는) ‘오염된 생각’입니다. 아뿐냐(apuñña)는 ‘부도덕한(비도덕적인)’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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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반면에, 뿐냐 상카-라(puñña saṅkhāra)는 (탐욕, 증오, 무지가 없는) ‘도덕적인 생각’입니다. 그것들은 올바른(적절한) 말과 행동의 원인이 되고, 좋은 업적 결과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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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적 결과를 갖는 세 번째 유형이 있으며, 그것은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입니다. 이것들은 재탄생(아래 참조)으로 이어지는(이끄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 범주에만 해당됩니다[역주: 재탄생의 역할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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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거나 나쁜 깜마-(kammā는 그 유형들의 상카-라(saṅkhāra)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것들은 현생이나 내생에서 즉시 결과(kamma vipāka, 깜마 위빠-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깜마-(kammā)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깜마란 무엇인가? – 깜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5. 업적 결과를 지닌 강한 상카-라(saṅkhāra)는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이며, 여기서 ‘아비(abhi)’는 ‘강한(strong)’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보통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것들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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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 즉 아뿐나-비상카-라(apunnābhisaṅkhāra)는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태어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강한’ 상카-라(saṅkhāra)는 일반적으로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입니다.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ā)는 업적 결과를 가져 오지만 재탄생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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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 즉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ṅkhāra)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 영역, 6가지 데와(Deva) 영역, 및 16가지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upāvacara Brahma) 영역에 ‘좋은 태어남’으로 이어집니다. 이것들은 ‘도덕적 행위’를 하고 하위 4가지 루빠-와짜라 자-나(rupāvacara jhāna)를 기르는 것을 포함합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것들은 길(팔정도)에서 진전을 이루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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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넨자-비상카-(āneñjābhisaṅkhāra), 즉 아-넨자 아비상카-라(āneñja abhisaṅkhāra)는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upāvacara Brahma)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상위 4가지 아루빠-와짜라 자-나(arupāvacara jhāna)를 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4가지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upāvacara Brahma)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상카-라, 깜마, 깜마비-자, 깜마위빠까’ 포스트의 #3을 참조하세요.
왜 ‘좋은 상카-라’도 ‘아윗자-’로 일어나는가?
6. ‘빠띳짜사뭅빠-다 위방가(Paṭiccasamuppāda Vibhaṅga)’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 단계를 “땃타 까따메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 뿐냐-비상카-로, 아뿐냐-비상카-로, 아-넨자-비상카-로.(Tattha katame avijjā paccayā saṅkhārā? Puññābhisaṅkhāro, apuññābhisaṅkhāro, āneñjābhisaṅkhāro.)”로 설명합니다.
번역: “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는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뿐냐-비상카-라, 아뿐-냐비상카-라, 아-넨자-비상카-라’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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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와 아-넨자-비상카-라(āneñjābhisaṅkhāra)가 ‘좋은 상카-라(saṅkhāra)’라면, 그것들이 어떻게 아윗자-(avijjā)로 인해 일어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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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결정적인 점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과 ‘열반을 향하여 노력하는 것’을 구별합니다.
아윗자-는 사성제에 대한 무지다!
7.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연기)/띨락카나(삼특상)을 이해하지 않고도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고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를 기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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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바로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이 가득한 낮은 영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상위 영역에 셀 수없이 많은 횟수로 태어난 이유입니다. 대부분의 중생들은 현재 ‘나쁜 영역(아빠-야, apāyā)’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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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일부는 현재 좋은 영역에 살고 있지만, 사성제/빠띳짜 사뭅빠-다(연기)/띨락카나(삼특상)를 이해할 때까지 우리는 미래에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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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이해해야 할 결정적인 점입니다.
붓다 담마의 본질(정수) ㅡ 사성제, 빠띳짜 사뭅빠-다, 띨락카나
8. 사성제(네가지 성스런 진리)는 (1) 재탄생 과정은 고통/괴로움으로 가득차 있고, (2) 그 고통/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우리의 갈망(잇차-_icchā/땅하-_taṇhā로 요약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아윗자-_avijjā)이며, (3) 고통/괴로움으로 가득찬 재탄생 과정은 ‘아윗자-_avijjā/땅하-_taṇhā’가 제거될 때 끝날 것이고, (4) 그것을 성취하는 길은 성스런 팔정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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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어떻게 좋거나 나쁜 재탄생(자-띠, jāti)이 아윗자-(avijjā)를 통해 (아비)상카-라((abhi)saṅkhāra)의 생성으로 인해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ā)’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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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띨락카나(Tilakkhana)는 왜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려면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세간) 팔정도를 기르는 것이 우선입니다. ‘마하- 짯따-리-사까 숫따(대 40가지에 대한 법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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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소따빤나 아누가-미(Sotapanna Anugāmi)가 됩니다. 그 시점에서 자동적으로 성스런 팔정도로 전환합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다양한 막가 팔라(magga phala)로 이어져 결국 아라한 단계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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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위의 요약을 통해 상카-라(saṅkhāra)라는 낱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웨다나와 마노 상카-라 사이의 관계
9. 상카-라(saṅkhāra)를 생성하려면, 먼저 무언가를 느끼고(웨다나-, vedanā) 인식/지각(산냐-, saññā)해야 합니다. 그 ‘무언가’는 여섯 가지 감각 기능(기관) 중 하나를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ṇ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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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a)(‘찟따 상카-라_citta saṅkhāra’와 동일)는 쭐-라웨달라 숫따(‘Cūḷavedalla Sutta, MN 44’)에서 “산냐- 짜 웨다나- 짜 찟따 상카-로(saññā ca vedanā ca citta saṅkhāro)”로 정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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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ṇa)가 마음에 들어오면, 마노/찟따 상카-라(mano/citta saṅkhāra)(‘웨다나-_vedanā’, ‘산냐-_saññā’)가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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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ā)는 (‘깜마 위빠-까_kamma vipāka’로 인한) 새로운 아-람마나(ārammaṇa)와 함께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아래에서 논의하는 것처럼, 그런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ā)는 각자의 가띠(gati)/아누사야(anusaya)에 따라 일어납니다.
마노 상카-라에 기초하여 우리는 새로운 깜마를 생성할 수 있다
10. 그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깜마(kamma, 업)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 아-람마나(ārammaṇa)에 들러붙게 되면, 예를 들어 그것을 더 많이 즐기는 것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부도덕한 말/행동, 즉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인 와찌(vaci) 및 까야(kaya) 상카-라(saṅkhāra)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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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어떤 아-람마나(ārammaṇa)(예를 들어, 누군가가 선행을 하는 것을 보는 것)로 ‘좋은 도덕적인 생각(와찌 상카-라)’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더 많은 ‘와찌 상카-라’)으로 진전될 수 있고, (그 사람이 그 노력을 계속하도록 돕는 것과 같이) ‘까야 상카-라’로 행동을 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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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초기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ā)는 좋거나 나쁠 수 있으며,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 또는 아뿐냐-비상카-라(apuññābhisaṅkhāra)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마노 상카-라와 가띠/아누사야
11. 그 초기 마노- 상카-라(manō saṅkhāra)들은 각자의 가띠(gati)/아누사야(anusaya)로 인해 자동적으로 마음에 일어납니다. 그 다음에 와찌(vaci) 및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가 생성되고, 우리는 그것들을 통제합니다. 예를 들어,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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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생각하기, 말하기, 행동하기의 씨앗은 첫 번째 감각 입력의 순간, 즉 관심을 끄는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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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 입력이 강하면(그리고 좋아함 또는 싫어함으로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런 많은 찟따 위티(citta vithi)가 재빨리 흐를 것입니다. 이것은 해당하는 와찌(vaci) 및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로 이어져, 속으로 말하거나, 소리내어 말하거나, 신체 행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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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을 자세히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에 있는 새로운 서브 섹션인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용어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the Terms in Paṭicca Samuppāda)’에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좀 더 세부사항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방법
12. 위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음은 오염되지 않은 마노 상카-라(mano saṅkhāra)가 자동적으로 일어날 때까지 순수하지 않습니다. 그때쯤이면 아누 사야(anusaya)와 ‘오염된 가띠(gati)’는 마음에서 이미 제거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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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항상 마음을 챙기고 명상의 세 가지 매우 중요한 단계를 따름으로써 달성됩니다. (1) 나쁜 와찌(vaci) 및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를 멈추고, (2) 좋은 와찌(vaci) 및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를 기르고, (3)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성제(네 가지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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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제(네 가지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하면 재탄생 과정의 위험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이해와 함께, '삶을 즐기는 것'에서 '열반을 추구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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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기 위해서는 감각적 즐거움에 있는 숨겨진 위험을 ‘보아야(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들러붙는 경향’(위 #10 참조)이 감소합니다. 그럴 때 ‘뿐냐-비상카-라(puññābhisaṅkhāra)’는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로 ‘전환’되어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집니다. ‘꾸살라와 아꾸살라 깜마; 뿐냐와 빠-빠 깜마’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링크된 포스트를 적극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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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성스런 길을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가 팔정도에서 첫 번째 단계입니다.
13. 다음의 ‘지혜로운 말’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과정을 요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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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생각(와찌 상카-라, vaci saṅkhāra)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말(더 강한 와찌 상카-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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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말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행동(까-야 상카-라, kāya saṅkhāra)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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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행동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습관(가띠, gati)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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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습관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들이 그대의 성향(더 강한 가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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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성향을 감시하고 조심하라 ㅡ 그것이 그대의 운명(미래 탄생)이 된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단계들은 그 순서를 묘사합니다. 다음은 더 명확한 설명입니다.
와찌 및 까-야 상카-라는 업 에너지를 생성하는 자와나 찟따를 수반한다
14. 말과 신체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식적 사고는 찟따 위티(citta vithi)의 7개의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은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에 있는 서브 섹션인 ‘빠띳짜 사뭅빠-다에서 용어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the Terms in Paṭicca Samuppāda)’에서 논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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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찌(vaci) 또는 까-야(kāya) 상카-라(saṅkhāra)는 잇따라 실행되는 많은 찟따 위티(citta vithi)로 인해 일어납니다. 논의했듯이 1초에 수십억의 찟따 위띠(citta vithi)가 실행될 수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속도로 빠른 생각(찟따)의 순간적 진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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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중요한 점은 후속 찟따 위티(citta vithi)의 자와나 찟따(javana citta)가 점점 더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상황에 대한 더 강한 감정(느낌)을 생성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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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도 많은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매우 흥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굴이 붉어지고 그 얼굴 표정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삼팟사 자- 웨-다나-’는 와찌 상카-라와 까-야 상카-라로 이어진다
15.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 – 단순한 느낌 이상의 것’ 포스트에서,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가 어떻게 초기 위빠-까 웨-다나-(initial vipāka vēdanā) 이후에 우리 마음에 일어날 수 있는지를 논의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가띠(gati)/오염으로 인해 ‘마음이 만든(mind-made) 것’이고, 새로운 깜마(new kamma)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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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들은 초기 위빠-까 웨-다나-(initial vipāka vēdanā)의 결과로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 및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를 생성할 때 일어납니다. 자세한 내용은 ‘감각 사건에서 위빠-까 웨-다나-와 삼팟사 자- 웨-다나-’ 포스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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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들은 모두 우리가 의식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버전의)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또는 아-나-빠-나(Ānāpāna)를 기르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것이 분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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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챙김을 하면, 감각 입력에 대해 의식적으로 좋은 생각이나 나쁜 생각을 가지기 시작할 때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천(수행)을 통해,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ā vēdanā)’를 너무 많이 생성하기 전에, 또는 (달리 말하면) ‘와찌 상카-라’ 또는 ‘까-야 상카-라’를 많이 만들기 전에 ‘자기 자신을 붙잡아 멈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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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아-람마나(ārammaṇa)가 선하고 도덕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선하고 도덕적인 와찌 상카-라(vaci saṅ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ṅkhāra)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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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선하고 도덕적인 ‘와찌 상카-라’와 ‘까-야 상카-라’는 사성제(네 가지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띨락카나(Tilakkhana)를 이해했다면, 닙바-나(Nibbāna)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