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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닙바나를 달성하는 네 단계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The Four Stages in Attaining Nibbāna’ 포스트

- 2016년 2월 4일, 2017년 10월 25일 개정


1. ‘31 Realms Associated with the Earth’ 포스트에서 검토된 31영역 세상은 유정체의 감각 기관과 유정체가 괴로움을 겪는 정도에 따라 크게 세 범주로 나뉩니다.


*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11개 영역은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속하며, 이 영역의 유정체에게는 다섯 가지 육체적 감각 기관이 모두 나타납니다. 까-마(kāma)는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감각적 대상에 탐닉한다는 의미입니다.

* 그 다음 16개 영역에 있는 유정체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가지 육체적 감각기관만 가집니다. 그들은 욕계의 유정체보다 조밀도가 낮은 몸을 가지며, 이 범주의 영역을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라고 합니다. 루-빠 로-까(rūpa lōka)에는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처음 4가지 유형의 세간 선정(자-나, jhāna)에 해당하는 선정 즐거움을 주로 누릴 수 있습니다. 루-빠 로-까(rūpa lōka)에는 상대적으로 괴로움이 적습니다.

* 가장 높은 4개의 영역은 인간이 또한 달성할 수 있는 보다 높은 아루-빠 자-나(arūpa jhāna) 상태(선정 수준 5~8)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 영역에는 더 없는 선정 행복이 주로 하며 상대적으로 괴로움이 적습니다. 이 범주의 영역은 일반적으로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역의 유정체는 육체적 감각기관이 없고 오직 마음만 있는 매우 미세한 몸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2.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에 있는 유정체의 수명은 매우 길며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에 있는 유정체의 수명은 훨씬 더 깁니다.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에서 가장 높은 영역의 수명은 너무나 긴 84000 마하-깔빠(대겁)이며, 이 수명은 우리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긴 수명입니다.


* 이 때문에 고대 요-기(yōgi, 수도자)들은 그러한 영역이 닙바나(Nibbāna, 열반)에 해당한다고 잘못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금욕 수행자가 되기 위해 궁전을 떠난 지 몇 달 만에 제8선정(jhāna, 자-나)까지 얻은 붓다(그 때 당시에는 보디삿트와인 싯다라따 고-따마)께서는 이 선정에 의한 영역도 또한 일시적으로 머무르게 되어있는 존재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 이 제8선정의 성취에 의한 영역도 영구적인 행복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이 (영역의) 긴 시간조차도 무한한 윤회의 시간 스케일(‘Samsāric Time Scale, Buddhist Cosmology, and the Big Bang Theory’ 포스트 참조)에서는 무의미합니다(‘Infinity – How Big Is It?’ 포스트 참조).


3. 인간 영역에서는 사마타(samatha) 명상을 통해 그러한 선정(jhānic)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 세상)와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 세상)의 선정(jhānic)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 더구나, 해당하는 선정을 개발하고 선정 상태에서 죽게 되면,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 세상)나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것이 대부분 힌두 수행의 목표입니다.


4. 붓다께서 지적하신 것은 가장 높은 선정 상태조차도 길기는 하지만 일시적이며, 그 업력이 소진되면 31영역 세상 중 어느 곳에나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적어도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가장 낮은 영역(사악처) 중 한 곳에 재탄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이 확실합니다.


* 붓다께서는 여전히 재탄생 과정(samsāra, 윤회)에 있는 많은 유정체, 즉 우리 모두는 과거에 가장 낮은 영역(niraya, 사악처)뿐만 아니라 높은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삼사-라(samsāra, 윤회)는 깁니다.


5. 검토한 바와 같이, 실제로 괴로움은 대부분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정체가 시작 없는 삼사-라(samsāra, 윤회) 여정 중에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 붓다께서는 이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집을 떠나 짧은 여행을 하거나 좀 긴 여행을 하기는 하지만, 항상 집으로 돌아옵니다. 붓다께서는 4개의 가장 낮은 영역(apāya, 아빠-야, 사악처)이 대부분 유정체의 본집(본거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욕계의 괴로움>


1.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의 괴로움은 가장 낮은 영역(니라야_niraya, 지옥계)의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부터 데-와 로-까(dēva lōka, 천신계)의 비교적 적은 괴로움과 가장 높은 감각적 즐거움까지 다양합니다. 데-와 로-까(dēva lōka, 천신계)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의 가장 높은 6개 영역입니다.


* 데-와 로-까(dēva lōka, 천신계) 바로 아래에는 괴로움과 감각적 즐거움이 서로 거의 동일한 비율인 인간 영역이 있습니다.

* 인간 영역 아래에는 쁘레따 로-까(preta lōka, 아귀계), 아수라(asura)계, 축생계(animal realm), 니라야(niraya)계가 있으며, 괴로움의 정도는 일반적으로 그 순서대로 증가합니다.


2. 까-마 로-카(kāma lōka, 욕계)의 가장 낮은 4개 레벨은 합쳐서 아빠-야(apāya, 악처)라고 불립니다. 유정체의 99 % 이상 대부분이 이 네 영역에 갇혀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네 영역 중 어느 영역에 한 번 태어나면 빠져 나오기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이러한 영역에 있는 유정체는 바로 그 성품이 아뿐나-비 상카-라(apunnābhi sankhāra) 또는 악행(‘상카-라, 깜마, 깜마 삐-자, 깜마 위빠까’ 포스트 참조)을 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동물 영역에서 대부분 동물은 살아가기 위해 다른 동물을 죽여야 합니다. 니라야(niraya, 지옥)에서는 끊임없는 고통 때문에 싫어하는 생각만 일어납니다.

* 하지만, 아비담마(Abhidhamma)를 검토해 볼 때, 동물들의 찟따(javana citta)의 강도가 훨씬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물들의 그러한 행의 업력은 사람에 의한 행의 업력에 비해 훨씬 적습니다. 이것은 언젠가 언급해 보고 싶은 중요한 점입니다.


3. 우리는 과거에 높은 루-빠 로-까(rūpa lōka)에 태어난 적이 있음직한 것과 같이, 우리 모두는 아빠-야(apāya, 악처)에 있었다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합니다. 요행히도 우리는 그 과거의 삶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 그러나 특정 영역(특히, 쁘레따_아귀 영역)의 유정체는 과거의 삶을 상기하고 더욱 괴로워합니다.


<왜 우리가 지금 바로 노력해야 하는가>


1.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대부분의 괴로움은 다섯 번째 영역인 인간 영역 아래 4개의 가장 낮은 영역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기본적으로 까-마 로-카(kāma lōka, 욕계)중 가장 높은 영역인 데-와 로-까(dēva lōka, 천신계)로 시작하는 인간 영역 위에서는 비교적 괴로움이 적습니다.


2. 낮은 네 영역에서 괴로움이 가장 높다 하더라도, 그곳의 유정체들은 괴로움을 경감시키기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제한된 마음은 괴로움을 가져오는 원인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 많은 사람들은 그것(괴로움)을 이해하고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추구하는 자극을 얻기 위해 고통을 느껴야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고통스러울 때(말하자면, 너무 오래 괴로움을 겪을 때) 심오한 담마 개념을 분명하게 숙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는 느낌(vēdana, 웨-다나)을 통해서가 아니라, 완벽한 세계관과 이 ‘더 넓은 세상(31영역)’의 세 가지 특성(아닛짜_anicca, 둑카_dukkha, 아낫따_anatta)을 지혜(paññā, 빤냐-)로 이해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 가지 특성에 대해서는 ‘Anicca, Dukkha, Anatta’ 서브 섹션을 보세요.


3. 인간 영역보다 위쪽 영역에 있는 유정체들, 즉 데-와(dēva, 천신) 영역에서 시작되는 26개 영역에서는 많은 고통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이 영역은 (사악처와는) 다른 극단입니다. 이 영역에서는 괴로움에 대해 염려하지 않으므로 (해탈하기 위한) 자극이 생기지 않습니다.


* (이 다른 극단의 영역에서) 진정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유일한 경우는 그들 수명의 끝에 달했을 때 그것(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경우뿐입니다.


4. 그러므로 많은 괴로움을 겪지 않으면서도 괴로움에 노출되어 있는 곳은 오직 인간 영역입니다. 또한, 사람(인간)의 마음은 ‘이 31영역 세상’의 진정한 본질, 즉 세가지 특성인 아닛짜(Anicca)와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를 파악하는 데 가장 적합합니다. (‘Anicca, Dukkha, Anatt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그래서 붓다께서는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얻을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닙바나를 달성하는 네 단계>


1. 닙바-나(Nibbāna)의 첫째 단계는 존재의 진정한 본질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봄으로써 달성됩니다. 본다는 것은 단지 (이런 내용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이 웹 사이트를 보는 것과 같이) 누군가로부터 먼저 31영역과 함께 존재의 본질, 유정체가 목적없이 떠돌며 끝없이 재탄생하는 것(삼사라_samsāra, 윤회), 재탄생하는 이유 등을 배워야 합니다.

* 이해해야 할 핵심들은 3가지 특성(삼법인), 4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 그리고 성스런 8가지 길(팔정도)입니다. 붓다 외에는 아무도 이것들을 발견할 능력이 없으므로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담마를 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첫째 단계(Sōtapanna, 소-따빤나, 수다원, 예류자)에서는 부분적으로 붓다 세계관의 타당성을 이해합니다. 이것은 삼마 딧티(Sammā Ditthi, 정견, 분명히 보고 이해함에 따라 오염원을 제거한 견해)를 상당 부분 성취하는 것입니다.


* 첫째 단계에서는 존재의 ‘진정한 본질’, 즉 존재의 세 가지 특성(‘anicca, dukkha, anatta’ 포스트 참조)의 중요성과 진정한 의미를 이해합니다.


3. 결국 31영역 세상 중 어떤 곳이라도 머무르는 것이 가치가 없고 (유익한) 결실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스스로 도덕적인 방식으로 행하게 됩니다. 마음은 자신을 ‘하위 4개 영역(사악처)’에 태어나게 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가치가 없고 (유익한) 결실이 없다’는 결정을 합니다.


* 이 깨달음은 소-따빤나 팔라 찟따(Sōtapanna phala citta, 수다원 단계를 실현하는 마음 순간)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성취되면, 다시는 낮은 4개의 영역(사악처)에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영원히 아빠-야(apāya, 악처)의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Akusala Citta – How a Sōtapanna Avoids apāyagami Citta’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4. 이 첫째 단계에서 첫번째 진리인 둑카(dukkha,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를 깨달으며, 성스런 팔정도의 길을 진정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이 첫째 단계에서는 여전히 탐함과 성냄이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둘째 단계(Sakadāgāmi, 사까다-가-미, 사다함, 일래자)에서 그런 탐하고 성내는 마음의 강도가 더욱 약화됩니다.


*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는 인간계에는 태어나지 않지만 데-와 로까(dēva lōka, 욕계 천상)에는 태어나므로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 데-와 로까(dēva lōka, 욕계 천상)와,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가 나중에 태어날 수 있는 브라흐마 영역(색계)에서는 육체는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사다함) 성자는 영원히 (육체적으로) 건강합니다.


5. 아나-가-미(Anāgāmi, 아나함, 불환자)라는 셋째 단계가 달성되면, 마음은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어떤 갈망도 없습니다. 아나-가-미(Anāgāmi) 성자는 까-마 로-까(kāma lōka)에 속하는 감각적 탐함과 성냄의 마음을 일으킬 수 없으며, 아나-가-미 성자들에게 예약된 높은 브라흐마 영역(색계)에 단 한 번만 더 태어나게 됩니다. 아나-가-미 성자는 감각적 탐함과 성냄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영원히 행복하고 평화롭습니다.


6. 이 세 단계를 거치면서 아윗자-(avijjā, 무명)가 점차적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나 그것(아윗자-)은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만 완전히 제거됩니다.


* 아라한뜨(Arahant) 단계에 도달하면 마음은 완전히 순수하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 아니닷사나 윈냐-나(anidassana viññāna) 또는 빤냐-(paññā)가 획득됩니다. 아라한 성자는 31영역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갈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라한 성자는 더 이상 태어나지 않으며, 니라-미사 숙카(nirāmisa sukha, 감각적 즐거움을 떠난 행복)의 절정인 완벽한 행복을 얻습니다.


Nibbāna’ 서브 섹션과, ‘The Way to Nibbāna – Removal of asavas’ 포스트를 추가로 보세요.


<도덕적 삶만으로는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게 할 수 없는 이유>


1. 우리가 필사적으로 이 세상의 것들에 매달리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이 세상 것들을 통해) 영원한 행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감각적 즐거움을 간절히 원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31영역 세상에서 다른 그 무엇도 우리를 붙잡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 자신이 스스로 8개 다리 모두로 먹이를 잡는 문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려고 매달립니다.


2. 상당히 많은 불자들조차 마음속에서 좀 더 이 세상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열반적 기쁨과 관련된 행복의 수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행복에 대해서는 ‘Three Kinds of Happiness – What is nirāmisa Sukha?’를 보세요.


* 오늘날에도 일부 스님들이 행하는 인기있는 축복(게송)은 ‘천신이나 사람으로 태어나고 그리고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얻기를’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스님) 조차도 영구적인 행복은 닙바-나(열반)에 있다는 것이나 다음 출생시에도 많은 괴로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3. 그러한 생각의 위험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전 생에서도 수많은 선행과 악행을 함께 하였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업과 악업의 씨앗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상카-라, 깜마, 깜마 삐-자, 깜마 위빠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죽을 때 그 씨앗 중 어떤 것이 열매를 맺게 될지 모릅니다. 열매 맺는 것이 선업 씨앗이라면 선처에 태어나지만, 악업 씨앗이라면 악처에 태어나게 됩니다.


4. 우리가 미래에 어디로 태어날 지는 현생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만 반드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전의 생에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업과 악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 이것이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현생에서) 완벽하게 도덕적인 삶을 살더라도 적어도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다음 생에) 반드시 선처로 태어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소-따빤나는 악처(사악처)에 태어날 수 있는 그 모든 깜마(업) 씨앗이 결실을 맺을 수 없게 하는 성향의 마음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붓다께서는 또한, (현생에서) 부도덕한 삶을 살더라도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a)를 행하지 않았다면 다음 생에 반드시 나쁜 삶을 살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따리야 깜마는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은 극히 나쁜 악업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도덕한 삶에 의한) 나쁜 행위는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한 유정체의) 삶의 흐름에는 나쁜 씨앗뿐만 아니라 많은 좋은 씨앗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is Kamma? Is Everything Determined by K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따라서, 이 생의 목표로 최소한 닙바-나(Nibbāna)의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는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닙바-나(Nibbāna)에 대한 다른 포스트로서, ‘Difference Between Giving up Valuables and Losing Interest in Worthless’ 포스트 등을 더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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