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위나야 - 자연은 평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원문: Buddha Dhamma 섹션의 ‘Vinaya – The Nature Likes to be in Equilibrium’ 포스트
- 2016년 이전 포스트; 2022년 7월 18일 개정; 2023년 4월 30일 개정
우리의 삶과 존재는 끊임없이 빚을 지고 빚을 갚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후자(빚을 갚는 것)는 우리가 좋아하든 아니든 자연(자연 원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훔치거나 죽이거나 거짓말하거나 어떤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를 할 때, 우리는 빚을 지고 자연 원리는 업 에너지(kammic energy)를 통해 그것을 계속 추적합니다.
-
* 우리는 빚을 갚기 위해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재탄생의 사이클(윤회)을 보는 또 다른 방식(관점)입니다. 자연(자연 원리)은 자동적으로 가장 큰 빚이 먼저 갚아지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이 ‘다음 존재(bhava, 바와)’가 결정되는 방식입니다.
-
* 주어진 수명 동안, 적절한 조건이 있으면 빚이 갚아집니다. ‘아난따라와 사마난따라 빳짜야-’를 참조하세요..
-
* 자연(자연 원리)은 최종 중재자입니다. 범죄자는 훌륭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죄(죄값)를 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자연원리)의 법정에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일을 할 때 우리가 대가로 무엇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위 (kamma)와 그 결과(kamma vipaka) 사이의 지연으로 인해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역자주 : 여기서 지연은 축적된 깜마 위빠-까가 다시 드러날때까지의 지연을 말합니다. 업에 의한 결과, 즉 깜마 위빠-까는 즉시 발생하여 업 씨앗으로 축적됩니다].
1. 우리가 도덕적이거나 부도덕적인 행위를 할 때, 그것은 의도로 행해지며 관련된 에너지를 가집니다. 그것은 자와나 찟따(javana citta)에서 생성된 업 에너지(kammic energy)입니다. 그 에너지는 소비되거나 달리 어떤 수단으로 줄어들 때까지 우주에 존재합니다. 이것은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과 관련이 있습니다. ‘양자 얽힘 ㅡ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것은 물리학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입니다.
-
* 우리는 어떤 유정체나 ‘세계 전체’에 빚을 지게 될 수 있습니다.
-
* 붓다께서 깨달음에 이르신 후, 약 20년 동안은 붓다 사사나(Buddha sasana, 붓다 가르침)에는 위나야 규율(vinaya rule, 계율)이 없었습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가 번성하기 시작했을 때, 부도덕한 사람들은 헌신자(재가신자)들의 친절에 의존하여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승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붓다께서는 그들에게 빚을 지게 되는 결과에 대해 훈계하고, 그 사람들에게 고삐를 죄기 위해 계율을 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위나야(vinaya)는 ‘위(vi)’ + ‘나야(naya)’로 합성된 말이며, 여기서 ‘나야(naya)’는 빠알리어 또는 싱할라어로 ‘빚(부채)’를 의미합니다.
2. 에너지 불균형이 있으면 자연(자연 원리)은 에너지 균형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주어진 개인(관습적 의미에서), 즉 궁극적 의미의 삶 흐름(life stream)에 대해 가장 큰 불균형이 먼저 정리됩니다.
-
* 따라서 죽는 시점에서 빠띠산디(patisandhi, 재생연결)가 일어날 때, 가장 큰 불균형을 가진 가장 큰 깜마 씨앗(kamma seed)이 작용하고, 상응하는 바와(bhava)로 다음 탄생을 시작함으로써 그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따라서 ‘다음 바와(bhava)’는 ‘현존 바와(bhava)’의 끝에서 가장 큰 깜마 씨앗(kammic seed)에 의해 결정됩니다(이것이 복잡한 프로세스의 간단한 해석입니다).
-
* 삶 중에는(빠윳띠 위빠-까, pavutti vipāka), 에너지 내용 외에도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의 전달 또는 깜마 씨앗(kamma seed)의 방출을 위한 지배적인 조건이 또한 작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ara), 즉 마음챙김(sati)을 함으로써, 많은 나쁜 깜마 위빠-까가 결실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깜마란 무엇인가? - 깜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두 경우 모두, 즉 빠띠산디(patisandhi, 재생연결)와 빠윳띠 위빠-까(pavutti vipāka, 삶중의 과보) 모두에서 ‘부합하는(어울리는) 조건’이 큰 역할을 합니다. ‘아난따라와 사마난따라 빳짜야-’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예를 들어 씨앗이 건조한 곳에 있으면 발아하지 않습니다. 발아하기 위해서는 수분과 햇빛이 있는 땅에 있어야 합니다.
3. 평형 문제로 돌아가서 보면, 돌은 지면에 그대로 있을 때 평형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을 집어 위로 던지면 얼마간의 에너지를 가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이제는 평형 상태가 아니며, 그 돌은 지면에서 평형 위치를 찾기 위해 아래로 떨어질 것입니다. 업 에너지(kammic energy)와의 유일한 차이점은 업 에너지가 훨씬 나중에 방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업 에너지가 방출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카-라, 깜마, 깜마 삐-자, 깜마 위빠까’ 포스트 및 ‘빠띳짜 사뭅빠-다 ㅡ 개요’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따라서 업 에너지의 방출은 씨앗의 발아 과정에 더 흡사합니다. 적절한 조건이 나타날 때까지 시간 지연이 있습니다.
-
* 씨앗이 땅에 있으면, 싹이 트고 씨앗에 있는 청사진에 따라 나무가 됩니다. 나무가 자라기 위한 에너지는 흙(뿌리를 통해)과 태양(잎을 통해)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상카따(saṅkhata)와 같이, 나무는 유한한 수명을 가집니다.
-
*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 씨앗을 더 만들지 않는 한, 그 나무는 그 원래 씨앗의 유일한 ‘결과’입니다.
4. 과거의 수많은 삶을 통해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좋거나 나쁜 업의 에너지 패킷, 즉 깜마 비자(kamma bija, 깜마 씨앗)를 축적해 왔으며, 이 생에도 그것을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습니다(사실, 91대겁 이상이 된 것은 재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자나까 깜마(janaka kamma)가 아니라면 그 에너지를 잃습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업 에너지도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작은 업 씨앗은 모든 삶 중에 결과(위빠-까, vipāka)를 가져오고, 정말로 큰 것(깜마 빠타, kamma patha)은 쭈띠-빠띠산디(cuti-patisandhi, 죽음-재생연결) 순간에 새로운 삶을 위한 바와(bhava)를 결정합니다.
-
* 그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즉 열반을 얻기 위해 모든 깜마 씨앗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아닙니다. 새로운 바와(bhava)는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 사이클에서 ‘우빠-다-나 빳짜야- 바오(upādāna paccayā bhavo)’ 단계에서 붙잡힙니다. ‘아꾸살라ㅡ물-라 우빠빳띠 빠띳짜 사뭅빠-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윗자-(avijjā, 무명)를 제거하고 세상의 참된 본질을 이해했다면, 땅하(tanha)가 없고, 그래서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nha paccayā upādāna)’ 단계의 우빠-다-나(upādāna)가 없고, 그래서 바와(bhava)가 없고, 자띠(jati, 재탄생)가 없습니다.
-
* 그러나 무명(avijja)를 제거하려면 마음을 정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참된 본질,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덮고 있고 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5가지 장애(빤짜 니와라나, panca nivarana)를 제거해야 합니다. 나쁜 깜마 씨앗을 제거하고 좋은 깜마 씨앗을 축적하는, 즉 좋은 행위를 하고 나쁜 행위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는 것은 그곳에서입니다. 물론 행위는 행동, 말, 생각을 포함합니다.
5. 요점은 도덕적이거나 부도덕적인 행위를 할 때마다 그 행위로 이어진 생각의 ‘자와나(javana) 힘’을 담은 깜마 씨앗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찟따의 자와나 ㅡ 정신력의 근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도덕적 행위와 관련된 업력(kammic power)은 인생에서 무엇을 즐기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계좌’에 있는 흑자(잉여)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부도덕한 행위는 빚(적자)으로 이어집니다. 즉, 그것은 원장에서 마이너스 쪽에 나타납니다. 만약 누군가 다른 존재(유정체)에게 부도덕한 행위를 한다면, 그 자는 그것을 갚을 때까지 그 존재에 대해 빚을 지게 됩니다. ‘깜마, 빚(부채), 및 명상’을 참조하세요.
6. 자연(자연 원리)은 균형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자연(자연 원리)이 이 균형 작용을 구현할 때, 좋은 깜마(kamma)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나쁜 깜마(kamma)는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좋은 깜마 씨앗(kamma seed)이 발아하도록 조건을 설정하고 나쁜 깜마 씨앗(kamma seed)이 발아하지 않도록 처리(마련)함으로써 양쪽 모두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깜마란 무엇인가? - 깜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좋은 습관을 개발하고 나쁜 습관을 없애는 것은 이 과정과 함께 진행됩니다. ‘습관, 목표, 성격(가띠 또는 가티)’ 포스트와 ‘윤회 습관, 성격(가티), 및 갈망(아사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 링크된 포스트를 주의깊게 검토해 보세요. 이 모든 것들은 함께 묶여 있습니다.
7. 따라서 우리는 도덕적이거나 부도덕적인 행위를 통해 ‘불균형’을 만들기 때문에 이 상사라(sansara, 재탄생의 순환 즉 윤회)에 묶여 있습니다. 선행은 좋은 재탄생으로 이어지고, 불선행은 나쁜 재탄생으로 이어집니다. 그것들은 둘 다 윤회 여정을 연장합니다. 그러나 괴로움(고통)이 엄청나게 크며 또한 도덕적 행위를 할 기회가 없는 4가지 가장 낮은 영역(아빠야_apaya, 악처 또는 사악처)에 태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닙바-나(Nibbāna)를 얻을 때까지 반드시 도덕적 행위를 해야 합니다.
-
* 도덕적 행위는 대가로 무엇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그 [유익한] 결과를 가집니다(원장의 플러스 쪽에 더해짐). 즉, 자연(자연 원리)이 보답해 줍니다. 그러나 도덕적 행위를 하고 닙바나 이외의 다른 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탐욕으로 행해지는 것이며, 따라서 동시에 부도덕한 행위도 하는 것입니다.
-
* 오직 아라한만이, 재탄생을 가져오기에 충분한 업적 결과를 가지는 도덕적이거나 부도덕적인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아라한이 행하는 모든 행은 낮은 레벨의 상카-라(sankhāra), 즉 끼리야(kriya) 행이며(산책과 대화와 같은 행), 자연과 평형 상태입니다.
8. 평형을 벗어나면, 탐욕과 화냄이 심해지고 부도덕한 행위를 하여 빚을 지게 되기가 쉽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마디에 있을 때는 마음이 평형에 가까워져서 탐욕과 증오가 통제되고 있습니다. 루빠와짜라 자-나(rupavacara jhāna, 색계 선정)에 도달하고 그 다음 아루빠와짜라 자-나(arupavacara jhāna, 무색계 선정)에 도달하면 마음은 평형 상태에 훨씬 더 가까워집니다. 사마디(Samadhi)는 아라한(Arahant)이 될 때 완전하게 됩니다.
-
* 명상의 결과를 얻고 싶다면 부도덕한 행위를 피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화된 마음은 사마디에 빨리 도달할 수 있습니다. ‘2. 명상의 기본’를 참조하세요.
-
* 탐욕, 증오, 또는 무지를 통해 빚을 지게 됩니다(여기서 ‘무지’란 세상의 참된 본질, 즉 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모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로바 위나야(lobha vinaya), 도사 위나야(dosa vinaya) 및 모하 위나야(moha vinaya)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