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네 가지 성스런 진리 - 고통과 그 제거
원문: Living Dhamma 섹션의 ‘Four Noble Truths – Suffering and Its Elimination’ 포스트
네 가지 성스런 진리가 논의됩니다. 붓다께서는 "나의 가르침은 이전에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미래 고통(괴로움)을 멈춤에 대한 것입니다.
2019년 1월 6일; 2021년 5월 27일 개정; 2023년 3월 27일 개정
소개
1. 첫 번째 성스런 진리는 일어남을 멈출 수 있는 고통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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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성스런 진리는 고통이 어떻게 우리의 갈망으로부터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갈망은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기꺼이 일으키는 상카-라(sankhāra)를 통해 나타납니다. ‘상카-라와 그 진정한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더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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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성스런 진리는 우리가 그 갈망을 제거함으로써 미래 고통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붓다께서 31영역 내의 재탄생 과정으로 설명하신 ‘광대 세계관(the broader worldview)’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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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성스런 진리는 담마-(Dhammā)를 배우고 그에 따라 살아감으로써(성스런 팔정도를 따라감으로써) 그 이해를 얻는 길입니다.
2. 붓다께서는 “여래가 가르치는 담마는 이전에 이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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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주위에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에 무슨 새로운 것이 있을까요? 늙음과 병듦과 가난함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음을 모두가 잘 압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불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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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우리는 첫 번째 성스런 진리에서 설명된 고통에 대해 ‘새로운 것’을 찾아 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성스런 진리 ㅡ 고통인 것
3. ‘첫 숫따에 있는 불교의 에센스’ 포스트에서 ‘첫 번째 성스런 진리’를 다루었습니다. 요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어남은 고통이고, 늙음은 고통이며, 병듦은 고통이고, 죽음은 고통이다.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가까이 해야 함은 고통이고,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떨어져야 함은 고통이다. 좋아하는(잇차, iccha)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고통이다. 요컨대, 고통의 기원은 루-빠(rū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a), 윈냐-나(viññāna)의 다섯 무더기에 대한 갈망(빤쭈빠-다-낙칸다, pancupādānakkhandha)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은 빤쭈빠-다-낙칸다, pancupādānakkhandha)(빤짝칸다에 대한 갈망 또는 우빠-다-나)로 표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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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필자는 우빠-다-나를 갈망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우빠-다-나라는 낱말은 단 하나의 낱말로 번역될 수 없습니다.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빠띳짜 사뭅빠다(연기) 섹션의 ‘우빠-다-나와 우빠-다-낙칸다의 개념(Concepts of Upādāna and Upādānakkhandha)’ 서브섹션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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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iccha)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고통이다’라는 이 부분에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닛짜(anicca) 특상과 관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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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학으로 잘 아는 바와 같이, 어떤 것은 어떤 원인으로 인해 생깁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현재 삶은 과거에 행한 원인(업, 깜마_kamma)으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그 중 일부는 ‘좋은 업(선업)’이었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그 선업 때문입니다. ‘나쁜 업(불선업)’은 고통받는 경우로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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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축생계(동물 영역)를 포함하여 더 낮은 영역이 있으며, 그곳에서는 고통이 훨씬 더 높습니다. ‘나쁜 업(불선업)’은 그러한 낮은 영역에 태어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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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악처(지옥계, 아귀계, 아수라계, 축생계)에서 겪는 고통이 진짜 고통입니다. 그것에, 우리가 먼저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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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고통은 (사성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윗자-(avijjā)’로 인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갈망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5. 이 감추어진 고통을 보는 것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붓다 상태(Buddhahood,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셨을 때, 붓다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깊은 앎을 전달할 수 있을지 염려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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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과 행복을 구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즐거움을 구하려고 부도덕하게 행합니다. 그런 부도덕한 행위의 결과는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위로 던져진 돌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볼 수 있지만, 삶을 즐기는 것같이 보이는 마약 거래자에게 어떤 나쁜 결과가 있는지 볼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성스런 진리 ㅡ 미래 고통의 원인
6. 미래 고통의 원인은 첫 번째 성스런 진리에서 간접적으로 가리키고 있는데,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감각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행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빠-야(apāya, 악처)에 재탄생하는 최악의 결과가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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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면, X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돈이나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X가 그 목적을 달성하고 100년 동안 삶을 즐긴다고 해도, 그 부도덕한 행위 때문에 겪을 수백만 년의 미래 고통에 비하면 그 100년 동안의 즐거움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7. 물고기가 미끼를 물 때, 그 행위에 감춰진 고통을 보지 못합니다. 물 밖의 육지에서 보는 우리는 그 전체 상황을 볼 수 있고, 미끼를 무는 물고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잘 압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전체 상황을 볼 수 없으므로, 자신의 행위에 감춰진 고통을 보지 못합니다. 물고기는 단지 맛있는 음식 약간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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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식으로, 31영역으로 이루어진 ‘더 넓은 세상(고통으로 가득찬 사악처가 있는 세상)’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6가지 감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에만 주의를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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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되는 재탄생(윤회)을 통해 고통을 실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고통은 가장 낮은 4가지 영역(아빠-야_apāya, 악처)에서 겪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붓다 담마’ 섹션의 ‘대통합이론인 담마(The Grand Unified Theory of Dhamma)’ 서브섹션의 포스트들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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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를 주의깊게 알아차리고, 나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 및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 즉 부도덕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8. 그러므로, 붓다께서 밝히신 “이전 들어본 적이 없는 ‘고통의 진리’ ”는 감각적 즐거움에 감춰진 고통입니다. 고통의 레벨은 그 즐거움을 얻기 위해 우리가 행하는 것(와찌 및 까-야 상카-라)에 달려 있습니다. 부도덕한 행이라면, 아빠-야(apāya)에서 최악의 고통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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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그러한 감각적 즐거움을 가치있고 즐길만하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감각적 즐거움을 얻기 위한 우리의 해로운 행동의 결과를 즉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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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짧은 시간 동안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여성을 강간한다면, 그 부도덕한 행동 때문에 미래에 동물로 수백만 년을 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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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불자는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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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고통을 줄이는 첫 단계는 생각, 말, 및 신체 행동(덧붙이자면, 이것들은 마노-_manō, 와찌_vaci, 및 까-야_kāya 상카-라_sankhāra와 관련됨)을 통해 나쁜 행위(깜마, kamma)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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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뿐냐 아비상카-라(puñña abhisaṅkhāra, 좋은 상카-라)를 통해 자신의 미래 행복을 만들고, 아뿐냐 아비상카-라(apuñña abhisaṅkhāra, 나쁜 상카-라)를 통해 자신의 미래 고통을 만듭니다.
세 번째 성스런 진리 ㅡ 미래 고통을 멈추는 방법
9.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런 고통은 (자신의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생성하는) (아뿐나-비_apunnābhi) 상카-라_sankhāra 때문에 이 생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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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식으로, 모든 미래 고통은 자신의 상카-라(sankhāra)를 제어함으로써 멈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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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네 가지 성스런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아윗자-_avijjā), 상카-라(sankhāra)를 통해 탐함과 성냄으로 대상에 들러붙습니다. 설명한 바와 같이, 이것은 빳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에서 많은 고통 전체로 이끄는 첫 단계, 즉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nkhāra, 아윗자-에서 상카-라가 연기)’ 단계입니다.
10. 세 번째 성스런 진리는 그 원인을 체계적으로 제거함에 따라 달성될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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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도의 흐름(수다원의 도)에 드는 시점부터 증가하는 것으로서,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에서 시작하여 증가하는 ‘영구적 4단계’가 있으며, 아라한(Arahant) 단계에서 최고조에 달합니다. 예를 들어, ‘세가지 유형의 행복 - '니라-미사 수카'란 무엇인가?’를 참조하세요.
11. ‘나쁜 상카-라(bad sankhāra)’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1) 올바른 담마를 배워 아윗자-(avijjā, 무명)를 제거하고, (2) 자유 의지로 상카-라(sankhāra)를 제어하는 것(이것은 아-나-빠-나(Ānāpāna) 및 사띠빳타-나(Satipatthāna)의 기본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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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하기 위한 체계적 방법이 네 번째 성스런 진리에서 상술됩니다.
네 번째 성스런 진리 ㅡ 미래 고통을 멈추는 방법
12. 두 번째 성스런 진리는 우리가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할 그 원인을 설명합니다. 근본 원인은 탐함과 성냄과 미혹함이지만, 이들은 삼특상(Tilakkhana)을 이해하고 나쁜 윤회 습관을 제거하는 것을 통해 주로 제거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세 단계 실천’ 섹션의 ‘습관, 목표, 성격(가띠 또는 가티)’ 에서 ‘닙바-나로 가는 방법 - 아-사와의 제거’에 이르는 일련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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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달성하는 방법은 고귀한 팔정도, 즉 네 가지 성스런 진리에 내포된 것을 이해하고(삼마- 딧티_Sammā Ditthi), 그리고 그에 따라, 생각하고 (상깝빠_sankappa), 말하고 (와-짜-_vācā), 행동하고 (깜만따_kammanta), 생계를 꾸려 살아가고 (아-지와_ājiva), 열심히 노력하고 (와-야-마_vāyāma), 올바른 심적 경향이 되어(사띠_sati), 마지막으로 사마-디(samādhi)에 이르는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13. 성스런 팔정도에 따라 갈 때,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가 먼저 일어난 다음, 닙바-나(Nibbāna)의 여러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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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는 도덕적으로 살아가게 될 때 시작됩니다( ‘열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포스트와 이어지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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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덕한 행위의 근본 원인은 탐함, 성냄, 및 미혹함입니다. ‘이 31영역 세상’의 3가지 특상, 즉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및 아낫따(anatta)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단계의 수준으로 미혹함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와 이어지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그것(삼특상을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강력합니다.
감춰진 고통을 보는 것은 왜 어려운가? ㅡ 시간 지연
14. ‘마음 활동의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게 보는데 가장 큰 문제는 그 활동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즉 시간 지연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시간 지연 자체가 예측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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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물질적인 것(운동 물체, 차량, 로켓 등)과 관련하여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하기는 쉽습니다. 물질 과학이 성공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일단 근본적인 법칙(중력 법칙, 운동 법칙, 전자기, 핵력, 양자 역학 등)이 발견되면, 물질적인 것은 완전히 제어가 가능합니다.
15. 그러나 마음은 매우 다릅니다. 우선 두 사람의 마음은 같은 식으로 활동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조건 세트 하에서 각자의 마음은 서로 다르게 행동하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물리적인 물체는 그렇지 않으며, 주어진 조건 세트 하에서 무엇이 일어날 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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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행위(깜마, kamma)의 결과(효과)는 이 생에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며, 때로는 (누적된 이자와 함께) 장차 많은 내생에서만 그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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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삶에서도 마음 현상은 복잡합니다. 경제학이 실제로 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사람들이 ‘인식된 이익’을 얻기 위해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를 포함합니다. 특정 주식 시장이 어떻게 이행 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경제 이론은 없습니다.
16. 마음을 수반하는 이 ‘원인과 결과’는 붓다 담마에서 깜마(kamma, 업)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보)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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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힌두교와는 다르게, 깜마(kamma)는 결정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즉, 모든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깜마란 무엇인가? - 깜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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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거나 나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위해서는 적합한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깜마(kamma)가 결정론적이 아니며 우리가 모든 미래 고통을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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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의 두 가지 결정적인 단계인 아윗자-(avijjā, 무명)와 땅하-(tanhā, 갈애)를 단지 제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앙굴리말-라(Angulimāla)가 거의 1000명을 살해한 그 모든 나쁜 깜마(kamma)를 극복한 방법입니다.
현생의 고통은 그 일부만 제거할 수 있음
마지막으로, 어떤 유형의 고통이 일어나지 않게 멈춰질 수 있는지 조사해 보고 붓다 담마에 대한 확신을 얻어봅시다. 붓다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17. 2가지 유형의 웨-다나-(vēdanā, 느낌)가 있습니다.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나는 웨-다나-(느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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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 업보)로 인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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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는 상카-라(sankhāra), 즉 감각적으로 즐거운 것에 들러붙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불화를 빚는 것(patigha_빠띠가)을 통한 상카-라로 인한 느낌입니다. 이 느낌은 침울함 또는 우울증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18. 이 생(삶)은 과거 깜마(kamma)의 결과입니다. 일단 한 생(삶)이 시작되면, ‘그 업력(kammic energy)’이 소진될 때까지 멈출 수 없습니다. 이 삶은 늙음과 쇠퇴를 겪고 결국 죽음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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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누군가 늙음(노화)으로 인해 쑤심과 통증을 느끼면 이를 완화시키고 다루기 위해 의학적(물리적) 치료를 하는 것 이외에 달리 그 느낌을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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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께서도 (몸의) 노화로 인해 허리 통증을 겪으셨으며, 마지막에는 심한 복통을 겪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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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등으로 고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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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보)로 인한 것입니다.
19. 반면에, 자신의 사고 방식(즉, 자신의 와찌 상카-라, vaci sankhāra)로 인해 일어나는 둘째 유형(정신적 고통)의 느낌은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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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 자체에서 고통을 경감하는 것(니라-미사 수카_nirāmisa sukha 라고 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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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아라한(Arahant)이 제거한 고통(웨-다나-_vēdanā, 느낌)은 ‘삼팟사 자 웨-다나-(samphassa ja vēdanā)’라고 합니다. 일부 사람들을 침울함 또는 우울증으로 이끄는 것은 이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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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삼팟사(samphassa)는 산(san) + 팟사(phassa)의 합성어이며, 자신의 오염(산_san)과 함께 접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San)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사람에게는 미래 고통을 제거하는 자유의지가 있음
20. 우리가 사람으로 누리는 생(삶)은 과거 선한 행위의 결과입니다. 개나 개미의 생(삶)은 그 유정체에 의한 과거 행위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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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생(삶)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은 과거에 행한 것(깜마 위빠-까, kamma vipāka)과, 이 생에서 하는 행이 조합되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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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에게 일어나는 것은 대부분 과거의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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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동물 간의 차이는, 동물은 그것(깜마 위빠-까)으로 일어날 것을 거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특별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어느 정도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더 높은 수준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서 엄청난 결과(좋은 결과 및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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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자유 의지가 있지만, 동물(또는, 다른 낮은 영역에 있는 존재)은 자유 의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상카-라(sankhāra)를 제어할 수는 있지만, 동물은 제어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낭비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