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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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담마: 비인지성과 자기 일관성


원문: Buddha Dhamma 섹션의 ‘Buddha Dhamma: Non-Perceivability and Self-Consistency’ 포스트

2018년 11월 9일 개정


1. 많은 사람들이 6가지 감각을 통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면에서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분석하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근년 들어 과학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세상에 대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아래를 보세요.


  • * 붓다께서는 자신이 가르치는 담마는 ‘세상에 결코 알려져 있지 않았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붓다의 핵심 가르침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나가르주나(Nagarjuna)와 ‘대승 불교(Mahayana Buddhism)의 다른 선조’들이 ‘순냐따-(suññatā)’나 ‘텅빔(emptiness, 공)’과 같은 다양한 개념의 관점에서 닙바-나(Nibbāna)를 설명하려고 시도한 이후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Saddharma Pundarika Sutra (Lotus Sutra) – A Focused Analysis’ 포스트와, ‘What is Sunyata or Sunnata (Emptiness)?’ 포스트를 보세요.

  • * ‘테라와다 불교(Theravada Buddhism)’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가르주나 및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붓다고사(Buddhaghosa)는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도 아니었고 베-딕 브라흐민(Vēdic brahmin)도 아닌 상태로 그의 베다적(Vēdic) 개념에 맞게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성형하고 뒤틀린 ‘불교(Buddhism)’로 바꾸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Buddhaghosa’s Visuddhimagga – A Focused Analysis’ 포스트를 보세요.

  • 붓다의 아-나빠-나 바와나(ānapāna bhavana)는 예를 들면 베다적(Vēdic) 쁘라냐-야-마(prañāyāma) 호흡 명상으로 바뀌어졌습니다. 


2. 붓다고사(Buddhaghosa), 나가르주나(Nagarjuna) 및 다른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왜곡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단지 베다적 개념에 익숙한 그들의 배경으로 인해 그에 따라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이해한 것으로  설명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 *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불교’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책을 쓸 때, 그들도 또한 자신들의 세간적(평범한) 프레임(틀)을 기준으로 한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 *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 대해 쓰여진 대부분의 책들을 보면, ‘붓다 담마’와 다른 종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 ‘도덕적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 *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아나-빠나 사띠(Anāpāna sati), 사띠빳타-나(Satipatthāna)와 같은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없으며, 논의된 내용은 대부분 잘못된 것입니다.


3. 필자는 이 ‘단 하나의 사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시작하거나, 진정한 ‘붓다 담마’가 무엇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데 조차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 붓다께서 “내가 가르치는 담마는 이전에 세상에 결코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정말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 붓다 담마는 오염된 마음을 지닌 정상적 인간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관습적 틀’ 안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붓다 담마는 31영역(우리는 인간 영역과 동물 영역만 볼 수 있음)으로 된 광대한 세계와, 재탄생 과정(윤회)을 포함하며, 깜마(Kamma)의 법칙에 기반합니다. ‘Essence of Buddhism – In the First Sutta’ 를 참조하세요.


4. 먼저 정상적 인간으로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또는 ‘이해할 수 있는’의 의미를 명확히 하겠습니다. 우리의 6가지 감각은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만 감지(탐지)할 수 있습니다.


  • * 기본적으로 오늘날 과학은 우리 우주 질량의 4%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Richard Panek의 ‘The 4 Percent Universe: Dark Matter, Dark Energy, and the Race to Discover the Rest of Reality’(2011년)을 참조하세요.

  • * 과학(또는 철학)에 의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마음(MIND)에 대해 중요한(의미있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5. 따라서 과학에서 알려진 사실만을 사용하여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져보고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고 하는 눈먼 사람(장님)과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How do we Decide which View is Wrong View (Ditthi)?’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는 광대한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과학자를 포함하여 정상적 인간은 제한된 6가지 감각을 통해서 접근 가능한 데이터만 사용하여 ‘실재’를 파악하려고 하는 문제에 직면합니다. 따라서, 수학자 Kurt Gödel이 증명한 것처럼 과학 이론이 ‘완전’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Gödel’s Incompleteness Theorem’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6. 대부분의 사람들은 붓다께서 가르치신 것을 입증(뒷받침)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러한 가르침이 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코끼리 다리를 만져본 장님에게 물어 보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는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우물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 *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에는 터무니없는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몇 백년 전을 되돌아 보세요. 불과 400년 전, ‘과학’은 우주의 지구 중심 모델, 즉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별들이 멀리 천구 위에 박혀 있다고 믿었습니다.

  • https://en.wikipedia.org/wiki/Geocentric_model 내용을 참조하세요.

  • * 과학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주요 종교도 그 당시의 이 모델에 그들의 종교를 맞추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여전히 이 (지구 중심 모델) 개념을 고수합니다. 위 사이트 주소의 동일한 Wikipedia 내용을 보세요.


7. 그러나 약 2500년 전에, 붓다께서는 우리 태양계를 ‘짝까와-알라(Cakkavāla)’, 즉 ‘행성계(행성 시스템)’로 분명하게 묘사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붓다께서는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그러한 시스템이 있으며 그것에 대한 모든 세부 사항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세월이 지나면서, 특히 20세기 초부터 과학은 수십억 개의 은하를 포함하고 각 은하는 우리 태양계와 같은 수십억 개의 행성 시스템을 가지는, 붓다께서 말씀하신 더 넓은 세계의 일부 측면을 재발견하여 왔습니다.

  • * 그러나 19세기에 살고 있는 누군가는 무수한 행성 시스템(Cakkavāla, 짝까와-알라)에 대한 생각을 비웃고, “과학에서 그런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로 말했을 것입니다. 붓다 담마의 그런 측면은 당시 과학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 그와 같이, 붓다 담마의 많은 측면을 현재 과학에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붓다 담마는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이 올바른 것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8. 아비담마(Abhidhamma)에서는 우주의 모든 종류의 에너지가 어떻게 궤도 운동 (빠알리어 또는 싱할라어에서 브라마나_bramana)으로 저장(축적)되어 있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구와 관련된 31 존재계’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예를 들어, 행성 시스템은 항성(별)을 공전하는 행성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입니다. 이 행성 시스템이 모여 은하를 이루고, 이 은하는 원반 모양의 원운동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 https://en.wikipedia.org/wiki/Retrograde_and_prograde_motion#Formation_of_celestial_systems 내용을 참조하세요.

  • * 과학자들은 원자는 기본적으로 전자가 양성자와 중성자로 만들어진 작은 핵을 공전하는 구조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9. 과학이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완전히 확인하기까지 기다리려고 한다면, 500년 전에 지구 중심 모델(천동설)을 받아들이고 ‘붓다 담마’를 이국적이고 신비한 것으로 일축(무시)하고 사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 * 망원경의 발명으로 훨씬 더 큰 우주(거시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듯이, 현미경(및 그 정교한 버전)의 발견은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무수히 많은 미소 생물로 가득한 ‘미시 세계’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몸에는 그와 같은 수십억의 존재(생물)가 있습니다. ‘There are as many creatures on your body as there are people on Earth!’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0. 과학은 과학적 도구로 관찰되고 측정될 수 있는 현상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도구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6가지 감각을 위한 ‘확장 도구’입니다. ‘Expanding “Consciousness” by Using Technology’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예를 들어, 육안으로는 목성의 달을 볼 수 없지만 망원경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우리 몸에 있는 미소 생물을 볼 수 없지만 정교한 현미경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많은 것의 두 가지 예일 뿐입니다.

  • * 붓다께서 이 세상에는 무수한 존재(유정체)가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웃었습니다. 마하야니스트(Mahayanist, 대승불교도)들은 여전히 ‘모든 중생’(아마도 자신의 몸에 있는 수십억의 미소 생물체를 모두 포함)이 붓다의 깨달음을 얻을 준비가 될 때까지 자신은 붓다의 깨달음 그 자체(단순히 닙바-나 또는 아라한과가 아님)를 얻는 것을 기다릴 수 있다는 인상(느낌)을 지니고 있습니다!


11.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과학은 무수히 많은 행성 시스템이 있음을 확인했지만, 아직 단 하나의 다른 행성 시스템에서도 생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생물을 찾을 수 있게 되면, 마하야니스트(Mahayanist, 대승불교도)들이 붓다의 깨달음을 얻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게 될 것입니다.


  • * 마찬가지로, 모든 각 존재(단지 인간만일지라도)를 돌보는 ‘창조주’의 일은, 또한 인간이 사는 무수히 많은 세계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또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부담이 될 것입니다.

  • * 필자는 다른 이들을 놀이감으로 하여 놀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들을 위해 그런 터무니없는 믿음과 그릇된 견해들을 제거해야 할 때라는 그 점을 단지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밋차 딧티(miccha ditthi, 사견, 그릇된 견해)입니다.

  • * 그러한 그릇된 견해를 제거해야, 결실 있는(유익한)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견해를 통한 정화는 정식 명상을 통한 정화보다 먼저 이루어집니다. 삼마- 딧티(Sammā Ditthi), 즉 이 세상에 대한 올바른 견해는 팔정도에서 맨 처음에 옵니다. 


12. 현재 과학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들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에소테릭(현묘적)’ 또는 ‘미스티컬(신비적)’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어떤 본질도 없이 나와 있는 그러한 ‘짜맞춘 이론’이 많이 있는 반면에,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 기술된 것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과 일치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 * 만약 우리가 20세기 이전에 죽은 사람을 [현재로] 데려와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것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실제 사건이 진행되는 것을 보여 주면, 그는 깜짝 놀랄 것이지만, 그것이 일종의 마술 속임수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 *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사건의 시각 대상과 소리가 거의 순간적으로 [전송 신호로] 변환되어 장거리에 걸쳐 전송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텔레비전 세트를 올바른 주파수로 조정함으로써 그 전송 신호를 수신하여 [시각 대상과 소리로]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저장된 에너지)의 작용, 즉 재탄생은 동일한 방식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납니다. 비록 우리가 보거나 인식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조건이 맞을 때 그 에너지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Annantara and Samanantara Paccay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러한 개념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더 많이 읽을수록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3. 주어진 과학적 이론을 검증하는 데 과학에서 사용되는 2가지 주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불가침으로 보이는 몇 가지 기본 공리(기본적인 자명한 이치)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받아 들여진 다른 모든 과학 이론은 그 이론(기본 공리)과 일치해야 합니다.


  • * 현재 받아들여진 과학 이론이 새롭게 발견된 현상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면, 해당 과학 이론은 버려지고 새로운 이론이 채택됩니다.

  • * 최신 과학적 발견은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서 주어진 순수한 붓다 담마(Buddha Dhamma)와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 그러나,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는 과학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새로운 발견이 나오면서 더 많은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 * 그리고,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자기 일관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이트의] 모든 포스트를 확실하게 하려는 필자의 집념은 상호 일관성입니다.


14. 따라서,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 사성제(Four Noble Truths), 팔정도(Noble Eightfold Path),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 등과 같은 기본 개념 내에서 ‘과학’과 ‘자기 일관성’에 의한 ‘새로운 발견’과의 호환성(양립성)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유효성(타당성)을 테스트하는 2가지 방법입니다.


  • * 여기서 ‘과학에 의한 새로운 발견’이 반드시 ‘과학에 의해 주어진 설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적 설명이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지구 중심 모델, 즉 천동설은 변경되어야 했습니다)..

  • * 과학이 외계(우주 공간)에서 생명체에 대한 증거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와 일치할 것이지만, 그러한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로 과학이 제안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15. 이러한 점의 의미를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리고 다른 포스트에서 언급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수천 명의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이제 막 재발견되기 시작한 물질 현상을 묘사하는 정교한 방법을, 2500여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어떻게 찾아내어 내놓을 수 있을까요?


  • * 붓다께서는 마음을 정화함으로써 모든 ‘정상적 인간 능력’을 초월할 수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Gödel의 불완전성 이론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위 5번을 참조하세요.

  • * 따라서 붓다께서 설하신 담마(Dhamma)는 우리 모두가 정상적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기준 프레임(틀)에서는 받아들여지지(처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재탄생과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와 같은 개념은 신비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개념에서 진리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그것들을 ‘표준적인 과학적 방법’[즉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유효성(타당성)을 테스트하는 2가지 방법]에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16. 붓다께서 마음을 정화함으로써 그것들과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과학은 아직 ‘인간 마음의 힘’( ‘Power of the Human Mind’ 서브섹션의 포스트 참조)을 알아내지(파악하지) 못했습니다.


  • * 현대 과학은 마음에 관한 붓다 담마(Buddha Dhamma)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Abhidhamma 섹션의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비록 인간이 일반적으로 많은 겁에서 마음을 단 한 번만 붓다의 레벨로 정화할 수 있다하더라도, 우리 각자는 과학이 알지 못하는 자연에 대해 많은 사실을 충분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

  • * 그것(마음 정화)이 어느 정도 일어날 때, 이러한 모든 물질적 진보(그리고 그러한 진보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어떤 유형의 감각적 탐닉)는 자신의 마음을 정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고통의] 경감(또는 제거)와 웰빙 감각에 비하면 보잘것 없다는 것이 명백해집니다.


17. 예를 들어, 사람은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음식도 그 음식을 먹는 동안만 즐길 수 있지만, 자-나 경험 조차도, 즉 아리야 자-나 또는 아나리야 자-나 조차도 장기적일 수 있습니다. 자-나(jhāna)에 몇 시간이고 머물면서 그러한 [고통의] 경감(또는 제거) 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 * 소-따빤나(수다원) 단계에서 오는 쿨링 다운(cooling down), 닙바-나(Nibbāna), 니위-마(niveema) 또는 나와나(nivana)의 ‘기본 레벨(base level)’은 영원하며, 그 어떤 잠깐 동안의 감각적 즐거움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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