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다사 아꾸살라와 아낫따 – 결정적인 연결
원문: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Dasa Akusala and Anatta – The Critical Link’ 포스트
- 2017년 4월 2일; 2017년 11월 10일; 2018년 9월 1일; 2019년 6월 6일 개정; 2021년 6월 13일 재작성
앗따/아낫따 ㅡ 다양한 의미
1. 이 중요한 포스트는 붓다 담마의 심오한 가르침(아닛짜_anicca, 둑카_dukkha, 아낫따_anatta)과 실천, 즉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삼가고 다사 꾸살라(dasa kusala, 10가지 선)를 늘려감으로써 마음을 깨끗이 하는 실천 사이의 연결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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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띨락카나(Tilakkhana, 세상의 3가지 특성)는 이론적인 면(세상의 본래 모습, 특질)을 나타내고,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는 실천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둘 사이의 연결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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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둘 사이의 연결’이 띠삐따까(Tipitaka, 삼장) 밖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필자는 보지 못했습니다.[의역: 삼장에 언급되어 있는 ‘둘 사이의 연결’에 대해서는 무시되었습니다.]
2. 앞 포스트인 ‘아낫따 – 어느 앗따의 반대말일까?’에서, 왜 빠알리 낱말인 ‘앗따(atta)/아낫따(anatta)’가 ‘자아(self)/무아(no-self)’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실속 있는(with essence)/실속 없는(no essence)’ 또는 ‘진실(truth)/진실 아님(untruth)’ 또는 ‘유용한(useful)/유용하지 않은(not useful)’ 또는 ‘보호된(protected)/도움이 안 되는(helpless)’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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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어떻게 빠알리 낱말인 ‘앗따(atta)/아낫따(anatta)’가 산스크리트(Sanskrit) 낱말인 ‘아르타(artha)/아나르따(anartha)’(싱할라어로는 අර්ථ/අනර්ථ)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진실(truth)/진실 아님(untruth)’ 또는 ‘유용한(useful)/유용하지 않은(not useful)’의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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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아낫따(anatta)가 (그래서 둑카(dukkha)와 아낫따(anatta)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행함에 따라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에 이르렀습니다.
3. 최근,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 증지부)의 많은 숫따(sutta, 경)가 다양한 개념을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많은 숫따(sutta, 경)는 바로 한 구절로 핵심 개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Anguttara Nikāya – Suttā on Key Concepts’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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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는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 증지부)에 있는 짧은 길이의 경 3개를 검토하고자 합니다. 이 경들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와 ‘띨락카나(Tilakkhana, 세상의 3가지 특성)’ 사이의 연결을 명확하게 하는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꾸살라와 아꾸살라
4. 첫째, 꾸살라 숫따(Kusala Sutta)는 사두왁가(Sadhuvagga)에 있는 경(AN 10.180; in the Sadhuvagga)으로서, 바로 한 구절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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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따만짜 빅카웨, 아꾸살랑? 빠-나-띠빠-또-, 아딘나-다-낭, 까-메수밋차-짜-로-, 무사-와-도-, 삐수나- 와-짜-, 빠루사- 와-짜-, 삼팝빠라-뽀-, 아빗짜-, 브야-빠-도-, 밋차-딧티 아꾸살랑..(..katamanca bhikkhave, akusalam? pānātipātō, adinnādānaṃ, kāmesumicchācārō, musāvādō, pisunā vācā, parusā vācā, samphappalāpō, abhijjhā, vyāpādō, micchādiṭṭhi akusal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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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구절은 전통적으로, "살생, 도둑질, 성적 비행, 거짓말, 헐뜯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 탐함, 미워함, 잘못된 견해가 불선이다"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들은 ‘10가지 부도덕한 행위(다사 아꾸살라)’ 포스트에서 논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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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sutta)의 마지막 구절인 그 다음 구절에서, 다사 꾸살라(dasa kusala)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의 반대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웨라마니_veramani는 ‘~을 삼가하다’를 의미합니다.): “..까따만짜 빅카웨, 꾸살랑? 빠-나-띠빠-따- 웨라마니, 아딘나-다-나 웨라마니, 까-메수밋차-짜-라- 웨라마니, 무사-와-다- 웨라마니, 삐수나- 와-짜- 웨라마니, 빠루사- 와-짜- 웨라마니, 삼팝빠라-빠- 웨라마니, 아빗짜- 웨라마니, 브야-빠-다 웨라마니, 삼마-딧티 꾸살랑 띠.(..katamanca bhikkhave, kusalam? pānātipātā veramani, adinnādānā veramani, kāmesumicchācārā veramani, musāvādā veramani, pisunā vācā veramani, parusā vācā veramani, samphappalāpā veramani, abhijjhā veramani, vyāpāda veramani, sammādiṭṭhi kusalaṃ ‘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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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꾸살라(kusala)와 아꾸살라(akusala)는 그 경(sutta)에서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꾸살라를 행하는 것은 아낫토(아낫따가 되는, 즉 피난처가 없게 되는 자)로 이어진다
5. 그리고 바로 그 다음 경인 앗따 숫따(Attha Sutta, AN 181)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의 항목으로 아낫토-(anatthō)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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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따모 짜 빅카웨, 아낫토-? 빠-나-띠빠-또-, 아딘나-다-남, 까-메수밋차-짜-로-, 무사-와-도-, 삐수나- 와-짜-, 빠루사- 와-짜-, 삼팝빠라-뽀-, 아빗짜-, 브야-빠-도-, 밋차-딧티 - 아얌 윳짜띠, 빅카웨, 아낫토-..(..katamo ca bhikkhave, anatthō? pānātipātō, adinnādānaṃ, kāmesumicchācārō, musāvādō, pisunā vācā, parusā vācā, samphappalāpō, abhijjhā, vyāpādō, micchādiṭṭhi – ayam vuccati, bhikkhave, anatth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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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가 ‘진실한 본성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본성에 반하여 행할 때,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아낫따 – 어느 앗따의 반대말일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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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따(sutta)의 마지막 구절인 그 다음 구절에서, 앗토-(atthō)가 아낫토-(anatthō)의 반대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빠-나-띠빠-따- 웨라마니, 아딘나-다-나 웨라마니, 까-메수밋차-짜-라- 웨라마니, 무사-와-다- 웨라마니, 삐수나- 와-짜- 웨라마니, 빠루사- 와-짜- 웨라마니, 삼팝빠라-빠- 웨라마니, 아빗짜- 웨라마니, 브야-빠-다 웨라마니, 삼마-딧티 - 아얌 윳짜띠, 빅카웨, 앗토-. 띠.(pānātipātā veramani, adinnādānā veramani, kāmesumicchācārā veramani, musāvādā veramani, pisunā vācā veramani, parusā vācā veramani, samphappalāpā veramani, abhijjhā veramani, vyāpāda veramani, sammādiṭṭhi – ayam vuccati, bhikkhave, atthō. ‘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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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그런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를 삼간다면, 피난처를 가진다(그래서 난감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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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굿따라 니까-야 ㅡ 핵심 개념들에 대한 숫따들( ‘Anguttara Nikāya – Suttā on Key Concepts’ )에 이 점을 확인해 주는 짧은 경(sutta)이 더 많이 있습니다.
나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삭까-야 딧티와 관련되어 있다
6. 위 두 짧은 숫따(sutta)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명백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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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낫따(anatta)는 자아(self)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나(me)’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와 관련되어 있음에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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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낫따(anatta)는 그 핵심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행함으로 인해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난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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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닙바나(Nibbana, 열반)에 이르는 것은 그 핵심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피하는 것, 즉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다른 숫따들에 있는 증거
7.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 Nikaya)에는 그것[‘다사 아꾸살라/다사 꾸살라’와 관련된 핵심 개념]을 모두 합쳐서 정리한 여러 경이 있습니다. 빳꼬로하니 왁가(Paccorohanivagga)에 있는 빠따마 아담마 숫따(Patama Adhamma Sutta, AN 10.113)의 첫째 구절은 다음과 같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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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모- 짜, 빅카웨, 웨디땁보- 아낫토- 짜; 담모- 짜 웨디땁보- 앗토- 짜(Adhammō ca, bhikkhave, veditabbō anatthō ca; dhammō ca veditabbō atthō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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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따마 아담마 숫따(Patama Adhamma Sutta)의 다른 구절을 설명하는 또 다른 포스트를 쓸 예정이지만, (여기서)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쉽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빅쿠들이여, 아담마(adhamma)는 아낫따-(anattā, 난감함)에 이르게 하고, 담마(dhamma)는 앗따-(attā, 피난처로 닙바나)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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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아낫따(anatta)'를 '무아(no self)'로 잘못 해석된 것에 여전히 집착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위 구절의 번역이] 다음과 같은 어리석은 말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빅쿠들이여, 아담마(adhamma)는 '무아(no self)'에 이르게 하고, 담마(dhamma)는 자아(self)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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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까-야 딧티(Sakkāya Diṭṭhi)도 ‘자아(self)’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삭까-야 딧티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는 ‘나(me)’ 또는 ‘내 것(mine)’이 될 수 있거나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궁극적인 실재에서 영속적인 ‘영혼’도 없고 ‘나(me)’ 또는 ‘나(I)’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me)’에 대한 인식(산냐-_saññā)은 오로지 아라한(Arahant) 단계에서만 사라집니다. ‘위빨라-사’(딧티, 산냐, 찟따)가 ‘상카-라’에 영향을 미친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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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잘못된 해석의 근본 원인은 ‘Misintepretation of Anicca and Anatta by Early European Scholars’ 포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담마-(dhammā)와 아담마-(adhammā)
8. 담마-(dhammā)는 사람이 지니는 원칙, 즉 ‘어떤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으로 ‘좋은 담마(good dhamma)’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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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마(adhamma) 또는 아담마-(adhammā)는 [‘담마’ 또는 ‘담마-’의] 반대이며, 부도덕한 생활입니다. 사람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에 끌려 행하면, 아담마(adhamma)에 끌려 행하는 것이며, 즉, 이것이 ’아담마-(adhammā)‘를 지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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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유사한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보통 ‘냄새’라는 낱말을 ‘나쁜 냄새’라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실제 좋은 냄새’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특별히 ‘좋은 냄새’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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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식으로, 자신이 지니는 담마-(dhammā)는 좋거나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좋은 담마-(good dhammā)’를 나타내기 위해 ‘담마-(dhammā)’라는 낱말을 씁니다. ‘나쁜 담마-(bad dhammā)’는 ‘아담마-(adhammā)’입니다.
9. 보통 '담마(dhamma)'라는 용어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쓰이는 것과 같이 가르침이나 원리(원칙)를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담마-(dhammā, 끝 글자가 긴 ‘a')라는 용어는, 사람이 ’과거 깜마(past kamma)‘의 결과로서 지니는 것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 '루-빠'란 무엇인가? – '담마-'도 '루-빠'다! ”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담마-(dhammā)은 깜마 비자(kamma bija, 업 씨앗)와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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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맥에 따라 의미를 알아낼 수 있어야 하고, 주어진 구절에서 그 용어(낱말)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띠삐따까(삼장) 전체 내의 일관성
10.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서 어떤 숫따(sutta)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 위의 설명과 일치할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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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3개의 숫따(sutta)는 띨락카나(Tilakkhana)의 심오한 의미(이론)와 실천(실라_계를 통해 마음을 정화, 즉 다사 아꾸살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사이에 핵심 연결 관계를 보여 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연결 관계를 보기 위해 수백 개의 숫따(sutta)를 분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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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토론 게시판에 가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다른 사이트로부터 숫따(sutta)를 인용하여, 대개 빠알리어의 핵심 용어에 대해 잘못된 의미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 그 증거가 있다고 하면서 올리는 긴 게시물을 모두 읽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당연히 그 게시물 간에는 대개 모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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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필자가 이 웹 사이트(pure dhamma)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주된 이유였습니다. 필자는, 핵심 빠알리 용어를 진정한(심오한) 의미로 쓴다면 모든 것이 모순 없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 ‘많은 텍스트의 주요 문제점은 핵심 용어의 일반적인(관습적인) 의미를 취하여 그것을 잘못된 곳에 적용한다는 것’임을 명심하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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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한 핵심 용어의 참된(심오한) 의미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주어진 의미를 사용해야 하는 곳을 알지 못한다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빠알리 사전들 ㅡ 그것들은 믿을 만한가?’ 포스트를 보세요. 또한, ‘붓다 담마: 비인지성과 자기 일관성’ 포스트도 보세요.
12. 앞 포스트인 ‘아낫따 – 어느 앗따의 반대말일까?’에서, 아낫따(anatta)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간단히 언급했습니다. 이제 그 연결 관계가 훨씬 더 분명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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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에 이끌려 행하는 것은 결국 고통(괴로움)으로만 이어지고 그래서 구할 길이 없이 난감하게 되고 어찌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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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개념은 아낫따(anatta)에 대한 싱할라 낱말인 아나-르타(anārtha)로 아주 분명합니다. 앞 포스트에서 검토한 아나-르타(anārtha)는 글자 뜻 그대로 ‘완전히 쓸모없고 해로움만 가져올 수 있는 것을 함’을 의미합니다.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조건이 맞을 때, 언제든지 실현(구체화)될 수 있다
13. 다사 아꾸사라(dasa akusala)를 행하는 것이 미래의 삶(내생)에서만 ‘나쁜 위빠-까(bad vipāka, 나쁜 과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착각(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도덕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 이 삶 자체에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리빙 담마’ 섹션의 시작부분 포스트들에서 상세히 논의되었습니다. ‘리빙 담마’ 섹션은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합니다.
1)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를 행하는 것을 삼가기 시작할 때, 니라-미사 숙카(nirāmisa sukha)라고도 불리는 확실한 안도감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이것이 초기에는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2) 니라-미사 숙카를 경험하기 시작할 때,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 특성과 같은 담마의 심오한 측면도 또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만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로 인해 야기되는 ‘장기 깜마 위빠-까(long-term kamma vipāka)’를 실제로 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장기 깜마 위빠-까를 본다’는 것은 그것(다사 아꾸살라)들이 아빠-야-(apāyā, 사악처)에 태어나는 것으로 이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앗따(atta)는 진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14. 앗따(atta)는 많은 텍스트에서 때로는 ‘앗타(attha, ‘h' 추가)’로 표기되며, 각 표기는 평범한 의미 또는 심오한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예를 들면, 옛 싱할라 주석서들은 ‘앗타까타-(atthakathā)’라고 불립니다. ‘앗타까타-(atthakathā)’는 ‘진리에 관한 설명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까타-(kathā)는 ‘이야기’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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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삐따까(Tipitaka, 삼장)에는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주석서가 있는데, 바로 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뻬따꼬빠데사(Petakopadesa) 및 넷띱빠까라나(Nettippakarana)입니다. 많은 싱하라 주석서 중에서 이 세 개만이 [원래의 주석 그대로] 살아남아 전해지는 주석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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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주석은 앗따까따-(atthakathā)에 속하지 않습니다.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는 널리 보급되어 있고 인기 있는 대중적인 주석서이지만, 잘못된 주석서의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Buddhaghosa’s Visuddhimagga – A Focused Analysis’을 참조하세요.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띨락카나를 이해할 때 담마-에 따라 살게 된다
15.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제 “아담만짜 위디뜨와- 아낫탄짜, 담만짜 위디뜨와- 앗탄짜 야타- 담모 야타- 앗토 따타- 빠띠빳지땁방(Adhammañca viditvā anatthañca, dhammañca viditvā atthañca yathā dhammo yathā attho tathā paṭipajjitabbaṁ)” 구절에서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위 7번에서 언급한 ‘빠따마 아담마 숫따(Patama Adhamma Sutta)’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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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은 “아담마(adhamma)가 아낫타(anattha)로 이어지고 담마(dhamma)가 앗타(attha)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에 따라 실천(수행)한다(‘야타- 담모’를 따르면 ‘야타- 앗토’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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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담마-(dhammā)을 지니고 아담마-(adhamm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성스런 진리/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띨락카나(Tilakkhana, 세상의 삼특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 재탄생 과정(윤회)에서 아낫따(anatta, 난감하여 어찌할 수 없음)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앗따(atta, 피난처)를 가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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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성스런 진리를 이해하면, 결코 아담마-(adhammā)에 따라서는 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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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이론과 실천’ 사이에 간단하지만 결정적 연결 고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포스트입니다. 이 연결이 파악될 때까지, 관련이 있는 다른 포스트를 읽고 돌아와서 이 포스트를 다시 읽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