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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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존재계의 몸 유형 - 마노마야 까야의 중요성


원문 :  Buddha Dhamma 섹션의 ‘Body Types in 31 Realms – Importance of Manomaya Kaya’ 포스트

2015년 10월 23일 이전에 작성; 2016년 5월 31일 개정; 2018년 12월 1일 주요 개정



1. 31개의 영역을 세가지 주요 범주, 즉 까-마 로-까(kāma lōka), 루-빠 로-까(rūpa lōka), 및 아루-빠 로-까(arūpa lōka)로 나눌 수 있습니다.


  • * 까-마 로-까(kāma lōka)의 유정체는 11개 영역에 존재합니다. 11개 영역이라 함은 사악처(apāyā, 아빠-야), 인간계 그리고 6개의 데-와-(dēvā) 영역을 말합니다.

  • * 루-빠 로-까(rūpa lōka)는 16개의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ūpāvacara brahma) 영역을 가집니다. ‘루-빠-와짜라 브라흐마’는 루-빠 로-까(rūpa lōka, 색계)에 있는 브라흐마(brahma)를 의미합니다.

  • * 아루-빠 로-까(arūpa lōka, 무색계)는 4개의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ūpāvacara brahma) 영역을 가집니다.


2. 서로 다른 세트의 감각 기능은 그 세가지 유형의 ‘로-까(lōka)’에 있는 존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 * 아루-빠 로-까(arūpa lōka)에서는 오직 마음만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아루-삐 브라흐마(arūpi brahma)와 관련된 유일한 루-빠(rūpa,물질_matter)는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입니다.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 숫다-쉬따까(suddhāshtaka)라고 부르는 가장 작은 물질 단위의 크기입니다.

  • * 그 숫다-쉬따까(suddhāshtaka)는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원자보다 훨씬 더 작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존재를 볼 수 없습니다. 음료수 내에 있는 존재와 같이, 주변에 살고 있는 많은 미생물조차도 우리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볼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3. 루-빠 로-까(rūpa lōka)에 있는 유정체는 단지 눈,귀 그리고 마음이라는 [세 가지] 감각 기능만을 가집니다.


  • * 그러나 그 눈과 귀는 우리 인간이나 동물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인 눈과 귀와 같은, 고형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 그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ūpāvacara brahma)는 짝쿠(cakkhu)와 소따(sota)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의 도움으로 보고 듣습니다. 그 두개[짝쿠와 소따 빠사-다 루-빠] 각각 또한 숫다-쉬따까(suddhāshtaka) 크기입니다.

  • * 그러므로,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ūpāvacara brahma)의 경우에도, ‘몸’ 전체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숫다-쉬따까(suddhāshtaka)로 구성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와 두 개의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의 무더기를 그 브라흐마의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라고 합니다.

  • *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ūpāvacara brahma)는 오직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만 있는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를 가집니다.

  • * 그러므로, 가장 정교한 현미경으로도, 그 20개 영역에 있는 그 어떤 브라흐마(brahma)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4. 사실 모든 유정체는 숫다-쉬따까(suddhāshtaka) 크기의 각 기본 감각 기능을 가집니다. 까-마-와짜라 유정체의 기본 감각 단위에는 보기, 듣기, 맛보기, 냄새맡기, 만지기,  생각하기라고 하는 6가지가 있습니다.


  • * (인간, 동물, 및 데-와(dēva)를 포함하는) 모든 까-마-와짜라(kāmāvacara) 유정체는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라고 부르는 보이지 않는 다섯가지 감각 기능이 있는 ‘미세한 몸’을 가집니다. 빠사-다 루-빠는 시각에 해당하는 짝쿠 빠사-다 루-빠(cakkhu pasāda rūpa), 청각에 해당하는 소따 빠사-다 루-빠(sota pasāda rūpa), 후각에 해당하는 가나 빠사-다 루-빠(ghana pasāda rūpa), 미각에 해당하는 지와- 빠사-다 루-빠(jivhā pasāda rūpa), 촉각에 해당하는 까-야 빠사-다 루-빠(kāya pasāda rūpa)가 있습니다.

  • * 이 다섯 세트의 빠사-다 루-빠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는 까-마-와짜라(kāmāvacara) 유정체의 ‘정신적 몸’ 즉,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를 이룹니다.

  • *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ūpāvacara brahma)가 보고 듣는 기능의 단 두개의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와 생각하는 기능의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가 있는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를 가진다는 것을 아는 것은 쉽습니다.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ūpāvacara brahma)는 마음(생각) 기능을 위한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만을 가집니다.


5. 까-마-와짜라 유정체(인간 또는 동물)의 육체적인 (고형의) 눈, 귀, 코, 혀 그리고 몸은 단지 외부 신호를 받아들이기 위한 ‘감각 장치’로써 작용합니다.


  • * 그러면, 뇌는 그 신호를 처리하여 고형의 몸 내부에 있는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로 보냅니다. 이것은 다음 포스트에서 설명하겠습니다.

  • * 인간까지도, 그 본질이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에 있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고형의 몸은 단지 마노-마야 까야에 의해 ‘활성화되는(유지되는)’ 비활성 셀(껍질)일 뿐입니다. 죽을 때,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가 [물질적 몸(육체)에서] 나오게 되면, 물질적 몸(육체)은 통나무와 같은 무정체가 됩니다.


6. 이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는  수태(임신) 시에 자궁에 있는 수정란(zygote, 접합체)을 붙잡습니다. 그 수정란(접합체)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접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에 대해서는 ‘Buddhist Explanations of Conception, Abortion, and Contraception’ 포스트를 보세요.


  • * 처음에 자궁에 내려앉는 간답바(gandhabba)는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보다 좀 더 조밀한 몸을 가집니다.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 외에도, 그것(간답바)은 ‘물질적 몸’도 가지지만, 여전히 너무 미세해서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간답바(gandhabba)는 자궁으로 들어갈 때, ‘물질적 몸’이 떨어지고 ‘매우 미세한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만이 수정란(zygote)과 결합합니다.

  • * 'Buddhist Explanations of Conception, Abortion, and Contraception' 포스트에서 논의된 것처럼, 그 수정란(zygote)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접에 의해 형성된 세포이고, 현대 과학을 알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 과학은 수정란과 결합하는 간답바(gandhabba)의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āya)를 모릅니다.

  • * 사실, 과학자들은 수정란(zygote)이 어떻게 ‘새 생명체’, 즉 새로운 유정체가 되는지를 모릅니다.

  • * 간답바(gandhabba)는 ‘Mental Body – Gandhabba’ 서브 섹션에서 논의됩니다.


7. 이제,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를 가진 수정란이 점점 더 많은 새로운 세포로 나뉘어지기[세포분열] 시작합니다.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어머니(즉, 어머니가 먹는 음식)로부터 나옵니다.


  • * 초기 단일 세포는 9개월 후에 자궁에서 나오는 태아의 크기까지 자랍니다. 자, 우리는 기본 감각 기능을 가지는 중요한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가 그 태아에 비해 무시할 정도로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물론 자궁 밖으로 나오면, 태아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성장하고, 마침내 성인(어른)으로 자랍니다. 사실상 성인의 모든 고형의 물질은 생명이 없는 물질일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몸체 질량의 ⅓ 또는 절반을 잃어도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8. 그러므로, 무거운 고형의 몸체에는 특정 ‘사람’을 정말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모든 주요 측면은 정신적 몸 즉,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에 있습니다.


  • * 그 고형의 몸은 하다야 왓투(hadaya vatthu)와 다섯가지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를 가진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에 의해 살아있게 됩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것이 [실제] 벌어지는 일입니다.

  • * 물질적 몸(육체)이 죽을 때, 그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는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나올 때, 그것은 [임종시의] 사람의 몸을 닮은, 매우 미세한 ‘신체 유형’의 몸을 또한 가집니다. [마노-마야 까야에] 합쳐진 그 미세한 몸은 실제로 ‘유령처럼’ 생겨서 일부 사람들에게까지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간답바(gandhabba)라고 하는 것이며, ‘인간 바와(bhava)’를 유지하는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가 더 남아 있다면, 이제 그것은 들어갈 또다른 적합한(부합하는) 물질적 몸(육체)을 기다립니다.


9. 루-빠 로-까(rūpa lōka)에 있는 브라흐마(brahma)의 경우, 탄생하는 순간에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에 의해  세가지 유닛(unit)의 물질이 형성됩니다. 세가지 유닛의 물질을 가지기 때문에, 빠띠산디(patisandhi) 순간에 형성된 그런 초기 상태의 ‘몸’을 ‘트리자 까야(thrija kaya)’라고 부릅니다. 그 세가지 유닛은 깜마자 까야(kammaja kaya), 찟따자 까야(cittaja kaya), 및 우뚜자 까야(utuja kaya)입니다. 우뚜자 까야(utuja kaya)는 매우 미세한 물질적 몸(육체)이며, 그 [육체를 가지는] ‘루삐 브라흐마(rupi brahma, 색계 범천)’들은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 * 루삐 브라흐마(rupi brahma)는 ‘까야 다사까(kaya dasaka), 왓투 다사까(vatthu dasaka), 바와 다사까(bhava dasaka), 그리고 시각에 해당하는 짝쿠 빠사-다(cakkhu pasāda)와 청각에 해당하는 소따 빠사-다(sota pasāda)라는 두개의 빠사-다 루-빠(pasāda rūpa)’로 이루어지는 깜마자 까야(kammaja kaya)를 가집니다. 이 빠사-다 루빠는 또한 근본적으로 숫다-쉬따까(suddhāshtaka)인데, 숫다-쉬따까는 다른 모드의 스핀(spin, 자전_bramana)과 로테이션(rotation, 공전_paribramana)을 가집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구와 관련된 31존재계’ 포스트를 보세요.

  • * ‘까야’가 ‘몸’으로 번역되었지만, 루삐 브라흐마(rupi brahma)의 유일한 ‘물질적 몸(육체)’은 ‘우뚜자 까야(utuja kaya)’입니다. 따라서 ‘까야(kaya)’는 ‘물질적 몸(육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0. 루삐 브라흐마(rupi brahma, 색계 범천)의 물질적 몸(utuja kaya,우뚜자 까야)은 데-와(dēva, 천신)의 우뚜자 까야(utuja kaya)에 비해 훨씬 더 미세하므로, 우리가 데-와(dēva)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데-와(dēva)는 루삐 브라흐마(rupi brahma)를 볼 수 없습니다.


  • * 브라흐마(brahma)는(그리고 ‘데-와’도) 빛 없이 ‘볼’ 수 있고, 음파를 전달하는 공기 없이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물질적 몸(육체)’은 우리와 같은 ‘눈’과 ‘귀’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먼 거리에 걸쳐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짧은 시간내에 갈 수 있습니다.

  • * 그들이 어떻게 보는 지에 대해 가장 가까운 비유를 들자면, 우리가 꿈을 어떻게 보는지와 같습니다. 우리는 꿈을 보기 위해 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브라흐마(brahma)는 바로 [직접] ‘봅니다’(‘인지한다’라는 낱말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 들어감에 따라, 이러한 것들은 앞으로 명확해질 것입니다.


11. 기본적인 경험 법칙은, 일반적으로 낮은 영역에 있는 존재는 더 높은 영역에 있는 존재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신통력(abhiññā power)을 계발하면, 더 높은 영역에 있는 존재를 ‘보는’ 능력을 가집니다.


  • *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가장 높은 영역은 물론 데-와(dēva) 영역입니다. 데-와(dēva)도 두 유형(색계 및 무색계)의 브라흐마(brahma, 범천)처럼 즉각적으로 완전한 형태로 탄생(opapatika birth, 화생)합니다. 하지만, 데-와(dēva)는 ‘까라자 까야(karaja kaya)’라는 네번 째 유형의 몸을 가집니다. 그 몸은 우리 인간의 물질적 몸(육체)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그들은 ‘까라자 까야(karaja kaya)’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음식(아무르타, amurtha)을 섭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한 음식(아하라, ahara)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까라자 까야(karaja kaya)는 ‘아하라자 까야(aharaja kaya)’라고도 불립니다.

  • * 그래서 데-와(dēva)는 ‘차뚜자 까야(chatuja kaya)’라는 ‘네가지 몸’을 가집니다. 다시 말해서, 깜마자 까야(kammaja kaya), 찟따자 까야(cittaja kaya), 우뚜자 까야(utuja kaya), 및 까라자 까야(karaja kaya)를 모두 합쳐서 ‘차뚜자 까야(chatuja kaya)’라고 합니다.

  • * 그러나 데-와(dēva)와 브라흐마(brahma)는 병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 존재를 위한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가 소진될 때, 죽어 사라질 뿐입니다.


12. 인간과 동물이 처음 ‘태어날’ 때, 그들 또한 브라흐마(brahma)의 몸에 가까운 형태로 즉시 형성됩니다. 이것이 쭈띠-빠띠산디 순간에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에 의해 생성된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입니다.


  • * 그 마노-마야 까야(manōmaya kaya)는 이전 에세이에서 언급했던 ‘간답바(gandhabba) 상태’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Gandhabba (Manomaya Kaya) – Introduction’ 포스트와 이어지는 포스트를 보세요.

  • * 예를 들어, 한 남자가 죽어 ‘인간 바와(human bhava)’의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 사람(남자)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깜마 에너지가 소진되었다면), 그는 과거의 강한 깜마 위빠까(kamma vipaka)에 따라 또다른 ‘바와(bhava)’에(를) 들러붙게(움켜잡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의 다음 ‘바와(bhava)’는 사슴이 될 수 있습니다.

  • * 그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 간답바(gandhabba)’가 그 죽은 몸(시체)에서 나올 것입니다. 만약 그가 사슴으로 태어나게 된다면, ‘사슴 간답바(gandhabba)’가 그 시체에서 나올 것입니다.


13. 인간 간답바(gandhabba) 또는 동물 간답바(gandhabba)의 몸도 데-와(dēva)의 몸처럼 ‘차뚜자 까야(chatuja kaya)입니다. 하지만 그 [냄새를 흡입하기 전 상태의  간답바] 몸은 데-와(dēva)의 몸보다 더 미세합니다. 간답바(gandhabba)는 음식으로 냄새(‘gandha’ + ‘abba’)를 흡입하기만 할 수 있고, 따라서 이름이 그러합니다.


  • * 브라흐마(brahma) 또는 데-와(dēva)처럼, 간답바(gandhabba)는 먼 거리에 걸쳐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간답바(gandhabba)는 육체적인 눈이나 귀를 지탱할 수 있는 고형의 몸을 가지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상상하기가 힘들지만, 우리가 꿈을 볼 때 일어나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꿈을 보기 위한 빛은 필요 없습니다. 밤에 칠흑같이 어두울 때 꿈을 보며, 눈으로 꿈을 ‘보지는’ 않습니다.)

  • * 간답바(gandhabba)로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 간답바(gandhabba)는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극도의 고통’이라는 말이 더 나을 것입니다). 간답바(gandhabba)는 그 몸이 너무 미세해서, ‘접촉’을 통한 감각적 즐거움은 어떤 것도 누리지 못합니다. 음식을 맛보거나 어떤 것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간답바(gandhabba)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성접촉을 즐기는 등으로 ‘삶을 즐기는’ 일반 인간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 받습니다.


14. 물론, 브라흐마(brahma)와 데-와(dēva)도 (그들이 원하면) 그런 활동(삶을 즐기는 활동)을 하는 인간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거친 즐거움’에 대해서 어떠한 좋아함(upadana)도 없습니다. 그들의 정신 상태는 신통력(abhiññā power)을 계발한 사람처럼 훨씬 더 높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인간 몸에 대해 거부감이 든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렁이 등] 땅벌레의 활동에 대해 [저 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인간 활동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특정 바와(bhava)와 관련된 심적 경향(마음 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 * 그러나 간답바(gandhabba)는 ‘거친 감각적 즐거움’을 매우 많이 갈망하기 때문에, 인간 또는 동물 ‘바와(bhava)’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 ‘우빠-다-나’를 조건으로 ‘바와’가 연기)입니다.


15. 그래서, 우리가 매우 간절히 원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런 조밀한 고형의 몸을 얻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거친 감각적 즐거움’을 갈망하는 한, 우리는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태어날 것입니다. 데와(deva)도 까-마 로-까(kāma lōka)에 있지만, 그들의 갈망은 ‘거칠지’ 않습니다. 그들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을 단단히 움켜잡지는’ 않습니다.


  • * 루-빠 로-까(rūpa lōka)에 있는 브라흐마(brahma)는 ‘거친 감각적 즐거움’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맛, 냄새, 또는 신체 접촉에 대한 욕구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보고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 * 아루-빠 로-까(arūpa lōka)에 있는 브라흐마(brahma)는 시각 대상과 소리에 대한 갈망조차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마음의 즐거움으로 충분하며, 물질은 아루-빠 로-까(arūpa lōka)에 최소한으로 있습니다.


16.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조밀한 몸’을 가지면 여러 가지 질병도 일어나고 늙음에 따라 쇠퇴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 게다가, 이제는 먼 거리에 걸쳐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간답바(gandhabba)는 고형의 무거운 몸의 쉘(shell, 껍질)에 갇혀, 그 몸에 붙어있는 ‘물질적 문(감각기관)’을 통해 ‘보고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움켜잡는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즉 거친 음식을 먹고 성접촉을 하는 것 등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희생된 것입니다.

  • * 붓다께서는 물질적 몸(육체, 까라자 까야 또는 아하라자 까야)을 간답바(gandhabba)가 임시로 사용하는 ‘동굴(cave)’ 또는 ‘껍질(shell)’이라고 칭하셨습니다. 그것은 특정한 수명이 있고 그 시간 동안, 자라고, 쇠퇴하고, 마침내 죽습니다. 그런 다음 간답바(gandhabba)는 또다른 몸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서, 우리는 늙은 몸이 죽을 때 ‘새로운 껍질’을 바로 만들어야 하지만, 새로운 몸을 만들기 시작할 적합한 자궁을 기다리며 좌절 상태의 간답바(gandhabba)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17. 따라서, 쇠퇴하여 마침내 죽는 것은 오직 ‘물질적 몸(육체)’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 간답바(gandhabba)는  계속 변화할 것이고, 그 바와(bhava)를 위한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가 소진되지 않았다면 예전 것과 비슷한 ‘새로운 몸’을 찾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소진되었다면), 그 인간 간답바(gandhabba)는 (데-와 또는 브라흐마가 죽을 때처럼) 바로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바와(bhava)가 동물의 그것이라면 새로운 동물 간답바(gandhabba)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바와 및 자띠 - 존재 상태와 거기로 태어남’ 포스트를 보세요.


  • * 따라서 인간과 동물 조차도, ‘기본’은 루삐 브라흐마(rupi brahma)와 같은 미세한 몸(그리고 ‘데-와’의 몸보다 덜 조밀한 몸)을 가지는 간답바의 미세한 몸이라는 것을 이제 알 수 있습니다. ‘고형의 몸’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자라기 시작하며 태어난 후에도 음식을 먹음으로써 계속 자랍니다.


18. 자연(법칙)은 ‘껍질’인 이 물질적 몸(육체)을 통하여 깜마 위빠까(kamma vipaka)를 또한 줍니다. 우리는 항상 이 몸을 끊임없이 깨끗이 할 필요가 있으며, 중요 신체 부위를 돌 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육체적 고통의 일부이지만, 우리는 깊이 생각하지(숙고하지) 않습니다.


  • * 그리고 물론, 우리는 가벼운 감기나 두통 뿐만 아니라 심장 질환이나 암과 같은 중대한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육체적 고통’의 일부입니다. 두 종류의 ‘육체적 고통’은 물질적 몸(육체)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 * 하지만, 이런 고난은 이런저런 ‘즐거운 것’들을 얻음으로써 ‘미래의 행복을 기대하는’ 우리의 감각에 의해 ‘가려집니다’.


19. 그 ‘희망과 꿈’의 일부가 실현되지 않을 때, 우리는 심하게 혼란에 빠집니다. 대부분의 자살은 그러한 상황에서 일어나며, 이 ‘정신적 고통’은 위에서 논의한 ‘육체적 고통’보다 더 나쁠 수 있습니다. 유명하고 부유한 사람들조차 왜 자살하는지에 대해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명상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미래에 고통이 일어나는 것을 멈추기 위해서, 모든 영향을 느끼고 동기를 부여받기 위해, 고통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 * 그러나, 이 에세이의 주 목표는 물질적 몸(육체)의 진정한 본질을 짚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특히 어린 나이에) 우리 몸의 외형에 대해 매혹된다 할지라도, 늙어가면서 그토록 소중히 여긴 이 임시적 ‘껍질’ 때문에 겪는 고통을 보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약 100년 동안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것[껍질]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수한 겁동안 해왔던 것입니다.


20. 훨씬 더 중요한 또 다른 점은 잘 발달된 두뇌를 가지고 있는 인간 몸의 특수한 성질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Brain – Interface between Mind and Body’ 포스트를 보세요. 그것은 인간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붓다의 메시지를 이해하여 고통으로 가득찬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 지옥 중생의 몸이 어떻게 깜마 위빠까(kamma vipaka)를 주기만 하도록 깜마 에너지(kammic energy)에 의해 마련되는가(그들은 ‘아비상카라’, 특히 ‘뿐냐비상카라’를 행할 수 없습니다)는 ‘Does the Hell (Niraya) Exist?’ 포스트에서 논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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