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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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삶에서 겪는 괴로움과 연기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Suffering in This Life and Paticca Samuppada’ 포스트

2016년 10월 28일


이 섹션의 이전 데사나(desana, 법문)에서 이 삶에서 겪는 괴로움(고통)이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Maha Satipattāna Sutta) 시작 부분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 데사나(desana)에서는 그것이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에 의해 어떻게 묘사되는지 논의할 것입니다.


법문: ‘이 삶에서 겪는 괴로움(고통) -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에 따라’

https://drive.google.com/file/d/0B8ZQck7L0xjdSTlmWldFalFfbUU/view


<데사나(법문)에서 언급된 링크>


1. ‘Paticca Samuppada’ 섹션의 포스트들은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 사이클에 대한 상세한 내용으로 참조할 수 있음.


2. 딴하(tanha, 갈애)에 대해서는 Tanha – How We Attach Via Greed, Hate, and Ignorance 포스트를 참조.


3.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는 의식적인 생각없이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의식적 생각(밖으로 하는 말을 포함)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입니다.

'가티와 낄레사가 어떻게 생각에 포함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 데사나(desana)에서, 필자는 ‘말하는 중에 입과 혀가 움직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은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라고 잘못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하든 실제로 소리내어 말을 하든, 둘 다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입니다. 걸을 때에 일반적으로 신체 부위를 움직이는 것과, 말할 때에 입술과 혀를 움직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두 종류의 루-빠(rūpa), 즉 까야 윈냣띠(kaya vinnatti)와 와찌 윈냣띠(vaci vinnatti)로 각각  행해집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 * 소리내어 말하는 것을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로 분류하는 실수를 지적 해 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 필자는 그 설명을 찾기 위해 아비담마(Abhidhamma)를 더 깊이 파고들어 보아야 했습니다. 필자는 실수를 할 수 있고, 그래서 독자들의 의견을 환영합니다. 필자의 목표는 이 웹 사이트의 내용을 완전히 일관성있게(서로 모순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4. 이 삶에서 겪는 괴로움(고통)은 이 삶에서 행해진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 때문임:

이 삶의 괴로움 - 정신적 오염물의 역할

사띠빳타-나 숫따 - 이 삶의 괴로움과의 연관성


5. 비도덕적인 생각에서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의 역할:

'낄레사(정신적 오염물)'란 무엇인가? -  쩨따시까에 연결


6. 팟사(phassa)와 삼팟사(samphassa):

Difference between Phassa and Samphassa

Kāma Assāda Start with Phassa Paccaya Vedana or Samphassa Ja Ved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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