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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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띠(가티)에서 바와로 그리고 자-띠(자-티)로 - 우리가 통제해야 할 것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Gati to Bhava to Jāti – Ours to Control’ 포스트

- 2018년 11월 15일 개정


<소개>


각자의 성향(가띠, gati)은 자신의 미래 태어남을 결정합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나-마루-빠 빠릿쩨-다 냐-나(nāmarūpa pariccēda ñāna)’라고 합니다.


1. 이전의 두 포스트 ‘Namagotta, Bhava, Kamma Beeja, and Mano Loka (Mind Plane)’ 와 ‘Gathi and Bhava – Many Varieties’에서 기초 지식을 설명했습니다. 이제 그것을 모두 종합하여, 바와(bhava)는 실제로 각자의 뿌리 깊은 습관(가티, gati)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자기 자신이 혼자 만들고 유지하는 어떤 것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 이전 두 개의 포스트를 읽어 보지 않았다면, 읽어 보기를 적극 권합니다. 기본 개념을 바르게 파악한 다음, 다른(하지만, 일관되고 모순없는) 방식으로 되풀이하여 그 개념이 (마음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그 개념과 연기 단계(순서)를 사용하여,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바와(bhava)를 만들고 다음으로 내생뿐만 아니라 현생 중에 자-띠(jāti, 태어남)를 생기게 하는지 조사할 것입니다.

* 결국에는 자신을 도울 수 있거나 해칠 수 있는 자도 없고 ‘최고 존재’도 없습니다. 각자의 운명은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붓다께서는 ‘아따- 히 앗따노- 나-토-, 코- 히 나-토- 빠로-시야-(attā hi attanō nāthō, kō hi nāthō parōsiyā), 즉, ‘자신이 참으로 자신의 피난처이다. 어떻게 다른 이가 자신의 피난처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붓다조차도 그 길(담마)만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가띠는 무엇인가?>


2. ‘가띠(gati)’는 붓다 담마에서 핵심 용어입니다. 완벽한 영어 번역은 없지만 습관, 경향 및 편향은 비슷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가띠(gati)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윤회 가띠(samsāric gati, 이전 삶의 습관과 경향)가 잠복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예를 들면, 십대(틴 에이저)에는 술을 마시는 습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전생에서 유래된 상응하는 가띠(gati)가 있다면 몇 잔의 술로도 다른 사람보다 쉽게 중독될 수 있습니다.

* 또한, 필자는 어떤 사람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불교에 전혀 관심조차 없었지만 단지 이 사이트의 포스트들을 읽고 사마-디(samādhi ,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생에서 유래한 가띠(gati)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이전의 생(전생)에서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접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 대부분 우리는 부적절한 일(부도덕한 아비상카-라, immoral abhisankhāra)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고자 하는 가띠(gati, 경향)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부분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a)’ 연기 단계에서 내장된(깊이 새겨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의 아윗자-(avijjā)는 그런 가띠(gati)가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그것을 알고 있지만 제거해야 하는 이유 또는 제거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 ‘Sutta – Introduction’ 포스트에서 지적했듯이,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a)’는 압축된 웃데-사(uddēsa, 매우 짧은 서술) 버전입니다. 그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맥락(배경, 상황 등)에 따라 그것을 분석(닛데사_niddesa 및 빠띠닛데사_patiniddesa)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자 주: 닛데사_niddesa는 ‘짧은 서술’이고, 빠띠닛데사_patiniddesa는 ‘상세한 서술’입니다.]


3. 우리가 (반복적으로) 그런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생각, 말, 행동의 아비상카-라)를 행할 때, 그 행을 위한 윈냐-나(viññāna)를 구축합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 포르노를 보기를 좋아한다면, 포르노를 보는 행을 하면 할수록 포르노를 보기 위한 윈냐-나(viññāna)가 더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한 윈냐-나(viññāna)는 잠재의식 속에서 튀어 오를 준비가 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런 행을 하는) 가띠(gati, 경향, 성향)가 더 확립됩니다.


* 그러면, ‘윈냐-나 빳짜야- 나-마루-빠(viññāna paccayā nāmarūpa)’ 단계에 이르는데, 즉 이전에 본 것에서 클립(동영상의 짧은 부분, 컷)에 대해 생각하거나 환상을 만드는 것(공상)이 더 쉬워집니다. 여기서 나-마루-빠(nāmarūpa)는 과거 활동의 추억(정신적 사진) 또는 미래 계획을 위한 ‘청사진’입니다. 빠띠산디 윈냐-나(patisandhi viññāna, 재생연결식)를 위한 나-마루-빠(nāmarūpa)는 다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Akusala-Mula Paticca Samuppad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4. 이제 다음 단계인 ‘나-마루-빠 빳짜야- 살라-야따나(nāmarūpa paccayā salāyatana)’는 저항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살라-야따나(salāyatana)는 여섯 가지 감각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에 적합한 감각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그들(포르노를 보는 사람)에게는 눈 감각인 ‘짝까야따나(cakkayatana)’와 마음 감각인 ‘마나야따나(manayatana)’입니다.


* 아-야따나(āyatana)는 눈과 같은 감각 기관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아비상카-라(abhisankhāra)를 행하는 ‘이 목적을 위해 감각 기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예에서는 포르노를 보고 그것을 즐기는 목적입니다. 아라한(Arahant) 성자도 눈이 있고 볼 수 있지만, 감각 기관을 아-야따나(āyatana)로 사용하여 산(san, 윤회 축적물)을 획득하지는 않습니다.

* 그러면 다음에 ‘살라-야따나 빳짜야- 팟소(salāyatana paccayā phasso)’ 단계에 이릅니다. 물론 여기에서는 단순한 ‘팟사(phassa, 접촉)’가 아니라 삼팟사(samphassa), 즉 윤회 과정에서 각자의 가띠(gati)에 따라 산(san, 윤회 축적물)을 생성하는 접촉입니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Difference between Phassa and Samphassa’ 포스트를 보세요.

* 그것은 단순한 팟사(phassa)가 아니라 삼팟사(samphassa)이기 때문에, 그래서 감정적 느낌을 생성하는 단계인 ‘팟사 빳짜야- 웨-다나-(phassa paccayā vēdanā)’에 이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아라한(Arahant) 성자는 포르노 영화를 보면서 어떠한 즐거운 감정적 느낌도 생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라한 성자의 마음에는) 단지 팟사(phassa)만 수반할 뿐이며, 삼팟사(samphassa)가 수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5. 이제 마지막 몇 가지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 예에서 수카 웨-다나-(sukha vēdanā, 즐거운 감정적 느낌) 때문에, 그 사람은 그것에 달라붙게 될 것입니다. 이 단계가 ‘웨-다나- 빳짜야- 땅하-(vēdanā paccayā tanhā)’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Tanha – How We Attach Via Greed, Hate, and Ignorance’ 포스트를 보세요.


* 그리고 나서, ‘땅하- 빳짜야- 우빠-다-나(tanhā paccayā upādāna)’ 단계가 옵니다. 즉, 그 사람은 정말로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전적으로 움켜 잡고, 다시 그것을 하고 싶어 합니다. 우빠다나(upadana)는 그것을 ‘가까이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래서, 그 사람은 그것을 위해 바와(bhava)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하려고 계획하며, 그것은 어떤 시점에서 현실 또는 미래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 단계입니다.


<가띠, 바와 및 자-띠 간의 연결>


6.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들러붙게 되었거나 가띠(gati)를 형성한 것을 단지 계속 생각하고 행하는 것(또한 상카-라를 기르는 것)입니다. 이 일련의 단계를 거칠 때마다 바와(bhava)가 더 강해집니다.


* 그러면, 그 바와(bhava)에 태어남, 즉 자-띠(jāti)가 되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띠(jāti)가 ‘다시 태어남(재생)’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태어남(재생)’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 죽을 때 특정 영역(동물, 인간 등)에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술에 취하는 바와(bhava)'가있을 때 '술 취한 상태'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포르노를 보는 '바와(bhava)'를 만들면, 포르노를 볼 때마다 다음번에 '그 바와(bhava)에 태어남', 즉 다시 포르노를 보는 것이 더 쉽게 됩니다.

* 그리고 이것이 다른 어떤 비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쉽습니다. 절제를 하지 못하는 음주습관이 들면(즉, 알아차리지 못할(사띠하지 못할) 정도까지 술을 마시는 습관이 들면), 술을 마실 때마다 그 바와(bhava)를 강하게 만듭니다. 절제되지 않으면, 어느 날 알콜 중독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강한 바와(bhava)가 형성되면, 미래의 태어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태어남에서는, 유사한 가띠(gati)의 어머니(그리고 그보다 덜한 정도의 아버지)를 부모로 하여 태어납니다. 따라서, 이 생에서 알콜 중독자는 다음 생에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알콜 중독자인 어머니 태에 들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 특정 사물이나 심지어 특정 사람에 대한 ‘증오에 찬 바와(bhava)'도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는 데와닷따(Devadatta)가 이전의 생에서 붓다(정확하게 말하면, 보디삿뜨와_Bodhisattva, 즉 원래 의미의 ‘보살’)와 어떻게 부딪쳤는지에 대해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 육체는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대부분의 경우 극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가띠(gati, 성향, 경향, 습관), 아-사-와(āsāva, 번뇌_갈망) 및 바와(bhava, 존재, 존재 가능성)는 한 생으로부터 다른 생으로 옮겨집니다. 물론 그것들(가띠, 아-사-와, 바와)도 항상 변화하고 있지만,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큰 인간계의 인간으로 있을 때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7. 그러므로 ‘바와 빳짜야- 자-띠(bhava paccayā jāti)’ 단계는 현생의 삶 과정과 내생으로 재탄생 과정에 모두 적용됩니다. 그 차이는 현생의 삶 과정의 연기를 설명한 ‘Akusala-Mula Pavutti (or Pravurthi) Paticca Samuppada’ 포스트와, 내생으로 재탄생 과정의 연기를 설명한 ‘Akusala-Mula Paticca Samuppada’ 포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위 #6에서 설명했듯이, 미래의 탄생은 자신의 가띠(gati) 때문입니다. 미래의 탄생은 자신의 가띠(gati)에 의해 결정된다는 깨달음과, 자신의 가띠(gati)에 따른 바와(bhava)와 자-띠(jāti)를 이해하는 능력을 ‘나-마루-빠 빠릿쩨다(빠릿쩨-다) 냐-나(nāmarūpa paricceda(pariccēda) ñāna)’라고 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루-빠(rūpa)는 나마(nama)에 따르는 것(실제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몸은 자신의 생각에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사-와’란 무엇인가?>


8. 닙바-나(Nibbāna)에 최종연결을 하기 위해, 우리는 가띠(gati)가 자신의 아-사-와(āsāva, 번뇌_갈망)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띠(gati)와 꼭 마찬가지로, 아-사-와(āsāva)는 자기 ‘삶 흐름’에 뿌리깊이 스며들어 자리잡고 있으며, 대부분 과거의 수많은 삶을 거슬러 올라가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Gathi (Character), Anusaya (Temptations), and Asava (Craving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무수한 가띠(gati)가 있을 수 있지만, 아-사-와(āsāva)는 4가지 기본 범주로 나누어집니다. 딧타-사-와(ditthāsāva, 사견 번뇌), 까-마-사-와(kāmāsāva, 감각적 욕망 번뇌), 바와-사-와(bhavāsāva, 존재 번뇌) 및 아윗자-사-와(avijjāsāva, 무명 번뇌)가 그것입니다. 아래를 보세요.

* 이 논리적 관계는 ‘삼마 딧티 숫따(Samma Ditthi sutta, MN 9)’에 확실히 나타나 있습니다. 이 숫따(sutta)는 붓다께서 사리뿟다 존자에게 ‘삼마 딧티(Samma Ditthi)’에 대해 다른 빅쿠(Bhikkhu)들에게 한 번에 설명해 주기를 요청하여, 사리뿟따 존자께서 빅쿠(Bhikkhu)들에게 설하신 숫따(sutta, 경)입니다. 존자께서는 연기단계를 역으로 거쳐 올라가서, 마지막에 ‘아윗자-(avijjā, 무명)’는 그 원인이 있습니까?’라고 빅쿠들에게 질문하셨고, 아-사-와(āsāva, 번뇌)가 ‘아윗자-(avijjā, 무명)’의 원인이 되고 서로 원인이 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 실제로, 아비담마(abhidhamma) 섹션에서 볼 수 있듯이, 숫다-쉬따까(suddhāshtaka)의 8개 ‘기본 물질 단위’ 중 4개는 ‘아윗자-(avijjā)’에 기인하여 일어나고, 다른 4개는 땅하-(tanhā), 즉 아-사-와(āsāva)에 기인하여 일어납니다. 이런 이유로 아윗자-(avijjā)와 땅하-(tanhā)는 ‘바와 물-라(bhava-mūla, 존재의 뿌리_근본 원인)’라고 불립니다.


9. 닙바-나(nibbāna), 즉 ‘완전히 (번뇌의) 불이 꺼짐’을 설명하는 한 가지는 그것이 ‘모든 아-사-와(āsāva)를 제거함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귀한 팔정도의 길을 따라 실천할 때, 아-사왁카야(āsavakkhaya, 번뇌의 제거)가 단계적으로 성취됩니다.


*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서, 아-사-와(āsāva)의 첫 번째인 딧타-사-와(ditthāsāva, 다양한 사견_잘못된 세계관에 대한 갈망)가 제거됩니다. 딧타-사-와(ditthāsāva)라는 이 가장 중요한 번뇌는 31영역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단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 생애 동안 어떤 사견을 확장하여 지니며, (그 사견의) 대부분은 실로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입니다.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사견은 ‘재탄생 과정(윤회)이 없다’는 믿음입니다.

* 부도덕한 행위의 결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는 것보다 훨씬 가혹할 수 있다는 것(아빠-야_apāya에 태어나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그 자체가 아빠-야(apāya, 악처)에 태어나는 원인을 제거합니다.


<닙바나의 4 단계에 연결>


10.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에게는 여전히 나머지 3개의 아-사-와(āsāva, 번뇌)가 있습니다. 그 3개는 까-마사-와(kāmāsāva,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번뇌)와, 바와-사-와(bhavāsāva, 31 존재영역 중의 어떤 곳에 살고자하는 갈망의 번뇌)와, 아윗자-사-와(avijjāsāva, 아닛짜_anicca와 둑카_dukkha와 아낫따_anatta를 완전히 모르는 것에 기인한 갈망의 번뇌)입니다.


* 까-마사-와(kāmāsāva)는 사까다가미(Sakadagami, 일래자) 단계에서 줄어져, 아-나가-미(Anāgāmi, 불환자) 단계에서 제거됩니다.

* 바와-사-와(bhavāsāva)와 아윗자-사-와(avijjāsāva)는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 바와)에서만 제거됩니다.

* 물론, 4개의 아-사-와(āsāva) 모두 닙바-나(Nibbāna)의 각 단계에서 줄어져 유지됩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는 나머지 3개의 아-사-와(āsāva, 번뇌)를 어떤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한 이해는 각 단계에서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아라한뜨(Arahant, 아라한) 단계에서만 완성된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11. 모순되지 않는 자기 일관성과, 주어진 상황을 다양한 면으로 분석 검토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여 [자신의 상태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 박사 학위를 소지하거나 띠삐따까(Tipitaka, 삼장) 전체를 암송할 수 있을 지라도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어떤 수준으로 이해하지 않고는 소-따빤냐 막가(Sōtapanna magga, 수다원도)에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 딧타-사-와(ditthāsāva)는 세간적인(평범한) 팔정도의 길을 잘 따라갈 수 있을 때까지는 제거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강한 오염원들이 마음에서 청소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계속 말하듯이, 이것은 책을 통한 지식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 물론, 딧타-사-와(ditthāsāva)는 다양한 가띠(gati)를 일으키므로, 그러한 가띠(gati)의 제거는 딧타-사-와(ditthāsāva)를 공격하기 위한 열쇠입니다. [딧타-사-와(ditthāsāva)의] 선두에 있는 것이 ‘어떤 믿음에 집착하는’ 경향이며, 반대 주장을 고려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재탄생(윤회)이 없다는 딧티(ditthi, 사견)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와 그것에 반대하는 증거를 주의 깊게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 [딧타-사-와(ditthāsāva)의] 다른 하나는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될 수 없는’ 것은 어떤 것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과 400년 전,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붓다가 언급한 그 무한히 많은 우주와 무수히 많은 존재들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지금도 과학은 물리적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알고 있을 뿐이며, 마음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Dhamma and Science’를 참조하세요.


12. 결론은, 각자가 다음 생에서 사람이 될 것인지, 천신이 될 것인지, 동물이 될 것인지는 우리가 바라는 것(또는 기도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발하는 가띠(gati)의 종류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소-따빤나(Sōtapanna)의 가띠(gati)’ 즉, ‘아리야 가띠(Ariya gati)’를 계발함으로써 바로 이번 생에서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담마(올바른 세계관)를 배우고 이해함으로써 삼마 딧티(Samma Ditthi, 정견)를 기르고 계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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