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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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닛짜 산냐를 계발하는 방법-1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How to Cultivate the Anicca Saññā’ 포스트

- 2017년 11월 26일 개정

 

1.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아닛짜(anicca)가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 그 말 자체가 ‘그 사람은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아직 아닛짜(anicca)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필자는 경멸적인 투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따빤나(Sōtapanna, 수다원) 조차도 어느 정도만 아닛짜(anicca)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아닛짜(anicca)가 의미하는 것을 조금만이라도 엿볼 수 있다면 그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것(아닛짜)을 단지 잘 숙고할 수만 있다면 그것(조금 엿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 아닛짜(anicca)에 대해 읽고 배우는 것과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경험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첫째, 산냐(saññā)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좋습니다. ‘Saññā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를 보세요.

*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가 자신의 마음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삶에서 실례와 함께 아닛짜(anicca) 특상에 대해 정말 참으로 숙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이 세상에 대한 기본 진실, 즉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자신을 계속 만족스럽게 할 수는 없다"는 진실을 처음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붓다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번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단지 세밀하게 평가함으로써 진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 자신이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 몸이며 이것들은 내 생각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생각하여 시작해야 합니다.

 

3. 눈을 감고 어떤 것, 즉, 아내, 남편, 친구, 집 등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마음을 고정시키려고 해 보세요. 좀 긴 시간동안 그 대상에 마음을 계속 고정시킬 수 있습니까?

 

* 그렇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은 더 유혹하는 생각 대상을 구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싶어 합니다. 마음이 흥분하면(들뜨면), 예를 들면, 매력적인 대상을 보았을 때나 어떤 것을 정열적으로(격렬하게) 할 때나 호흡하기가 힘들 때에는 [대상에 마음을 계속 고정시키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경우는 ‘깜마찬다 니-와라나kamaccanda nīvarana, 감각적 욕망의 장애)가 강한 경우이고, 둘째 경우는 웃닷짜 니-와라나(uddacca nīvarana, 들뜸의 장애, 흥분성, 민감성)가 높은 경우입니다.

* 그래서, 마음이 고요할 때 어떤 것에 마음을 유지하기가 조금 쉽지만,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4. 이 예들에 대해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읽는 것(또는 듣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경험되어야 합니다.

 

*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이 정말로 참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으로만 지혜를 계발할 수 있습니다. 맹목적인 믿음에 의해서는 어떤 누구라도 진리에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명상은 진실하고 순수한 담마를 배우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세밀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5. 참으로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다음 단계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자기 몸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 키나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색 등 기본적인 신체 특질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또한 장님이나 팔 다리(손 발)가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습니다. 따라서 대부분 우리는 태어난 몸과 함께 살아야만 합니다.

 

6. 다음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몸을 두루 생각해 보고, 그 모습을 좋아한다면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알아보십시오.

 

* 물론 잠시 동안, 특히 젊었을 때는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을 때가 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옛날 사진을 보고, 그분들이 자신의 나이에 있었을 때로 돌아가 있으면 얼마나 젊고 활기차 있었는지 보세요.

* 그러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는 것도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가 크게 계발되게 합니다.

 

7. 이런 방식에 따라 생각하는 것은 ‘우울하다’고 믿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러한 숙고는 실제로 진실을 깨닫게 해줄 수 있습니다. [성형수술 등의] 인공적인 수단으로 ‘늙어가는 몸을 패치’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사람들은 결국 ‘병적 우울감’을 겪게 되고, 자살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인생의 불가피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 충분히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런 문제에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일지라도, 결국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노년의 무비 스타들, 뷰티 퀸들, 보디 빌더들, 정치인들, 왕들, 황제들 등에 대해 생각해 보고, 결국 어떻게 그들이 어찌할 수 없이 죽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 사람은 노년에 어찌할 수 없이 죽거나, 예기치 않게 사고나 큰 병으로 사망합니다. ‘우아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사람이 우아하게 늙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정상적인 건강 상태일지라도 얼마나 힘 드는지 압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단순히 예전에 한 것과 같은 식으로 어떤 것을 할 수는 없으며, 어떤 감각적 즐거움을 [예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감각 능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하됩니다.

 

8. 이것은 붓다의 기본 메시지였으며, 붓다께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붓다께서는 단지 이 세상의 본성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것(또는 즐길 대상을 소유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너무 바빠서, 그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조차 가질 수 없습니다.

 

* 붓다께서는 우리가 그것(진실)에 대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것(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할 것임을 또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고 계속해서 같은 사이클을 반복할 것입니다. 이 재탄생(윤회) 사이클에서 대부분 고난과 고통(괴로움)이 훨씬 높은 사악처로 태어나므로, 실제로는 훨씬 더 심각합니다.

* 더 중요한 것으로, 고난(괴로움)을 겪게 되는 이 탄생(재탄생)의 사이클을 없애는 방법을 붓다께서는 밝혀 주셨습니다.

 

9. 우리가 이 세상으로 계속 돌아오는 이유는 ‘이 불만족스러운 본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붓다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고통을 겪더라도, 우리는 항상 [세상에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고통을 극복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우리는 어떻게든지 하여 ‘이 (세상) 시스템을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 즉 ‘(세상에서) 행복을 얻고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닛짜 산냐-(nicca sañña)를 가지고 있습니다.

 

* 붓다께서는 우리가 닛짜 산냐-(nicca saññā)를 가지고 있는 한, 미래의 고통(괴로움)을 결코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해결책은 고통(괴로움)에 대한 첫 번째 진리(둑카 삿짜_Dukkha Sacca, 제거될 수 있는 괴로움)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의 아닛짜 특상(anicca nature), 즉, ‘장기적으로 볼 때 어떤 것을 우리가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는 것입니다.

* 단순히 지각(산냐)을 변화시킴으로써 ‘가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사람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니라-미사 수카(nirāmisa sukha)의 기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Peace of Mind to Nibbana – The Key Step’ 포스트를 보세요.

*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세상에서 사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 즉,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숲속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If Everything is Anicca Should We Just give up Everything?’ 포스트를 보세요. 사람들은 항상 주변에서 아닛짜(anicca) 특성을 보도록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참된 명상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10. 잘못한 닛짜 산냐-(nicca sañña)를 지니고 있을 때, 이 세상을 기꺼이 붙잡고 껴안게 됩니다. 그것이 빠띠짜(patica) 입니다. 빠띠짜(patica)는 빠띠(pati)와 잇짜(icca)의 합성어이며, 빠띠(pati)는 ‘묶는(묶이는)’의 뜻이고 잇짜(icca)는 ‘좋아서 기꺼이 하는’의 뜻입니다. 그것(빠띠짜)이 일어날 때, 사마 웁빠-다(sama uppāda)가 필연적으로 뒤따릅니다. 여기서 사마(sama)는 ‘비슷한’의 뜻이고 웁빠-다(uppāda)는 ‘발생(탄생)’의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Paticca Samuppada – “Pati+ichcha”+”Sama+uppäd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든 갈망하는(간절히 원하는) 유형의 존재로 태어날 것입니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인간 존재로 태어나기를 갈망하면(간절히 원하면), 그렇게(인간 존재로) 태어날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존재로] 태어남은 각자의 마음 세트(심적 경향)의 핵심 양상인 ‘가티(gathi)’에 따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과도하게 탐욕스럽다면, 그 사람은 아귀계에 태어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과도하게 성내거나 증오한다면, 그 사람은 그 심적 경향이 우세한 곳, 즉 니라야(niraya, 지옥)에 태어날 것입니다.

* 다른 식으로 말하면, 잘못된 닛짜 산냐-(nicca saññā)가 있을 때, 사람들은 감각적 즐거움을 준다고 인식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부도덕한 일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 업보)는 현생과 더 중요하게는 내생에서 미래에 더 나쁜 존재양식 또는 생활방식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11.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계발함에 따라, 그러한 행동이 결실(실속)없다는 분명한 이해로 인해, 10가지 부도덕한 행에서 더욱 더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돈을 훔치고, 기껏해야 100년 동안 지속되는 ‘물질적 부’를 얻고, 그에 대해 이자를 붙여 지불해야만 할까요?

* 순간적인 만족감을 위해 누군가에게 욕설하고, 결국 자신을 해치기만(나중에 받게 될 업보는 나두고라도 자신을 괴롭게 하기만 함) 해야 할까요?

그러한 사건(행위)을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면, 되돌아보고 그 노력으로 생긴 ‘쿨링 다운(번뇌의 불이 사그라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나-빠-나(Ānāpāna) 또는 사띠빳타-나(Satipatthāna)의 전부입니다.

* 누군가 자신에게 육체적 상처를 입힌다 하더라도 반격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상처입힘으로써 자신이 육체적으로 좋은 느낌이 될까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이 사라질까요? 그런데 그것(자신이 육체적으로 상처입은 것) 또한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느때 행한 나쁜 깜마(kamma)의 결과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돌아온 것입니다.

* 그런데,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전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열매맺을 조건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많은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피할 수 있습니다. ‘What is Kamma? – Is Everything Determined by K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러므로, 사띠(sati)로 살아갈 때, 많은 그러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피할 수 있습니다.

 

12. 이것들을 정리하는 데는 좀 숙고가 필요할 수 있지만, 항상 더 넓은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어리석으면 ‘전체 그림’을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식별한 것으로 충동적으로 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은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계발할 때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 사띠(sati, 주의깊음)로 행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아닛짜(anicca) 특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나-빠나(Ānāpāna)’와 ‘사띠빳타-나(Satipatthāna)의 기본입니다.

* 닙바-나(Nibbana) 또는 쿨링 다운(cooling down, 번뇌의 불이 사그라드는 것)은 아닛짜 산냐-(anicca saññā)를 계발하고 그래서 자극되어 더 열심히 노력함에 의해 바로 이 생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Living Dhamma’ 카테고리(섹션)의 포스트들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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